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취임식의 모든 분야는 새 정부의 철학을 최대한 반영하여 이루어진다. 이명박 전(前)대통령은 취임식에서 ‘탈권위적’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대통령 문장을 나타내는 봉황 대신 태평고 엠블럼을 사용했으며 취임식 연단 높이도 낮춰 국민들과의 친밀감을 높였다. 또한 그는 취임사에서부터 ‘선진화’를 강조했고, 국민들은 선진화를 통한 경제 발전의 희망을 실어 그를 ‘경제대통령’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곤 했다.

2월 25일 열린 18대 대통령 취임식 역시 대통령으로서의 박근혜의 목소리가 담뿍 묻었다. ‘국민대통합’의 메시지를 담아 각 세대를 대표하는 연예인들이 공연을 진행했다. 취임사에서는 국민이라는 단어를 57번 사용해 ‘국민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유독 이명박 전대통령에 비해 박근혜 대통령이 유난히 주목받는 분야가 있다. 패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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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이 취임식 당일 참여한 5개 공식행사에서 모두 다른 옷을 입고 등장한 후, 언론은 그의 ‘패션정치’를 분석하는데 엄청난 열정을 보였다.


9개 주요 종합일간지와 5개 주요 경제지의 전체기사를 대상으로 키워드검색 조사를 실시한 결과, 4,498건의 ”박근혜 취임“ 관련 기사 중, “박근혜 취임사”를 키워드로 하는 기사는 534건, “박근혜 패션”을 키워드로 하는 기사는 160건이었다. 이외에 사진기사 등 단발성 기사를 포함하면 패션 관련 기사는 362건에 이른다.


“박근혜 코트”, “박근혜 브로치”, “박근혜 한복”, “박근혜 가방” 등……. 박 대통령이 ‘특별히’ 착용한 장신구에 대한 설명부터 착용한 옷의 소재와 가격까지, 패션 관련 기사의 내용도 각양각색이다.


패션정치라는 용어가 새롭지는 않다. ‘브로치 외교’로 유명한 미국 전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를 포함해, 많은 여성정치인들이 패션을 그들의 리더십, 신념, 이미지를 대변하는 소통도구로 활용해왔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당선 전부터 위기 상황이나 전환시점에 패션이나 헤어스타일을 이용해 간접적으로 입장을 밝혀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대통령의 대변인으로 활약한 조윤선 여성부장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소박하고 평범한 차림새를 고집하면서도 격조 있게 보이기 위해 상당히 노력한다”고 전한 바 있다.


패션 컨설팅 전문업체 인터패션 플래닝의 이경희 컨설팅본부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취임식 때 입은 카키색 재킷은 신뢰와 안정감을 주는 의상이며 붉은색 두루마기, 파란색 치마를 선택한 한복 패션은 태극기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4학년 홍승민씨는 “이미지가 중요해지는 시대이고, 성별을 떠나 정치인이니만큼 패션에 정치적 메시지가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언론의 관심이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흥미를 위주로 하고 있다는 의견도 분분하다. ‘국민대통합’과 ‘국민행복’을 유난히 강조한 박 대통령이지만, 취임식 후 뉴스에서 박 대통령을 ‘국민대통령’이나 ‘행복대통령’으로 수식하는 기사는 찾을 수 없었다. 대신 ‘근혜스타일’이라는 키워드가 뉴스를 채우며, 패션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지는 보도 행태를 증거했다. 이전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에 대한 분석과 관련 행사스케치가 주로 보도된 것과 대조적이다.

행정학과를 다니며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행정고시)을 준비 중인 이성은(가명)씨는 언론의 패션 관련 보도에 관해 “대통령의 국정운영 능력보다 행사의 가십거리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인다”고 비판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 2학년 전민기씨는 “최초의 여성대통령이라 여성성을 부각시키려는 목적이 있거나, (박 대통령의) 일방적인 정치행보로 쓸 말이 없어서 지면 채우기 용으로 쓴 기사들이 아닐까”라고 느꼈다고 심경을 밝혔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3학년 이성건씨는 “(취임식이) 한국 첫 여성대통령으로서의 첫 외교무대이니만큼 측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패션에 관심을 가져야하지만, 언론이 이렇게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것은 이상하다”며 “현재 언론의 보도 형태는 박근혜 대통령이 그동안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서 육영수 여사를 대신해 맡아온 퍼스트레이디의 이미지가 아직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