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시작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원전에 대한 불안감과 거부감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곳곳에서 원전 반대 운동이 일어나고 원전의 안전성과 대체 에너지 개발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는 등 원전이 시민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안전’ 구호만 반복하는 정부

후쿠시마 원전의 참사를 지켜 본 시민들은 즉각 국내에서 가동 중인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검증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에 정부와 원자력 당국은 국내 원전과 일본 원전의 차이를 강조하면서 우리나라의 원전은 안전하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비등수로 방식으로 운영되는 일본 원전과 달리 한국 원전은 가압경수로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수소 폭발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낙관에 대해 많은 전문가와 시민 운동가들은 우려를 표한다. 원전의 안전성과 관련, 노형의 차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 집단의 중론이다.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을 때 벌어질 재앙의 정도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론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안전’ 구호만을 반복하며 국민을 설득하려 하고 있다. 3월 31일 고리원자력본부는 고리 원전 1호기의 주요 설비를 언론에 공개하면서 원전의 안전성을 다시금 강조했다. 시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이래저래 분투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정부와 원자력 당국의 주장에 대한 다양한 반대 의견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입장만 고수하는 정부 당국의 태도는 일파만파 커지고 있는 원전 공포를 잠재우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원전 폐지를 주장하는 시위자들

기상청의 오보와 과학의 불확실성

한편 방사능 도달 가능성에 대한 기상청의 발표가 번복되면서 방사능에 대한 공포와 정부를 향한 불신은 더욱 커졌다. 당초 기상청은 편서풍 지역인 우리나라에는 방사성 물질이 날아올 가능성이 없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 23일 강원도에서 처음 검출된 것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후쿠시마발 방사능 물질 검출이 잇따르자 기상청은 동풍의 가능성을 인정하며 한 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편서풍만 믿고 다른 가능성을 검토하지 않은 기상청의 태도를 비판하고 나섰다. 일각에서는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다며 기상청에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기상청이 고의로 잘못된 예보를 했거나 정보를 통제했을 가능성은 일단 접어두기로 하자.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점은 과학적 예측의 불확실성이다. 초기에 기상청에서는 방사능 물질이 한국에 상륙한다는 주장에 대해 ‘근거 없는 루머’라며 일축할 정도로 한국의 방사능 안전성에 대해 확신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기상청의 주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틀렸음이 밝혀졌고, 기상청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기상청은 과학이 완전히 확신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영역을 섣불리 재단했다가 국민의 혼란과 불신을 초래한 것이다.

첨단 과학 기술의 시대인 현대에도 불확실성은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일기 예보가 종종 빗나가는 것처럼 자연 현상에 대한 완전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기술적으로 완전무결하다고 여겨진 시설물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지금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도 원전의 관리 시스템과 가동 방식 등 원전을 둘러싼 문제에 불확실성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원전은 정말 안전한가? 우리는 원전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예기치 못한 기술적 오류나 사람의 실수에 의해 치명적인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은 없는가? 정부 당국은 과학을 앞세워 이 모든 의혹을 불식시키려 하지만, 반대 진영에서도 정부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과학적 근거를 내세우고 있다. 원전 담론에서 과학은 결코 ‘확실한 지식’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원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독단과 맹신을 넘어 열린 소통을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열린 자세로 서로 머리를 맞대는 것이다. 자신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선전하려 드는 정부 당국의 태도는 위험하다. 불확실성의 영역에 대한 부적절한 확신은 예상치 못한 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더구나 그런 태도가 불러올지도 모를 결과가 지금 우리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극일 바에야 그 위험성을 새삼 더 강조할 것도 없다. 정부는 과학적 예측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원전 담론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정부와 산하 기관들이 시민 사회와 전문가 집단의 다양한 비판과 걱정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민간과의 소통의 창구를 마련하여 전문가 및 국민과의 대화에 나서야 할 시기인 것이다.

방사능 괴담에 온 나라가 떨고 있다. 정부는 방사능에 대한 과장된 불안을 걷어내려 애쓰고 있지만 사람들은 앞다투어 미역과 다시마를 사재기하는 등 점점 더 큰 불안에 빠져들고 있다. 이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정부 주도의 위기 관리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어야 한다. 신뢰는 자신과 다른 의견에 대한 경청과 존중에서 시작된다. 국민적 불안을 잠재우고 원전 문제의 슬기로운 해법을 찾기 위해 정부가 현명한 자세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