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cm 두께의 베니어판을 사이에 둔 나와 ‘김 검사’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정말이지, 동거가 아닐 수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내 쪽에서도 책상을 구르는 볼펜의 소리라든지, 또 훌쩍 코를 들이켜는 소리 같은 것을 너무나도 생생히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가끔 미치도록 ‘쟁쟁쟁쟁’이 그리울 때도 있었지만, 무섭게 충혈된 작은 눈을 떠올리며 꿀꺽 침을 삼키고는 했다. 나는 점점 조용한 인간이 되어갔다.” 앞서 인용한 박민규의 소설 의 주인공은 고시원을 이렇게 정의했다. 지긋지긋한 '정숙(嚴肅)'이라는 여자랑 동거한 곳이라고. 고시원의 좁은 방과 ‘실내정숙’이라는 대원칙 아래 주인공의 자존감도 점점 작아져만 갔다. 고시원은 홈리스가 되는 것을 막아 준 소중한 곳이긴 했지만, 그 속에선 그 어떤 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