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향수>에 나오는 주인공 그르누이?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계절냄새를 곧잘 맡아왔다. 내가 아는 계절냄새는 실제 계절보다 조금 빠르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 한 낮에 가을 냄새가 나기도 하고 요즘 같은 가을에는 겨울 냄새가 나기도 하는 식이다. 어렸을 때부터 맡아왔던 냄새라 당연한 거라 생각했던 나는 얼마 전 황당한 경험을 했다.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걸어 나오는 길에 ‘곧 겨울이 올 건가봐. 벌써 겨울냄새가 나네?’라는 얘기를 꺼낸 것이 그 발단이었다. 그 순간. ‘겨울냄새가 뭐냐, 그런 게 어딨냐, 도대체 어떤 냄새냐’ 등등과 같은 질문세례를 받아야만 했고 설명하기 어려운 오묘한 냄새 때문에 우물쭈물하던 나는 외계인이 된 기분을 느껴야 했다. 나는 계절냄새의 정체를 찾기 위해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름 전문적이시고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는 지식인에게 물어봤다. 그러나 과학적으로는 계절냄새, 바람냄새, 비냄새 등의 원인이 명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단다.



(이미지출처:http://photo.naver.com/view/2010101015001221566?page=1&view=search&sort=ranking&param=%EA%B0%80%EC%9D%84%EB%83%84%EC%83%88)


그 중에는 이런 답변도 있었다. ‘마치 영화 향수에 나오는 주인공 같네요. 그게 정말이라면 영화처럼 13번째 향기를 만들어보세요.’ 오해다. 계절냄새를 맡는 건 그 정도의 특별한 능력이 아니다. 너무 바쁜 일상에 무뎌져버린 것일 뿐. 눈앞의 급급한 목표 때문에 혹은 산더미처럼 쌓여만 가는 할 일 때문에 느끼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당장의 그 일만 바라보고 러쉬(rush)하다보면 가끔은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의 감각기관에 하나하나 집중하며 나를 둘러싼 환경이나 그 변화에 대해 집중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럼 이전보다는 한껏 여유로워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

이 문구를 보자마자 떠오르는 노래가 있는가? 그렇다. 명곡 중의 명곡, 캐럴이다. 가을에 듣는 캐럴 역시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 중 하나이다. 보통 캐럴은 겨울에 듣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나는 종종 가을에 캐럴을 듣는다. 이유는 겨울에 듣는 것보다 가을에 듣는 캐럴이 더 기분이 좋기 때문일 것이다. 

캐럴을 들으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는데 그 이유는 많은 캐럴이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캐럴은 보통 즐겁고 흥겹고 경쾌한 기분을 노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영어사전에도 carol의 의미가 [carol [|kӕrəl] 1.크리스마스 캐럴 2.즐겁게 노래하다]라고 나와 있다.) 우리가 캐럴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즐거워지는 이유는 이러한 맥락에서 일 것이다. 그 이유와 기원이 어찌되었든 가을에 캐럴을 들으면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다림과 설렘, 그리고 추억과 더불어 크리스마스라는 말 자체만으로도 가지고 있는 그 따뜻하고 정겨운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이미지출처:http://photo.naver.com/view/2009042121302430486?page=5&view=search&sort=ranking&param=%ED%81%AC%EB%A6%AC%EC%8A%A4%EB%A7%88%EC%8A%A4 /)


나를 설레게 하는 그 마지막은...

마지막으로 가을에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은 새벽녘 또는 늦은 밤의 어스름한 불빛이다. 어스름한 불빛을 보면 나도 모르게 연상되는 한 장면이 있다. 바람이 쌩쌩 부는 길가에 나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과 오버랩 된 색색의 어스름한 불빛. 크리스마스의 분위기와 오버랩 되기도 하는데 이런 장면과 분위기는 나를 한껏 설레게 만든다. 이런 것들을 보며 빛과 심리가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 둘의 관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 연관성을 알든 모르든 어스름한 불빛 자체가 나를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이미지출처 : http://photo.naver.com/view/2008042821424447778?page=5&view=search&sort=ranking&param=%EB%B6%88%EB%B9%9B)


감정을 글로 풀어낸다는 것은 확실히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어찌되었든 벌써 겨울이 오는 겨울냄새를 맡고 종종 캐럴도 들으면서 어스름한 불빛을 보면 나도 모르게 설레는 것을 보니 난 벌써 이번 겨울을 맞을 준비를 끝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