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익숙한 침대에서 눈을 뜨고, 창 밖에서 항상 같은 풍경을 마주한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시간 속 일상은 평소와 다름없다.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무엇일까. [설익은 르포]는 당신이 미처 경험하지 못한, 혹은 잊고 지낸 세계를 당신의 눈앞에 끄집어낸다. 낯설거나 익숙하거나, 그것들과 함께 일상 속의 작은 일탈을 시작해보자.


"투명인간의 법칙이란 게 있어. 청소부 유니폼을 입으면 우리는 투명인간이 되지." 영화 ‘빵과 장미’에서 나온 대사다. 생각해보면 청소 노동자에 대한 별다른 기억이 없다. 우리는 청소 노동자를 보지 않고 그들이 일하고 난 결과만 본다. 그 ‘투명인간’의 실체를 보기 위해, 결과 이전의 과정과 사람을 보기 위해 청소 노동자들과 하루를 함께했다.


셈하지 않는 한 시간


오전 6시. 서울시립대학교 건축공학관(이하 건공관)에는 밝게 불이 켜져 있다. 경비실로 보이는 곳에 아저씨 두 분이 앉아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기자와 만났던 아주머니가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새벽 자판기 커피의 따뜻함과 함께 그들의 일과가 시작됐다. 


현수(가명) 아저씨는 이 건물의 1층과 2층, 외곽을 담당한다. 청소 인력은 건물별로 따로 배치되는데 건공관은 총 세 명이 일한다. 건물 난간 주변의 담배꽁초를 치우던 중 몇 년 전 꽁초 때문에 난간에 작은 화재가 발생했었다고 아저씨가 말했다. 그 벽엔 아직도 그을음이 져 있다.


화재로 인한 그을음이 남아있다


현수 아저씨는 시립대에서 3년 4개월을 일했다. 학교를 청소하기 위해 4시 반에 일어난다. 원래 정식 근무 시간은 7시부터지만 9시 수업 전에 청소를 끝마치려면 7시는 촉박하다. 그래서 6시부터 나와 청소를 시작한다. 이에 대한 보수는 받지 않는다. 


1초만 부탁해


영순(가명) 아주머니는 화장실 청소를 담당한다. 변기 물을 내림과 동시에 닦는다. 물이 튀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간 내에 못하기 때문이다. 화장실 청소의 특성상 걸레를 쓸 일이 많다. 걸레를 하도 짜다 보니 손가락 관절이 이상해졌다고 말했다. “걸레를 짜다 보면 엄지 쪽 관절이 비틀어져. 일종의 직업병 같은 거야. 다른 건물에서 일하는 아줌마는 지금 엄지손가락 심하게 틀어져 있어.” 아주머니는 휘어가는 자신의 손가락을 만졌다. 


건물 외부의 쓰레기장


아침 청소를 마칠 무렵 학생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온다. 시계를 보니 9시 10분 전이었다. 건공관의 모든 쓰레기는 건물 뒤편으로 모인다. 쓰레기는 정리해서 법학관 건물 옆 쓰레기 집하장에 모은다. 쓰레기장 정리 후 건물 내부를 돌아다니며 주변 정리를 한다.


현수 아저씨는 “나는 청소는 학생들이 하고 우리는 운반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 청소하는 게 별다른 게 아니야. 쓰레기통에다가 제대로 버리는 거. 이게 청소지. 우리는 그걸 쓰레기장으로 운반만 하면 되는 거고." 그만큼 학생들이 쓰레기를 제자리에 버리지 않는 것이다.


영순 아주머니는 용변을 본 후 물을 제대로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토하고 물 안 내리는 건 이해해. 취했잖아." 물을 내리면서 닦는 아주머니에게 용변이 남아있다는 것은 몸으로 튄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럽지만 시간이 없으므로 그냥 한다고 아주머니는 말한다. 학생들이 물만 내려줘도 큰 도움이 된다는 아주머니의 말에서 그간의 고충이 느껴진다.


1시까지 점심을 먹고 오후엔 쓰레기통을 비운다. 쓰레기를 모아 건물 뒤편으로 가져가고 다시 쓰레기를 분류하는 작업을 한다. 학생들로부터 쓰레기가 쏟아져 나온다. 영순 아주머니는 개강이나 종강에 맞춰서 학생들이 작업했던 것을 많이 버린다고 말한다. 건축구조물 같은 과제를 버리다 보니 분류를 할 때 위험하다. 아주머니는 전에 모르고 그냥 하다가 날카로운 것에 손가락이 찔린 적이 있다고 말한다.


클립 외에도 핀 같은게 많이 버려진다


퇴근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건물의 모든 쓰레기를 다시 한 번 더 모은다. 분명 몇 시간 전에도 같은 작업을 했음에도 쓰레기는 상당히 많이 쌓여있었다. “퇴근하고 나면 치우지 못하니까 마지막으로 하는 거야”라며 병준(가명) 아저씨는 쓰레기를 모았다.


청소 노조 이후


쉬던 중 영순 아주머니는 노조활동을 시작하면서 환경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2012년 12월 12일은 시립대 청소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한 날이다. “예전엔 휴게실이 따로 없었어. 근데 노조활동 하고 나서부터 휴게실을 만들어 주더라고. 여기도 원래 경비실이었는데 무인경비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경비 인원 통합하고 남는 거 우리 준거야.”


2014년 고용안정을 위해 시립대 전농관 앞에서 천막 농성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몇몇 학생들이 같이 목소리를 내주었다. 어떤 학생들은 밤에 몰래 먹을 것이나 음료수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현수 아저씨는 학생들도 우리를 도와주니 우리도 학생들을 위해서 청소를 열심히 한다고 말한다.


올해부터 청소 노동자를 공무직으로 채용한다고 한다. 월급은 변한 게 없지만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된다. 그 후로는 1년마다 계약직으로 근무한다. 퇴직하시는 분들을 위해 예산을 따로 빼두었다. 65세 이상 분들도 70세까지 퇴직 후에도 근무하게 하기 위해서다. 노조의 힘이라고 현수 아저씨는 말한다.


투명인간도 결국 ‘인간’

쓰레기 정리중


병준 아저씨는 원래 건설업을 했다. 하지만 건설경기도 안 좋아지고 나이도 들어서 청소로 업을 바꿨다. 아저씨는 시립대에 다니는 조카에게 가끔 맛있는 것을 사줄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이 돈으로 자식들 학비에 보탠다는 아저씨, 아저씨는 청소한다는 것에 대한 거리낌이 없다.


영순 아주머니는 남편 사별 후 청소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 지하철 청소를 했다. 아주머니는 처음에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냄새가 날까, 사람들이 나를 알아볼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인식을 바꿨다. "내가 도둑질하는 것도 아니고 떳떳하게 일해서 돈 벌어먹는 건데 왜 고개 숙여야 해?" 그렇게 아주머니는 3일 만에 얼굴을 가리던 마스크를 벗어 던졌다.


청소복을 입으면 투명인간이 되는 그들, 하지만 이날 본 그들의 모습은 스스로 일을 하는 '인간'이었다. 청소도 하나의 노동인데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못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청소 노동자들. 매일 강의를 들으러 갈 때 깔끔한 건물 내부를 보며 청소 노동자분들에게 고맙다고 한마디 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