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추석 (17)

"편하고 싸요" 대학생 싣고 달리는 귀향버스 탑승기

기차를 예매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원하는 날, 원하는 시간대에 기차를 예매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매한 기차표를 취소하고 학생복지위원회(학복위)의 ‘한가위 귀향버스’를 택했다. 가장 큰 이유는 단연 가격. 부산을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KTX 요금이 57300원인데 비해 학복위의 귀향버스는 16000원이다. 일반 고속버스가 2~3만 원대인 것과 비교해도 귀향버스는 아주 저렴한 편이다. 왕복 10만 원이 넘는 교통비가 부담스러운 학생들에겐 단연 매력적이다. 학교에서 출발한다는 것도 쏠쏠한 장점이다. 지방에 거주하는 학생들 대부분은 기숙사에 살거나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 떨어진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까지 가지 않고 학교에서 바로 버스에 탈 수 있다는 것이..

"한 끼 때우는 거죠" 추석에도 컵밥 먹는 노량진 수험생들

추석인 19일, 오후 5시 반쯤에 찾아간 노량진에는 의외로 사람이 많았다. 서울이 텅텅 빈 추석 당일에도, 저녁시간이 다가오자 학원이나 독서실에서 공부하던 수험생들이 헐렁한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거리로 나오고 있었다. 세 곳만 열려 있는 컵밥 노점상 앞에는 평소처럼 수험생들로 북적거렸다. 컵밥 먹는 사람들 이어폰을 끼고 혼자서 컵밥을 먹고 있었던 공민준(20·가명)씨는 노량진 고시원에 사는 재수생이다. 집은 천안이지만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고, 눈치가 보여서 내려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에게 추석이란 딱히 별다를 게 없는 날이었다. 오히려 추석에는 상당수의 밥집이 문을 닫는 바람에, 수험생들이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불편하다고 털어놓았다. 컵밥이 맛있었냐는 질문에 그는 “그냥 한 끼 때우는 거죠”라며 씁..

"안 내려가는 게 편해요" 추석을 홀로 보내는 취업준비생

추석 이맘때 즈음이면 시댁에 대한 며느리들의 불만이 폭발하여 온·오프라인의 시공간을 가득 채운다. 한집안의 귀한 딸로 태어나 남편 못지않게 애지중지 길러졌음에도 며느리라는 역할 때문에 휴일에 쉬지도 못하고 온갖 잡일을 해야 하니 왜 불만이 없겠는가. 이런 며느리들과는 대조적으로, 어디에도 얽매여 있지 않은 자유로운 신분 덕분에 명절날에도 고향에 내려가는 대신 혼자 있기로 한 이들이 있다. 이름 하야 지방 출신 ‘취업준비생’이겠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추석이지만 가족과 함께여서 혹은 직장에서 벗어날 수 있기에 추석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 이들이 많다. 마침내 황금 같은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고향에 내려가지 않은 지방 출신 취업준비생들에게 추석은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날이다. 명절을 함께 ..

[독립기념일] 영화를 보기 위해 헌혈을 할 수밖에 없었던 20대

고함20의 새로운 연재, 독립기념일! 성인이 된 20대가 왜 독립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독립기념일'은 가상의 화자 '나'가 부모님의 품을 떠나 독립하면서 겪는 일들을 다루는 연재 소설입니다. '나'의 독립 스토리를 통해 20대의 독립에 필요한 정보들을 전달하고, 20대의 독립에 대한 고민을 유도하고자 합니다. 채영이는 먼저 뭔가 하고 싶단 말을 하는 법이 없었다. 내가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참 요즘 애들스럽지가 않게도. 사귀기 전에는 별로 친하지 않아서 그러나,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사실 연애는커녕 여자애랑 얘기하는 것도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지라, 처음에는 내가 불편한가 걱정도 많이 했다. 언젠가 지나가듯 물어보니, 별거 아니란 말투로 말했다. “그냥...... 어릴 때부터 그랬어. 원래 ..

20대의 목소리 “설날은 부담스러운 날이에요.”

“취업은 어떻게?” “대학은 어디로?” 친척어른들의 질문이 껄끄러운 20대 취업준비생 이민정(26·여)씨는 설날이 부담스럽다. 친척어른들이 취업문제나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물어보면 일일이 설명하기도 힘들뿐더러, 그런 질문을 들으면 자기 스스로도 왠지 떳떳하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민정씨는 “다음 명절에는 번듯하게 직장인이 돼서 큰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최은영(25·여)씨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지금 신분이 어중간하다. 졸업 유예를 해놓고 있어서, 학생이라고 하기도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취직을 한 것도 아니다. 친척들이 요즘 근황을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졸업을 앞두고 있거나, 졸업을 했지만 취업을 못한 학생들에게 설날은 기분 좋은 날이 아니다. ..

아직도 추석에 '성차별' 하십니까?

TV를 보면 스타들이 한복입고 절을 하며 “즐겁고 편안한 한가위 되세요.” 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추석이 누구에게나 마냥 즐겁고 편안할 수 있는 것일까? 적어도 우리 어머니들에게는 추석은 결코 즐거운 날이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명절의 풍경을 보면, 전통이라는 이름하에 이루어지는 성차별이 얼마나 심각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여성만이 짊어지는 엄청난 양의 가사노동만이 문제가 아니다. 교묘하게 여성과 남성을 갈라서 생각하는 것을 요구하는 이분법적인 구도가 명절 내내 재현되고 있다. 명절때는 왜 여성이 '제2의 성'이 되어야 하는것일까? 추석 차례에서 소외되는 여성들 차례상에 올라가는 대부분의 음식은 여자들이 차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정작 조상을 기리기 위한 음식을 만들면서 가장 고생한 여자 어른..

그들만의 명절? 추석이 싫은 20대 이야기

보름달은 뜨지 않았다. 추석의 밤하늘은, 환한 보름달 대신 비를 머금은 구름이 덮었다. 추석(秋夕)을 문자 그대로 풀어쓰면 가을 저녁이라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달빛이 가장 좋다는 뜻의 월석(月夕)이라고도 부른다니, 추석하면 가을의 환한 보름달이 떠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추석의 밤하늘은 보편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철저히 개별적이다. 모두가 환한 보름달 아래서 소원을 빌기를 원한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되 나라 어디에서나 달의 노란 빛이 비추는 정도는 다르다는 점에서 개별적이다. 밤하늘의 보편성과 개별성은 ‘민족 최대 명절’이란 이름 아래 묻힌 20대에게도 다르지 않다. ‘민족 대이동’이라며 3000만의 인구가 이동했단다. 이것은 명절 아래 보편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이동할 수 ‘없는’..

[나는 알바렐라 추석특집] 추석 때도 나는 일해요!

알바렐라【명사】12시가 되기 전 집에 가야만 하는 신데렐라처럼, 무언가를 하다가도 정해진 시간만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하는 20대를 빗댄 신조어.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었다. 그리고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다. 알바렐라는 20대가 되어서 ‘자기 자신’을 잃었다. 그리고 세상과 돈에게 구박을 받는다. 신데렐라는 12시가 되면 집에 돌아가야 한다. 알바렐라도 알바 시간이 되면 뛰어가야 한다. 그래도 신데렐라에겐 호박마차가 있었다, 왕자님이 있었다, 유리구두가 있었다. 우리 알바렐라에겐 무엇이 있을까. 우리를 구원할 희망이 있기나 한 것일까. 고함20이 야심차게 준비한 재밌고 우울하고 유쾌하나 서글픈 20대 알바 수난기, 그 네 번째 이야기. 특별히 추석특집이니 기대해도 좋다. 누구는 연휴를..

연휴를 잊은 청춘들, “학원이나 가련다.”

각종 매체들에서 명절마다 반복적으로 써 내려가는 레퍼토리에 최근 추가된 항목이 있다. 바로 ‘명절 때 가장 듣기 싫은 말’ 시리즈다. 아직 사회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10대와 20대 청춘들에게는 명절에 미래를 논하는 일이 가장 두렵다. 성적, 지망 대학, 진로, 결혼 계획 등 껄끄러워서 가장 친한 친구나 가족과도 잘 얘기하지 않는 문제들을 툭툭 던지는 말로 묻는 가깝고도 먼, 그런 친척들에 대한 얘기다. 이 불편한 도마 위에서 탈출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형식적인 이야기만 오가는 명절 분위기에 질려버린 그들은, 이제 친척들을 만나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에 ‘학원행’을 택한다. 명절이고 빨간 날이고, 가족이고 친척이고 공부가 우선이다. 좀 잘 나가는 또래 친척들 사이에서 받는 열등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