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기억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를테면 목소리, 손짓, 걸음걸이 같은 것. M을 처음 기억하게 한 것은 단연 그의 손짓이었다. 무어라 종알대다가 누군가 톡 쏘아붙이면 M은 금세 양 검지 손가락을 빠르게 부딪히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마치 만화를 보는 것 같았다.


M을 어떻게 수식해야 할까, 간단없이 고민하다가 ‘종종’이라거나 ‘총총’이라는 말이 그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부산스러운 사람은 아니지만 왠지 까치가 겅중겅중 걸어 다니는 모양새가 떠올랐다. 바지런하게 주변을 살피며 종종걸음으로 뛰는 감파른 까치가.


동사 종종거리다

1. 발걸음을 가까이 자주 떼며 계속 빨리 걷다.

2. 원망하듯 남이 알아들을 수 없는 군소리로 자꾸 종알거리다.


부사 총총

1. 편지글에서, 끝맺음의 뜻을 나타내는 말.

2. 촘촘하고 많은 별빛이 또렷또렷한 모양.

3. 들어선 모양이 빽빽한 모양.

4. 발걸음을 매우 재게 떼며 바삐 걷는 모양. ‘종종’보다 거센 느낌을 준다.







다이어리가 독특하다. 어디서 샀나?

중국의 한 엽서 가게에서 샀다. 엽서를 좋아해서 그 가게에 많이 들렀는데 한켠에 수제로 만든 수첩을 진열해 놓았더라. 종업원이 추천을 해주겠다기에 엽서인 줄 알고 보았더니 다이어리였다. 이미 다이어리를 가지고 있다고 했지만 종업원이 새해엔 새 다이어리를 쓰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샀다. 우리 돈으로 하면 3, 4천 원 정도 한다. 원래 다이어리는 보험 회사에서 주는 검정색 나부랭이를 쓰곤 했었다. 이건 겉면이 예뻐서 샀다.


다이어리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1년에 한 권씩 계속 써왔다. 물론 모아 놓았고 가끔씩 들춰보면 새삼 부끄럽다. 부끄러운 재미가 있다.



다이어리의 용도나 구성에 대해 설명해달라.

예전에는 다이어리에 일기도 제법 길게 쓰고, 하고 싶은 일도 나열해놓곤 했다. 그런데 트위터와 네이버 블로그를 하면서 잡생각은 전자에 일기는 후자에 쓰게 됐다. 다이어리에는 일정이나 자잘한 글귀만 남았다. 그것 말고는 읽고 싶은 책이나 영화 목록, 욕 같은 것이 있다.


용도가 분산된 데는 이 다이어리가 공책처럼 쫙 펴지지 않고 작아서 쓰기 불편하다는 점도 한 몫 했다. 안 그래도 작은 다이어리인데 글자까지 작아지면 답이 없다. 긴 글은 쓰기 힘들다. 처음에는 먼슬리를 시도했지만 너무 촘촘해진 탓에 위클리로 바꾸었다.






4월 초 일정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학기 초가 아닐까? 다시 나는 중국으로 돌아갈 사람이라고 주변에 공연히 말해서 친분 맺기가 좀 그랬다. 약속도 없고, 친구들이 막 밥도 안 먹어주는 것 같고…



학교 생활이 힘들었나? 지난 학기에 복학했던 것으로 아는데.

딱히 어렵지는 않았는데, 주변에서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가령 나는 혼자 학식을 먹어도, 과방에 가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혼자 밥 먹어?” “왜 과방에 안 와?”하는 질문들이 많았다. 그 물음들이 내가 잘못 행동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학기말에는 그들의 방식대로 ‘사회화’되었나?

그렇다. 예비군 전야제까지 가면서 많이 ‘사회화’되었다. 아마 예비군 전야제와 답사는 지난 학기 최악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사회화’ 되기 전이 더 즐거웠던 것 같다. 맺을 필요가 없었던 관계에 얽매이는 것이 썩 힘들었다.







반면 학기말로 갈수록 이런저런 활동들로 바빠 보인다.

가장자리 조합원이다. 페미니즘 세미나도 하고 기타 교습도 받는다. 최근 페미니즘 팟캐스트를 시작하기도 했다.

음, 학기말로 가면서 친구들과의 관계도 풀리고 밥 약속도 생기고 점차 바빠지긴 한 것 같다.







아참, 아까 ‘중국으로 돌아갈 사람’이라 공연히 말했다고 했는데 다이어리에도 여기저기 중국이 보인다.

지난 학기 복수학위를 따러 중국 쑤저우에 다녀왔다. 중국에서 살면서 중국어를 공부하고 중국에 대한 관심도 많이 가지게 됐다. 그 관심이 이어져 탐방을 신청하게 됐고 2학기에는 다시 중국으로 간다. 이번에 가면 1년을 거기에서 살지 않을까 싶다.



오, 다시 중국으로 가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한국에 있는 게 너무 힘들다. 한국에 있으면 내 몸을 계속 어딘가에 소속시키고 싶고, 활동을 해야지만 안정이 된다. 말하자면 독자적인 개인이 될 수 없다. 소속이 없으면 나도 불안해져야 할 것 같고 실제로 불안하기도 하고 그렇다.

그러나 중국에 있으면 그저 이방인이지 않나. 어디에 소속된 누구가 아닌 자연스러운 개인이 되는, 그 감정이 좋다. 혼자 돌아다녀도 나도 그들도 서로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가는데 돈이 많이 들지도 않고 여러 가지 한국보다 안 나은 데가 없다. 마지막으로는 그냥 현실적으로 이거라도 해놔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여러모로 복합적이다.






읽고 싶은 책, 영화 목록이 눈에 띈다.

많이 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다른 취미 생활은 딱히 없다. 보통 남성들이 모이면 당구나 볼링을 치러 가는데 그런 곳에는 도무지 취미가 없어서.

최근에 본 영화 중 인상 깊었던 것은 계륜미 주연의 <여친남친>이다. 계륜미가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봤다. (그녀가 바리깡으로 머리를 깎을 때 너무나 아름다웠다. 꼭 써달라.) 처음에는 주인공 세 사람 간의 감정선이 전혀 이해되질 않다가, 두 번째 볼 때 이해가 되면서 느낌이 확 왔다. 여러분, <여친남친> 꼭 보세요.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따로 동그라미가 처져 있는데.

아는 친구 한 명이 하루키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책이나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하루키의 책만, 하루키를 원작 삼은 영화만 이야기해주었다. 대체 얼마나 괜찮나 싶어서 보았는데 신선했다. 야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팟캐스트도 즐겨 듣는 모양이다.

집에 있을 때 틀어 놓거나 학교에 가면서 듣곤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야채라디오다. 컨셉은 어떤 사연이든 보내주면 다 읽는다는 것이다. 어떤 라디오든 팟캐스트든 사연이 ‘선택’되어야 하고 그 이유로 간절해지는데, 여기는 내가 뭘 보내든 간에 무조건 읽어준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최근에는 안 보냈지만 한때는 꽤 자주, 주기적으로 보냈다.



본인은 정적인 사람인가?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쪽이 더 편하다.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이 점점 더 편해지기도 하고.

덧붙이자면 활동적인 취미를 거의 하지 않는다. 집에서 방안에서 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을 즐긴다. 하다 못해 컴퓨터로 TV를 본다거나 음악을 틀어 놓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문화 생활을 많이 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잡식가 겸 대식가 느낌?

처음에는 MP3로 노래듣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인디밴드 위댄스를 우연히 접하고 나서 직접 가서 보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됐다. 기타를 연주해보고 싶어서 강좌도 수강하게 됐고. 나의 문화적 경험은 보통 연쇄적으로 일어났던 것 같다.







그렇군. 이건 대체 뭔가?

생각을 짧게 쓴 것이다. 트위터 공개 계정에 쓰긴 좀 그렇고 나만 보고 싶을 때 끄적인다. (트위터는 내 삶의 이유이다.) 큰따옴표 안에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말을 옮긴 것이다.



부정적인 정서가 팽배한데?

직관적으로 튀어나오는, 정제되지 않은 언어니까… 공개적으로 말하기 좀 그런 것들만 써놔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씨발 씨발의 향연은 왜 그랬는지 기억도 안난다. 가족과 관련한 일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굳이 어떤 이인지 밝혀야 한다면 스스로 밝고 긍정적인 용기가 북돋아나오는 사람은 아니다.




감파른 M에게 나는 늘 막연한 호기심을 가져왔다. 대체 이 사람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으로 늘상 고개를 갸웃거리게 됐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이 글에서 M의 모호한 매력이 잘 드러나야 하는데, 그게 참 보여드릴 수도 없고 거참 안타깝네’하는 심정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M은 깃털을 정리하고 눈동자를 굴리며 총총 뛰어갔다. 그렇다면 나도 이만 총총.



인터뷰/글. 이매진(temporis@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