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요새 그냥 아싸 짓하지”


나는 이번 학기에 복학했다. 비슷한 시기에 복학한 몇몇 친구들에게 근황을 묻노라면, 한결같이 같은 대답이 나온다. 


'아싸’는 아웃사이더의 줄임말로 소위 대학생활에서 겉도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왕따와 다른 점이 있다면 굉장히 포괄적인 개념이라는 것. 복학생 중에서는 같이 다닐 친구가 있어도 동아리가 있어도 한결같이 아싸라고 하는 걸 보면, 아싸는 결국 과 생활을 안 하면 아싸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사실 여전히 아싸는 신입생들에게 혼자 밥 먹는, 외로운 이미지가 강하다.



ⓒ기안84


1학년 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입학하기 전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OT를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부터 고민했고, 가야한다는 의견은 "가야 아싸가 안 된다"거나 "안 가면 선배한테 찍힌다더라"는 근거가 주를 이뤘다. 지레 겁을 먹고 가서 그런지 OT에서 ‘군기문화’는 별로 체감하지 못했으나, 다들 ‘아싸’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서로에 대해 계속 눈치를 봤고 이미지가 안 좋게 보일라 모두 행동을 조심했다. 튀는 행동을 하기 보다는 분위기에 편승하는 것을 택했다. 술이 조금 들어가면 이미 몇 년 된 친구인 마냥 어깨 동무 하며 친구임을 과시했다.


그 이후의 신입생 시절을 돌이켜 보니, '아싸’와 ‘선배에게 찍힐라’는 신입생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었다. OT이후 이어지는 많은 행사에 1학년들은 위 두 가지 이유로 어김없이 높은 참석률을 보였다. 당시 "아싸가 되진 않을까", "선배에게 찍히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동기들과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했던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그러다 그 두 가지의 힘을 확신한 일이 있었다. 학기를 마친 뒤 종강총회는 1학년들만 따로 모이기로 되어 있었다. 모임장소에 가보니 사람 수는 학생회 임원들을 포함해도 20명이 넘지 않았다. 우리 학과의 1학년 전체 학생은 60여명에 달했다. 인원이 적어 부랴부랴 연락을 돌려 주변에서 자취하는 학생들까지 반강제로 끌어와도 그 숫자는 많지 않았다. 종강총회 자리에서 약간 취한 상태로 빠져 나오며, 그간의 높은 참석률은 대학생활 즐겨보자는 자발적 마음이 아니라 ‘아싸’와 ‘선배’의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아싸와 선배, 공포의 다른 말


인간을 통제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공포다. 공포를 앞세우면 비윤리, 비논리적인 것들도 행해질 수 있다. ‘아싸’라는 말은 하나의 현상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개그 코드가 됐다. 허나 동시에 공포를 줄 수 있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행사에 나가지 않으면, 협력하지 않으면 아싸가 될 거야"라는 형체가 없는 말은 신입생들이 선배의 강압적인 태도에 군말 없이 응하고, 원하지 않는 자리에 참석하게 만든다. '선배에게 찍혔다’는 것도 사실 찍혀서 '대학생활 못하게 만든다’는, ‘아싸가 된다’는 말과 비슷하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선배들이 군기를 잡는 모습은 매년 3월이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것들이다. 괜히 나섰다가 ‘아싸’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 찍힐까라는 두려움은 신입생들이 그 군기문화에 고분고분하게 만든다. 그렇게 군기문화는 아직까지도 대학 내에 잔존해 사회문제로 거론된다. 그렇다고 부당함에 맞서지 않는 신입생들을 탓할 수도 없다. 그들이 겪는 아싸에 대한 두려움의 크기가 어떠한지를 1학년 시절에 겪어 보았기에.  


‘아싸’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는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이다. 좋든 싫든 한 반에 묶여 있어야 했던 그간의 교육과정과 달리 대학교는 그런 방식으로 신입생들을 구속하지 않는다. 그 ‘자유’가 직접 노력해야 하는 것이 되고, 신입생들은 친구를 만들고자 여러 행사에 높은 참여율을 보인다. 그리고 그 점을 악용해 "대학에 왔으면~"이라는 말로 군기문화를 앞세우고, 행사 참여를 강권하는 악습이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행해진다.



그런 것이 없이도 다 잘 돌아가


"이런 행사라도 없으면 과가 어떻게 돌아가겠냐"라던지 "선후배끼리 어떻게 얼굴을 알고 지내겠냐"라는 말들이 귓가에 떠돈다. 술을 강권하는 것도 술을 먹어야 친해진다며 합리화된다. 술 먹고 토하며 일제의 잔재를 씻어낸다는 이유도 있었다. 미국과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는 지인들은 한국에서는 당연한 개념인 오티, 개총과 같은 말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군기문화는 애초에 말을 꺼낼 필요도 없었다. 그곳의 대학은 그런 것들 없이도 잘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복학 전 알바를 한 적이 있다. 수능을 막 마치고 대학교에 입학 예정인 동생도 있었다. 일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잡담을 할 여유가 생겼을 즈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학생활 관련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냐"고 넌지시 던져 보았다. "어떤 게 재미있어요?"라거나 "MT는 어때요?"라는 대학의 밝은 모습에 대한 궁금증을 기대했던 나는 "대학가면 아싸 많아요? 아싸 안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라는 조심스런 질문을 받았다. "가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맞는 애들이랑 다니게 된다. 걱정마라"는 일반적인 대답을 해주면서, 곧 ‘복학생 아싸’라는 얘기를 들을 사람이 해줄 말이 맞나는 우스운 생각도 들었지만 대학생활의 기대보다 두려움이 큰 것이 아닌가라는 주제넘은 걱정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그렇다. 술을 안 마시면, 선배의 권위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행사 참여를 강권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냐는 섣부른 걱정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다 돌아간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