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예비군 훈련의 시즌이다. 현역 군인으로 임무를 마치고 전역한 예비군들은 8시간 내지는 23일의 짧은 훈련을 받는다. 훈련을 받는 날에는 평소에 입던 옷 대신에 장롱 속에 처박아둔 예비군복을 꺼내 입어야 한다. 입지 않은 기간이 오래돼서인지 냄새까지 난다. 군 복무 당시에 휴가를 나올 때는 섬유유연제까지 넣어서 깨끗이 세탁하고, 빳빳하게 다림질까지 했던 옷이다. 그럼에도 예비군들은 상관없다고 여긴다. 더러우면 더러운 대로 구김이 심하면 그런대로 입는다. 상의와 하의, 벨트 버클을 일치시켜야 하는 삼선일치 따위는 무시한다. 상의는 당연하다는 듯 빼 입는다. 더우면 옷깃은 대충 접는다. 상의 안에는 국방색 내의 대신에 형형색색의 티를 입는다. 하의를 말아 올리는데 필요한 고무링은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서 사야하기 일쑤다. 찾더라도 주머니에 쑤셔 넣고 하의를 내려 입는다. 고무링은 훈련 때만 잠시 착용한다. 모자는 머리에 맞지 않아서 대충 얹어 놓는다.

 

  예비군복에 대한 생각을 물었더니 부정적인 의견이 대다수였다. 서강대에 재학 중인 이 양은 예비군복에 대해 껄렁해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옷을 대충 입었다는 생각이 든다. 휴가 나온 군인들이 입은 옷은 단정해 보이는데 예비군복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강조했다. 같은 학교 김 양도 비슷한 의견을 내보였다. “혼자만 입고 있어도 날라리 같은데 여러 명이 그러고 몰려다니니까 더 그렇다. 평소에 안 그러던 사람들도 예비군복을 입으면 달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예비군복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들, 예비군 자신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자신이 훈련을 받지 않을 때 예비군복을 입은 남성들을 보면 비웃는다. 그게 친구라면 욕을 한다. 그러나 예비군들은 욕을 먹더라도, 부정적인 시선들이 자신에게 향하더라도 절대 규정에 맞게 옷을 입지 않는다. 오히려 누가 더 껄렁해 보이는지 비교하기도 한다. 물론 더 껄렁한 사람이 승자다. 껄렁함은 예비군 훈련 몇 년차인지 가늠해보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반면 규정에 맞게 옷을 입고 온 사람은 찌질이로 통한다.

예비군들은 왜 이렇게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할까? 훈련이 끝났음에도 흙먼지 뭍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술집으로 직행할까? 그건 예비군복이 극한의 자유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예비군복을 입으면 현역 군인 일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는 행위이다. 군인은 일명 입수보행이라 불리는 이 일을 금지 당한다. 하지만 예비군을 상징하는 개구리마크를 다는 순간, 군인은 자유라는 특권을 지닌 민간인이 된다. 그래서 예비군들은 언뜻 보면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이 행위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하는 것이다. ‘부자연스러움마저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데에 행복해하는 것이다.

  예비군 마크를 군복과 군모에 오버로크치는 것. 이는 군인들에게 족쇄의 해방을 상징하는 일이다. 병장에게서 여유가 느껴지는가?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을 것 같은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병장 앞에는 간부라는 커다란 장벽이 서있다. 하늘을 나는 새는 잘못 떨어뜨리면 죽는다. 떨어뜨린 병장이. 항상 간부가 병사와 함께 생활하는 건 아니지만 그들은 보이지 않는 수갑처럼 작용한다. 간부 때문에 병장은 무엇 하나 마음대로 못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전역을 앞두고 마음의 편지라는 판옵티콘 밑에서 벌벌 떨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전역일 까지다. 예비군마크가 쳐진 군복은 군인들을 모든 제한 장치에서 해방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역 군인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이는 소대장도, 중대장도, 대대장도 아닌 전역 전날 말년휴가에서 복귀한 전역예정자.



  교복을 입으면 학생답게 행동해야 할 것 같지 않은가? 양복을 입으면 행동도 격식을 갖춰야 할 것 같지 않은가? 한복을 입으면 좀 더 고상하고 얌전하게 굴어야 할 것 같다. 군복을 입은 군인은 단정하고 절도 있게 행동할 것만 같다. 이처럼 우리는 특별한 옷을 입었을 때 그에 맞춰 말하고 행동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그 옷을 입은 사람을 보았을 때도 어울리는 언행을 할 거라고 여긴다. 예비군복도 그에 어울리는 껄렁함허세등이 묻어나는 옷이다. 예비군복은 강탈당한 청춘과 자유에 눈물을 흘려가며 참아왔다는 증거물이다. 잠을 쪼개서 자지 않을 수 있는 자유, 야동을 보더라도 규제받지 않는 자유, 공부할 수 있는 자유, 먹을 수 있는 자유, 이 소박함이 만들어 놓은 날개다. 그렇게 우리는 일 년 중 단 하루, 잠시나마 날개를 펼친다. 그러니까 그 껄렁함허세를 잠시만 눈감아 주면 안 될까? 우리는 2년여의 시간동안 강탈당했던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