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세월호 (31)

[뭍위에서] ⑫ "슬픔보다 무기력함을 강하게 느꼈다"

유OO씨는 세월호 참사가 있던 시기, 휴학상태로 대학 내 자치언론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가족들이 있는 분당이 아닌 학교와 가까운 서울시 성북구에서 지냈다. 그는 사고 이후 엘리베이터에서 손잡이를 꼭 잡는다거나 공사장 같은 곳을 지나가지 않으려는 행동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사고 이후 그가 만든 가장 큰 원칙은 '슬픔으로 무언가를 지워내지 말자'는 것이었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서울 성북구에서 지내고 있었다. 16일에 여객선이 침몰했을 때 (분당에서) 엄마가 왔었다. 엄마가 먼저 얘기를 꺼냈고, 나는 소식을 확인했다. 그때 엄마에게 걱정할만할 일이 아니라고, “얘네 다 구출됐대”라고 말했다. 첫 번째 오보가 났던 때다. 엄마와 밥을 먹고 집에 돌아와서 뉴스를 확인해보니 그게 아..

[뭍위에서] ⑪ "나와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사고에 의미를 둔다"

오OO* 씨는 군 전역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복학 준비생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당시 일병이라는 계급을 달고 군대의 새로운 환경에 한참 적응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입대 전 독서 토론 동아리를 통해 사회적 문제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지만, 입대 이후 사회에 폐쇄적인 환경과 고된 일과로 시사에 대한 관심이 다소 사라졌다고 고백했다. 2014년 4월 16일에 기억이 나는 게 부대에서 아침밥을 먹으며 TV에서 나오는 뉴스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것을 확인했다. 사실 처음 그 사실을 접했을 때는 배 하나 침몰했거니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전원 구조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랬던 이유 때문인 것 같다. 그날, 부대의 행정반에서는 제주도에 여행 간 부대원 가족이 있는지 확인..

[뭍위에서] ⑩ "이건 과거가 아니다"

배OO씨는 대학의 기숙사를 관리하는 교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유럽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세월호 참사 소식을 접했다. 지금은 페이스북을 끊었지만, 사고 당시 페이스북을 통해 관련된 정보를 얻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정치와 안전이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런 개인의 성찰과 정치에 대한 관심은 별개라는 것도 알려주었다. 안전에 대한 강박이 심해지는 만큼, 정치에는 눈길을 주지 않게된다는 결론은 비관적이기는 하지만 생소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그는 단 한번도 국가로부터 보호받고 있다고 생각한적이 없었다. 그날은 친구 아버지 장례식에 갔다가 나오는 길이었다. 사고 소식을 좀 늦게 접했다. 핸드폰 볼 감정상태도 아니었고 해서. 아직도 기억이 난다. 장례식장에서 나와서, 지하..

[뭍위에서] ⑨ "섣부른 위로가 더 큰 상처를 줄까봐 두렵다"

전○○씨*는 ##화재에서 고객 상담과 문의 업무를 맡고 있는 2년차 직장인이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과 여러 명의 새엄마, 기댈 곳 없는 상황에서 유일한 끈이었던 할머니의 죽음을 경험을 경험했다. 그 경험은 그에게 어중간한 위로가 주는 절망감을 느끼게 했다. 제 3자가 건네는 섣부른 위로는 오히려 상처와 원망하는 마음을 줄 뿐이었다. 그는 세월호 사건에서 제 3자인 자신의 추모와 위로가 유가족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까 두려워했다. 그 날은 평소와 같았다. 아침부터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로 부랴부랴 출근하느라 바빴다. 지하철에서 한 숨 돌리며 핸드폰으로 확인했다. 세월호 사건이 터진 것을. 그 때까지만 해도 전원 구출되었다는 소식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바쁘게 이런 저런 상담과 민원 업무에..

[뭍위에서] ⑧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장OO* 씨는 서울의 한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24살의 2년 차 간호사이다. 작년에는 1년 차 직장인으로 빡빡한 근무 일정에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퇴근, 잠, 출근이라는 반복되고 고된 일정으로 그 소식을 환자를 통해 늦게 접하였다. 그녀는 바쁜 직장 생활과 더불어 사회 문제에 다소 관심이 적은 탓에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보를 간간히 SNS로만 접한다고 한다. 2014년 4월 16일에는 이브닝이라고 낮에 출근해서 밤 12시까지 일하는 일정이었다. 당시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몰랐는데 환자들이 튼 TV를 통해 그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저녁쯤에 일을 하다가 전해 들었는데 배가 침몰했고 몇백 명이 그 안에 있다고 해서 엄청 놀랐다. 일하러 가기 전에는 자느라 첫..

[뭍위에서] ⑦ "내가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되나"

김00* 씨는 24살 대학 졸업생이다. 현재는 토익 공부를 하며 입대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목회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자신도 성결대학교 신학대학을 졸업했다. 사건 이후 한 달 동안은 우울과 무기력에 빠져있었다. 그는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도, 게임을 하면서도 "내가 이래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 한 달 이후엔 죄책감을 가까스로 덮어놓았다. 그러나 죄책감이 종종 튀어나온다고 말했다. 그날 학교를 갔다. 학교를 가기 전에 뉴스를 봤었는데 가는 중에 뉴스를 봤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하여튼 그때 전원구조라는 뉴스를 봤었다. '배가 침몰했는데 전원구조라니 다행이다.' 이렇게 넘어갔는데. 오후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그 뉴스를 봤다. '전원 구조 된 것이 아니다. 아직도 ..

[뭍위에서] ⑥ "역설적이게도 자의식이 생겨났다"

손00 씨*는 세월호 사건 이후 강박처럼 더 큰 재난을 상상하게 되었다. 이전이었다면 잊고 넘어갔을 친구의 가벼운 사고소식에서도 공포를 느끼고, 혼자 있을 때면 가족이 떠나는 상황에 대해서 상상하곤 했다고 되뇌었다. 견고하다고 믿었던 체계가 붕괴되면서 완벽에 대한 불신도 생기게 되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집단 체험은 그가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을 약간씩 바꾸게 만들었다. 이전에 주변 선배들에게 이야기 들었던 용산 참사, 광우병 파동에 대해서 입장을 내리는 것이 온전한 내 생각이 아닌 것처럼 여겨졌지만 세월호 사건 이후로 생각을 밝히는 것이 수월해졌다고 고백했다. 수업을 듣고 있었다. 핸드폰을 만지다가 네이버에서 들어갔는데 속보로 해상사고가 났고, 다 구조되었다고 떴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곤 점심..

[뭍위에서] ⑤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배00 씨*는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는지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서울 소재 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공부하는, 스물 셋의 그는 경기도 안양에 산다. 세월호 사건 당시엔 비슷한 지역 사람들과 대외활동을 하고 있었다. 안산 사람도 있었다. 한 다리 건너 전해 듣는 단원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신이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 완전 생생하게 기억난다. 시험이 며칠 안 남은 날이었거나 시험기간이거나 그랬다. 공부하다가 배고파서 친구들한테 떡볶이 먹으러 나가자고 그랬다. 그런데 애들이 안 먹겠대서 나혼자 떡볶이집에 갔다. 종류별로 먹고 싶어서 여러개 시켜놓고 되게 천천히 먹고 있었다. 학교 앞에 허름한 떡볶이집이었고 주인 아주머니랑 나밖에 없었다. 엄청 조..

[뭍위에서] ④ "제도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이OO 씨*는 금융, 재무 관련 자격증 준비와 경제학과 수업을 병행하고 있으며 다중 전공이 중국 경제 통상학이라 HSK(중국어능력시험)까지 딸 예정이다. 지금은 하고 있는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 대학생인 그는 세월호 사건 당시엔 소방서에서 의무소방원으로 전환 복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경기도에 있는 구급차까지 팽목항으로 지원을 나가는 상황에서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작년 4월 16일에는 소방서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구급활동을 마치고 소방서로 돌아오자 마자로 기억합니다. 주간 근무에는 근무에 여유가 없어서 텔레비전을 켜놓고 있는 경우가 드문데, 텔레비전이 틀어져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해상사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사건이 커서 계속 텔레비전을 켜두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