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이 아니다. ‘일진과의 전쟁’이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4월 말까지 학교폭력을 근절 수준으로 떨어뜨리겠다고 13일 밝혔다. 조현오 청장은 이날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많은 사람이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개학 후 2개월 시점에서는 (학교폭력이) 근절됐다는 평가가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경찰력을 총동원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 목표에 직을 걸 수도 있다"는 말에 이르러서는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일진은 범죄가 됐고, 학교는 전쟁터가 됐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불과 몇 달 전만해도 ‘학교 폭력’은 ‘학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전 대한민국의 문제였으며, 한시라도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나라 전체가 두 쪽이 날 일이었다. 그런데 이 ‘스펙타클’한 문제는 시간과 함께 다시 한 번 기억 속으로 잊혀졌다. 이 와중에 ‘일진과의 전쟁’이 선포됐으니 꺼져가던 불빛, 다시 보는 계기가 됐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그나마 다행이다’. 문제는 경찰청의 이런 비장함에도 불구하고 꺼져가던 불빛이 다시 살아날 것 같지도,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도 않다는 것이다.
 
잠시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보자. 경찰은 1995년 서울의 한 고등학생 자살을 계기로 ‘학교 담당 경찰관제’를 들고 나왔다. 학교폭력은 근절되지 않았다. 불과 2년 후, 1997년 서울 중랑구의 학교에서 일진회 학생들에 의한 집단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곧바로 ‘청소년 보호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다. 역시나, 학교 폭력은 근절되지 않았다. 4년 후, 2001년 부산에서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고교생이 가해자를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급기야, 정부와 경찰은 시민단체 등과 공동으로 ‘학교폭력대책국민협의회’를 발족시켰다. 2005년 2월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 5개년 기본계획’도 내놓았다. 이쯤 되면 지친다. 학교폭력은 현재진행형이다.
 
일각에서는 경찰의 이런 행태가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행태라고 비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경찰 측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경찰청에서도 연수로만 무려 12년간 노력을 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경찰이 12년 동안 계속해서 ‘보여주기’만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들도 나름 노력을 했을 것이다. 다만, 그들의 노력이 번지수를 잘못 찾았을 뿐이다. 
 
  
학교 문제는 학교에서 해결해야 한다. 외부의 개입이 어느 정도 학교 문제에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도움’이다. 더군다나 이번 문제는 ‘폭력’보다 학교 내부의 문제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담임교사는 학생들과 상담할 시간이 부족하다. 학교 폭력이 발생하면 그 학교에는 ‘낙인’이 찍힌다. 여기에 경쟁을 강요하는 교육 문화까지. 삼박자가 맞물려 돌아가는 상황, 경찰이 아니라 군대가 와도 해결 불능이다. 학교 폭력은 일진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교육, 그 자체의 문제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학교 교사들에게 일진 목록을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백번양보해서 일진 목록에 있는 학생들을 경찰들이 다 소탕했다고 치자. 그러나 교사들의 일진 목록을 얼마나 신용할 수 있을까. 이 조약한 일진 목록을 수정하기 위해 경찰들이 학생들을 쥐잡듯이 잡고 다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일진들을 소탕하면, 이 전쟁이 끝나는가. 일진들이 눈에 안 보여서 학교 폭력이 이 지경이 된 게 아니다. 전쟁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그리고 승리해야 한다. 잘못된 곳에서 잘못된 방법으로 하는 전쟁, 이미 패배만 겪은 전쟁에 경찰청이 다시 한 번 뛰어들 이유는 없다. 오히려 헛된 곳에 헛된 노력을 퍼붓다 진정 해야 할 일은 못하지 않을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