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 말에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일명 장그래법)을 발표했다. 그러나 실상 이 법안은 비정규직 사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릴 수 있고 사내하도급을 합법화하도록 명시되어있다. 게다가 성과가 낮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고 기준을 만들어 해고를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서 일각에서는 ‘장그래 죽이기 법’이라고도 부른다. 이 와중에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 역할을 맡았던 임시완이 비난의 여론에 시달리고 있다. 장그래 법을 홍보하는 공익광고를 찍었기 때문이다. 



현실 속 3D 장그래가 보여준 모습 


임시완은 비정규직이 갖는 설움을 사실감 있게 연기했다. 그는 많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실 속 장그래들을 위로하는 발언도 자주 했다. 그래서 장그래법 홍보광고를 찍은 그의 행동에 대해 아쉬운 점도 많고 대중들이 배신감을 느낄 법도 하다. 물론 노동에 대한 교육과 인식도 열악한 한국사회 특성상 일반 연예인인 그에게 높은 노동의식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계약직 인턴사원 역할로 인기를 얻은 그가 현실 속 장그래를 조금이라도 이해해주었다면 어땠을까? 그가 광고를 찍기 전에 장그래법의 내용을 읽어보기는 했을지 의문이다.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반대하는 신문 광고, 비정규직 노동자 3400명의 모금으로 실렸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에 대한 실망이 과연 생산적인지 생각해보자. 더욱 중요한 것은 임시완에 대한 실망감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장그래법을 막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사회의 비정규직 문제를 되돌아보고 비판의 칼날을 정치권으로 돌려야 한다.


한국사회의 비정규직 실태 


97년 외환위기 당시, IMF는 한국에 노동 유연화 정책을 권고했다. 이후 비정규직과 같은 형태의 고용제도가 도입됐고 현재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노동계 추산 852만 명이며 전체 노동자의 45.4%에 이른다. 문제가 심각한 나머지 IMF는 한국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시정권고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오히려 2006년 국회에서 통과된 비정규직 보호법은 비정규직을 제도화했다. 2011년 현대자동차의 경우에는 비정규직의 사용 형태가 불법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에도 사측은 모르쇠로 일관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노동현장 곳곳에서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비정규직의 아픔을 4년씩이나 늘리자고 하는 상황이다. 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피땀으로 얻어낸 노동자들의 권리가 이후 20여 년간 퇴보하고 있다. 


장그래법에 대처하는 프랑스의 자세 


프랑스의 경우에도 2006년에 한국의 장그래법과 같이 노동시장 유연화를 도모한 CPE법을 추진했다. 고용주가 26세 미만의 사원을 채용한 뒤 첫 2년간은 아무 이유 없이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었다. 그러자 학생들과 노동계는 “우리는 (쉽게 뽑아쓰고 쉽게 버리는) 크리넥스가 아니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거센 반발을 일으켰으며 프랑스 전역에서 수백만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한 달 넘게 계속되는 시위로 결국 프랑스 정부는 CPE법을 폐기했고 법안을 추진한 프랑스 총리는 차기 대권 주자에서 밀려났다. 물론 프랑스와 직접 놓고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프랑스의 경우처럼 장그래법의 실체를 알리고 막아내는 것이다. 마침 지난 3월 18일에는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안 폐기와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내 300여 개 단체가 모여 ‘장그래 살리기 운동본부’를 출범했다. 


 

ⓒ레디앙


3D 장그래에 대한 실망은 이제 그만 


다시 임시완에 대한 논란으로 돌아가 보자. 어차피 임시완은 이미지를 먹고 사는 연예인이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념돌 이미지로 상품성을 키운 연예인이었고 이제는 그 상품성이 떨어진 것에 불과하다. 그에게 분노의 화살을 보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조소적인 눈빛을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총알받이가 된 임시완을 실망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보다 정부가 추진하는 장그래법을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와 연결해보자.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권리가 더욱 더 위협받고 있다. 엄중한 잣대는 정치권으로 돌려야 한다. 오히려 지금은 ‘장그래 살리기 운동본부’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