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OO 씨*는 금융, 재무 관련 자격증 준비와 경제학과 수업을 병행하고 있으며 다중 전공이 중국 경제 통상학이라 HSK(중국어능력시험)까지 딸 예정이다. 지금은 하고 있는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 대학생인 그는 세월호 사건 당시엔 소방서에서 의무소방원으로 전환 복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경기도에 있는 구급차까지 팽목항으로 지원을 나가는 상황에서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작년 4월 16일에는 소방서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구급활동을 마치고 소방서로 돌아오자 마자로 기억합니다. 주간 근무에는 근무에 여유가 없어서 텔레비전을 켜놓고 있는 경우가 드문데, 텔레비전이 틀어져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해상사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사건이 커서 계속 텔레비전을 켜두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속보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구조가 되었다고 해서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자꾸만 구조되는 인원이 수정되고 뉴스가 번복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무언가 심각한 일이 터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사고 당일에는 슬픔이 와 닿지 않았습니다. 뉴스에서 골든타임을 이야기하면서 구조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준 것이 한몫했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더 이상 구조될 수 없다는 것이 기정사실로 되었고, 정부와 구조 활동 부처 간 합이 맞지 않았다는 것을 보았을 때 답답함이 일어났습니다.


사실 그런데도 당시에는 다른 분들만큼 많이 와 닿지 않았습니다. 희생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고, 세계에서 이따금 일어나는 큰 사건 중 하나가 한국에서도 일어났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구급 활동을 하면서도 시체는 정말 많이 봤지만 그렇게 많은 감정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죽을 것으로 예정되어 있던 사람이 죽어도 관련되어 있는 사람은 슬플 수밖에 없습니다. 교통사고로 죽어도, 자연적으로 죽어도 관련된 사람들은 슬플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초등학생 때 눈을 크게 다친 적이 있습니다. 비비탄 총으로 서바이벌 게임을 하다가 비비탄이 눈동자에 박혀서 입원까지 했습니다. 사고도 사고이지만 총알 쏜 당사자가 사과하지 않아서 상처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사자 빼고 모두가 사과했는데 가해자만 사과를 하지 않아서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네 명이 서바이벌을 했는데 가해자와 나를 제외한 두 가족이 입원비의 사 분의 일을 부담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가해자 쪽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만약 실명했다면 가해자 아이에게 실질적인 큰 복수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 일이지만 누군가에게 최초로 큰 원한을 가진 기억입니다. 


2014년 7월 19일 서울청계광장 ⓒ김혁진 / 게재 : 페이스북 페이지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진'


어떤 정치인은 세월호 사건을 교통사고에 비유해서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저도 사건의 시작까지는 관광버스 교통사고와 유사하다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월호를 관광버스에 비유하더라도, 구급차가 왜 일찍 오지 않았는지, 병원 이송 후 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을 왜 살리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질타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세월호 관련 기업에 대해 수사를 하는 것은 관광버스 사고가 났다고 해서 관광버스가 속한 회사를 조사하는 것만큼 이상하게 여겨집니다. 물론 회사의 부패가 있다면 척결해야 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 아니라 왜 구조가 늦어졌는지에 대해 알아내는 것이 먼저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자면 국민 감정에 호소하는 보여주기 식 해법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특별법 시행령부터 먼저 고쳐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독립적인 기관이 수사를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에 대해 답답함이 있습니다. 물론 세월호 희생자 개개인의 이야기가 슬프지만 그보다 제도를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팔에서도 정치가 왕정파, 마오쩌둥파로 나뉘어서 구조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하는 기사를 봤습니다. 네팔에서도 일어난 비화보다 구조를 왜 못하고 있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재해를 겪었을 때, 구조 활동을 해서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의무일 것입니다. 여기서도 제도 개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뭍위에서] 기획에서 인터뷰이의 이름은 인터뷰이의 의향에 따라 실명 혹은 익명으로 기록했습니다.

**인터뷰는 2015년 5월 1일에 진행됐습니다. 

인터뷰.글/ 농구선수(lovedarktem@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