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날은 따듯하다 못해 더워지는데, 옆구리가 시리단다. 친구가 자꾸 주변에 괜찮은 남자 없냐고 보챈다. 그녀가 말하는 괜찮은 남자의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카톡 친구목록을 뒤져본다. 그러다 발견한 아는 오빠에게 소개팅할 생각 있냐고 넌지시 카톡을 보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답이 온다. “근데 걔 예뻐?”

 

 

지난 16일, 이대 필름 포럼에서 작은 영화 상영회가 열렸다. 풀뿌리 여성단체 <너머서>의 주최로 박강아름 감독의 자전적 다큐멘터리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가 상영되었다. <너머서>는 “이 영화가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을 여성 본인의 입장에서 다뤘다는 점에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고 행사 취지를 밝혔다. 한 시간 반가량의 영화가 끝난 후에는 감독과의 대화 시간도 마련됐다.


가장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질문 “걔 예쁘냐?”에 대한 우리들의 실험과 답변


박강아름 감독은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를 위해 5년에 걸쳐 감독이 자신의 몸과 외모를 중심으로 한 일상을 촬영했다. 2008년, 처음 속옷만 입은 제 몸의 앞과 뒤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시작한 촬영은 2014년까지 이어졌다. 영화의 구성은 크게 두 부분이다. 1부는 소개팅하러 삼만리, 2부는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다.


#1부 #소개팅 #남친_찾아_삼만리?
20대 후반의 아름은 외롭다. 남자친구를 간절히 원한다. 소개팅을 앞두고 아름은 화장 연습도 해보고, 옷과 머리스타일도 신경 쓴다. 하지만 번번이 애프터가 들어오지 않는다. 거금을 들여 미용실에서 드라이까지 받고 나간 세 번째 소개팅은 만난 지 한 시간 만에 헤어졌다.

 

 

ⓒ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캡쳐


아름의 고민은 낯설지 않다. 예쁘고 잘생긴 외모가 지나치게 플러스 요인이 되는 사회를 사는 우리가 흔하게 하는 고민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랑받지 못한 이유가 혹시 내가 예쁘지 않아서일까?  외모에 대한 집착은 삶 구석구석에 침투하여 우리를 갉아먹는다. 


영화 속에서 연애와 외모, 자존감은 깊은 상관관계를 가진다. 네 번째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와 사귀게 된 아름은 더 열심히 공을 들여 외모를 가꾼다. 아름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확 달라진다. 역시 연애를 해야 한다며, 애인이 생기더니 예뻐졌다고. 연애를 하고 예뻐지고 자존감이 높아지는 일은 함께 일어난다. 그러나 그릇된 상관관계는 주인공을 절망으로 빠뜨린다. 연애가 잘 안 풀리면 자존감은 곤두박질친다. 거울 속에는 남자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그래서 나 자신조차 사랑해줄 수 없는 못생기고 뚱뚱한 내가 있다.


#2부 #변신 #가장무도회 #오늘은_어떤_스타일?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나를 평가하는 세상에 환멸을 느끼며 영화의 2부가 시작된다. 아름은 종이 인형 옷 갈아입히기 놀이를 하듯 히피, 재미교포, 여고생, 고시생 스타일로 변신한다. 그녀가 가장무도회를 시작하며 던졌던 질문, ‘내가 옷과 머리스타일을 바꾸면 사람들이 나를 다르게 대할까?’에 대한 답은 완전히 YES다. 사람들은 전혀 다른 시선으로 그녀를 본다.

 

ⓒ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캡쳐

 

“가장무도회를 하며 스타일이 변하니까 남자들이 관심을 가졌잖아요. 이때 기분이 어땠나요?”
영화가 끝난 후, 한 관객의 질문에 박강아름 감독은 두 감정이 교차했다고 답했다. 이렇게 꾸미면 남자들이 다르게 대할 거라는 계산이 맞아떨어진 것이 통쾌하고, 복수에 성공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래야만 봐주나, 하는 씁쓸함이 컸다.


외모지상주의 세상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할까


영화는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 내 모습 어때?” “어떤 게 더 예뻐?” “내 외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사람들은 날카로운 답을 내놓는다. 때로는 아주 무례하게, 때로는 배려를 가장하지만 속에 담긴 의미는 같다.

 

"선생님은 조금 게으른 것 같아요. 그런 걸 고치고 자기 가꾸는 걸 신경 쓰면 좋겠어요."
외모가 곧 경쟁력인 사회에서 못생기고 뚱뚱한 사람 = 자기관리 못 하는 게으른 사람으로 여겨진다.

"코끼리 다리. 너무 심각해요.”
 .....(할말이 없다)

"근데 요즘은 평균적으로 예쁜 여자가 착하다?”
못생긴 게 성격도 나쁘다 혹은 못생겨서 성격도 나쁘다. ‘외모’와 ‘성격’의 인과관계를 짜 맞추는 외모지상주의 사회는 비참한 자기검열을 유도한다.

"객관적인 외모의 문제라기보단 자신감의 문제일 수 있어.”
남들이 뭐라 하건 마이웨이를 가는 사람은 멋지다. 이상적이다. 그러나 이상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이 되기 위해선 많은 것이 필요하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사랑하자는 외침은 실현될 수 있을까.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는 중간에 공백기가 있었다. 가장무도회를 하던 아름은 “이제는 내가 나를 찍는 것이 싫다. 못생기고 뚱뚱한 나를 찍는 것이 고통스럽다”며 촬영을 중단한다. 감독과의 대화에서 감독은 “가장무도회는 실패했다”고 말했다. 원래의 의도는 외모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들의 시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비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감독 스스로도 외모지상주의의 시각을 내재화한 채 자신의 몸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외모지상주의 세상의 민낯을 밝히려던 가장무도회라는 장치가 나 자신의 외모지상주의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외모지상주의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쳐보아도, 내 모습을 보는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기는 쉽지 않다. 나는 내 눈에 가장 예뻐 보이고 싶어서 다이어트를 하고, 화장을 하고 옷을 입는다. 내가 꾸미는 이유는 진심으로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라 말하고 싶은데, 실은 나도 모르는 새 타인의 시선을 내재화한 게 아닐까 불안하다. 영화를 보며 답을 찾고 싶었지만, 아름의 솔직한 고백에 담긴 모순은 찝찝함을 남겼다.


그러나 박강아름은 이렇게 모순적인 내 모습을 인정할 때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비로소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용기도, 남들에게 상처받지 않을 깡도 생긴다. 이것이 5년의 다큐 제작 끝에 내린 결론이다. 변화는 자신에 대한 완전한 이해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나의 외모지상주의를 인정하고, 나를 포함한 세상의 외모지상주의에 맞서야 한다.


세상이 규정한 아름다움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그 기준에 맞춰 사람을 재고 따지는 건 말도 안 된다. 말도 안 되는 일 때문에 상처받을 필요도, 주눅이 들 이유도 없다. 살이 쪄도 내 몸이고 피부가 깨끗하지 못하고 눈코입이 못나도 내 얼굴이다. 먹고 싶은 것 먹고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건 내 자유지, 남들이 자기 관리를 하라 마라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누군가 외모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댄다면 이렇게 답하자. “내가 못생기고 뚱뚱하다고? 그건 내 문제가 아니라 네 문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