최저 시급 인상을 위한 변론


평일 런치타임에 맥도날드를 방문한 적이 있다. 길게 줄 서 있는 손님들의 주문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전달하는 크루의 이마에 땀과 잔머리가 엉겨 붙어 있었다. 주방에서는 다른 크루들이 햄버거를 분주하게 만들고 있었다. 작업대의 열기와 매장 내의 소란스러움으로 어수선한 맥도날드에서 크루의 유능함이 돋보였다. 이들의 시급은 얼마일까. 2015년 기준으로 최저 시급인 5,580원을 받는다. 계약 기간 1년 동안 시급은 제자리다. 꺾기 노동(강제 조퇴시키거나 늦게 출근하게 해 시급을 깎는 행위)도 비일비재하다.


알바노조는 부당한 관행을 없애고자 했고 맥도날드와의 대화를 시도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침묵이었다. 지난 7일 알바노조가 맥도날드 신촌점을 점거하게 된 이유다. 맥도날드의 묵묵부답에 더해 알바노조 앞에는 또 다른 벽이 있다. 냉랭한 사회적 시선이다. 구교현(38) 알바노조 위원장이 쓴 '우리가 오늘 맥도날드를 점거하는 이유'에는 익명성을 무기로 한 ‘솔직한’ 댓글들이 많다. "부당한 처우 받으면 알바를 그만두면 되지 않느냐", "단순 노동직에 너무 많은 것을 바란다" 따위가 대표적이다. 이런 식의 댓글을 작성하는 사람들은 맥도날드 크루가 최저 시급을 받는 것은 적절하다고 한다. 맥도날드 알바가 하는 일은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지난 7일 알바노조는 처우개선을 위한 점거 시위를 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러한 주장은 ‘틀렸다’. 이 틀림은 최저임금제도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최저 임금은 시장가격과는 다르다. 노동의 숙련도와 해당 산업 종사의 진입 장벽, 노동공급에 따라 임금이 조정된다는 말은 맞다. 하지만 현실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존재한다. 최저임금의 목적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최저임금은 임금노동자의 최저 생활을 보장해주기 위해 제정됐다. 우리는 최저임금은 사회적 합의의 부산물이라는 하나의 소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최저임금은 비 내리는 날의 우산 같은 존재이며, 우산의 크기와 재질은 합의의 대상이다. 다수가 동의하면 무조건 시행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성격이기도 하다.


Part 1. 최저임금의 상승은 고용을 감소시킬까?


최저임금 인상이 청소년층 및 준고령층의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오히려 증가시킨다는 반론도 있다. 두 주장은 평행선을 달린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이병희는 2008년 두 주장 모두 방법론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신 이병희는 최저임금을 받는 대상을 정확하게 식별하는 동시에 고용 성과 지표를 높인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했다. 그 결과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는 2004년과 2005년의 최저임금 효과를 통합하여 분석했다. 최저임금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실험집단은 최저임금이 인상된 이후 6개월간 직장 유지율이 56.5%에서 54.1%로 2.4%p 감소했다. 이병희는 실직에는 노동시장 여건의 다양한 변화를 고려해야 하므로, 비교집단의 직장 유지율을 제시한다. 최저임금보다 약간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 집단의 6개월 직장 유지율은 62%에서 59.9%로 2.1%p 감소했다. 두 집단 간 직장 유지율 격차의 차이는 -0.3%로, 최저임금 인상이 최저임금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근로자의 6개월 직장 유지율을 0.3% 감소시켰다. 최저임금이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Part 2. 어째서 최저임금 인상을 해도 고용률은 줄어들지 않을까?


이유는 최저임금이 상대적으로 낮고, 최저임금의 인상률 역시 낮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은 2010년 2.8%, 2011년 5.1%, 2012년 6%, 2013년 6.1%의 증가율을 보였지만, 물가를 반영한 실질 최저임금 인상률은 각각 -0.2%, 1.1%, 3.7%, 4.7%에 그친다. 최저임금이 현실화되지 못한 배경에는 최저임금위원회의 구성 방식이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채준호와 우상범은 2013년 한국과 영국의 최저임금 기구 실태를 비교 분석했다. 한국의 최저임금위원회에는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개연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근로자 대표위원과 사용자 대표위원은 시민사회에서 자율적으로 선출하지만, 공익위원의 경우는 해당 사항이 없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자체적인 인력창고를 통해 결정하며 공개적인 심사절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의 눈치를 많이 보는 정부일수록, 최저임금위원회의 구성 역시 사용자 측에 유리하게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 즉, 최저임금을 인상해도 증가 폭이 미미하므로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뜻이다.


Part 3. 최저 시급 1만 원을 위한 변론


Part 2까지 읽은 독자들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지금까지 최저임금 인상률이 낮았기에 고용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1만 원으로 올리면 큰 타격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의문 말이다. 케인스주의 경제학이 위기에 처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더욱 우려할 수도 있다. 제2차 대전 이후 영국은 노동 생산성의 증가율보다 임금의 증가율이 더 높았다. 석유파동까지 겹쳐 영국 경제는 큰 위기에 봉착했다.


하지만 한국은 정반대의 상황, 임금 없는 성장을 겪어왔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노동생산성은 10.9%씩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전 산업 실질임금은 연평균 3.5%에 그쳤다. 이는 한국 경제가 최저 시급을 인상할 여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같은 맥락에서 경제학자 우석훈은 한국 최저 시급이 1만 원이 될 수 있다는 증거를 1인당 국민소득을 통해 제시한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는 평균적 개념이다. 이를 월급으로 받는다고 가정하고 주 40시간 노동으로 환산한다면 시급 만원이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최저 시급 1만 원을 지급할 여력이 없는 영세자영업장에서는 단기적 실업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안목에서 생각해야 한다. 한국의 자영업 종사비율은 전체 근로자의 30%로 유럽 주요 국가들의 2~3배에 이른다. 고용 안정성과 낮은 최저 시급 때문에 청년 실업자와 조기 퇴직자들이 자영업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최저 시급이 1만 원이라면, 자영업이라는 모험을 하는 대신 ‘아르바이트’를 택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경제적 비효율은 타개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단기적 노동 마찰을 보완하며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부의 기술적 정책이 전제돼야 한다.


Part 4. 아쉬우면 아르바이트나 하지 말고 취직하라는 말?


밥을 달라는 혁명 시위대에게 “밥이 없으면 빵을 먹으면 되지?”라고 했던 마리 앙투아네트와 다를 바가 뭐가 있나. 구직자들에게 정규직과 아르바이트 중에서 무엇을 택할 건지 물어본다면 대부분은 취업을 택할 것이다. 자유를 좇아 자발적으로 계약직을 택하는 직장의 신에 나오는 김 양은 드라마에서나 존재할 뿐이다.


현재의 취업난은 개인적 의지의 범주를 뛰어넘었다. 질 좋은 일자리 자체가 워낙 적기 때문이다. 스카이를 나오고 토익 고득점을 받아도 취업 문 열기가 어렵다. 지금 알바자리를 전전하는 사람들이 1970년대 호황기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아마 취업난을 모른 채 직장인이 됐을 터다. 하지만 지금 취업을 원하는 사람들은 시대적 불운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꼬우면 취직하라’는 말이 무책임한 말이 아니다. 장기적으로는 정부가 질 좋은 일자리를 공급하는 방향을 모색하는 일이고, 단기적으로는 알바만으로 현재의 불안을 해소할 방안을 제시하는 일이다. 그리고 최저 시급 현실화는 후자에 해당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임금은 생산성과 같은 물리적이고 기계적인 지표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고, 사회적 관습이나 문화 혹은 제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말했다. 이미 정해져 있으므로, 아르바이트들이 하는 일은 단순해서, 취직이라는 다른 길이 있으니까 현재의 5,580원을 감내하라는 말이 다시 한 번 공허하게 들린다. 계산되는 것만 논의의 범주에 인정하는 신고전주의적 사고에 언제부터 우리가 지배당했을까. ‘합리’와 ‘계산’에 얽매인다면 산업혁명기 아동을 착취했던 영국 방직사업가들의 평가도 달라진다. 아동을 싼값으로 고용해서 최대의 이익을 얻은 일은 기업가 입장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했던 셈이니 말이다.


하지만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부당함을 바로잡는 것으로 인류는 진보했고, 역사는 진행 중이다. 5,580원이라는 최저 시급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가? 햄버거를 만드는 사람은 최저 시급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경제학적 사고가 아니라 역사적 사고가 필요한 사람이다. 여전히 당신과 나 사이에는 평행선이 있겠지만, 인정해야 한다. 당신이 신봉하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그래프에는 현실과 경험이 고려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5,580원 안에서 당신이 규정하는 숙련도와 진입 장벽, 노동공급과 같은 요소는 근로 빈곤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감추고 있음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