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인터넷 신조어들이 활개 치는 요즘, 구미를 당기는 신조어 하나가 있다. ‘솔까말.’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의 준말이다. 솔까말, 이 영화 참 솔직하다. 늘 그래왔듯이 홍상수 감독의 열세 번째 영화 ‘옥희의 영화.’ 를 지배하는 것은 솔직함이다. ‘솔직하다.’ 와 동의어로 쓰이지만 강한 느낌을 주는 ‘적나라하다.’ 는 그의 영화들을 설명하는 데에 종종 쓰이곤 했다. ‘옥희의 영화’ 는 그의 전작들에 비하면 솔직하지만 덜 적나라한 영화다. 솔까말, 영화를 보면 솔직하지만 덜 적나라하다는 괴상한 해석에 공감할 터이다. 


부분과 전체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는 영화

‘옥희의 영화’는 총 네 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영화다. 1편 ‘주문을 외울 날.’에서부터 시작해서 2편 ‘키스 왕.’ 3편 ‘폭설 후’ 를 거쳐 4편 ‘옥희의 영화’ 에 이른다. 네 편의 이야기를 잘 꿰어 맞추어 보면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옴니버스 영화는 각자 독립되어 있는 에피소드를 한대 묶은, 단편집과 같은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영화의 한 장르를 말한다. ‘옥희의 영화’ 는 옴니버스의 성격을 띠면서 80분간 진행되는 장편영화적 성격도 띠고 있다. 엘가의 위풍당당행진곡(Elgar - Pomp and Circumstance March No.1 in D major)의 선율이 나오면서 네 편의 영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끝난다. 옴니버스 영화 ‘도쿄!’나 ‘사랑해, 파리.’ 는 도시를 테마로 한 데 반해 ‘옥희의 영화’ 는 옥희를 둘러싼 사람들을 테마로 한다. 네 편을 개별적으로 보면 각자의 이야기를 한다고 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어떤 사람의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영화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물론 홍상수 감독은 ‘옥희의 영화’ 라고 명명해 두었지만 말이다. 전작 ‘하하하’에서도 제목에 웃음소리와 여름, 두 가지 의미를 부여한 점을 감안한다면 ‘옥희의 영화’ 역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었다고 볼 수 있다. 


여자 그리고 남자
감독이 그리는 군상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면 항상 웃음이 나온다. 평범하면서도 각자의 개성이 살아있는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여자는 백치미가 있고 남자는 과감하다. ‘옥희의 영화’에서 옥희(정유미)와 진구(이선균)뿐만 아니라, 전작들에서도 그러하였다. ‘하하하’ 의 성옥(문소리)과 문경(김상경),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의 고순(고현정), 구경남(김태우)은 백치미가 있고 과감하다는 점에서 공통선상에 있다. 통념상 남자들은 백치미 있는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들은 과감한 남자를 좋아한다. 감독은 통념을 고스란히 담아내면서도 이들 인물들로 하여금 거침없는 말들을 쏟아내게 한다. 그러니 웃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실제 현실에서 지극히 평범한 인물들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가면을 벗고 인간 본연의 내피를 드러낸다. 송 교수(문성근)는 올곧은 척 하지만 뒷돈을 받고 옥희(정유미)는 순정파처럼 보이지만 양다리다. 그나마 진구(이선균)가 바보 같은 인물이지만 1편 ‘주문을 외울 날’ 의 유부남이면서도 외도를 서슴지 않는 영화감독은 진구의 미래모습으로 해석을 한다면 그도 속물인 것이다. 결국 인간은 속물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전작들에서부터 ‘옥희의 영화’ 까지 영화의 베이스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유분방함, 즉흥성
그러나 언어유골(言語有骨)

‘옥희의 영화’ 를 볼 때는 즉흥성과 솔직함을 즐길 수 있는 준비만 하면 된다. 정해진 틀에만 맞춰 만든 영화가 아닌 틀을 넘나드는 영화다. 솔직함이라는 틀 안에서 즉흥성을 과감 없이 드러낸다. 전작들이 파격적인 성향이 짙었다면 ‘옥희의 영화’는 ‘하하하’ 웃으면서 관조하기에 좋은 영화다. 감독 특유의 즉흥성과 자유분방함 속에서 자연스레 영화의 의미를 하나하나 곱씹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세상이 이러니 책을 읽을 수밖에... 세상이 혼란스러우면 책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사랑하지 않으려고 아무리 노력한다 하더라도 그 순간에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세상에 하는 일 중에 이유를 알고 하는 일은 없다.’ ‘인위적인 것을 통해 진심이 드러난다.’ 등 뼈있는 대사들을 무수히 쏟아내기 때문이다. 솔직하지만 덜 적나라한 영화 ‘옥희의 영화’ 는 그의 영화를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그의 손을 살며시 잡게 할 반가운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