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그러나 외롭지 않았던 싸움이 끝날 것으로 보인다. 한진중공업 노사 간의 교섭을 통해 정리해고자 94명은 1년 내에 재취업할 권리를 얻고, 2000만원의 생계보조비를 받게 된다. 10일 오후 2시로 예정된 노사합의안 찬반투표의 가결만이 남았다. 9일 모든 일이 끝날 것으로 보였지만 경찰과의 마찰이 역사의 순간을 하루 늦추었다. 그러나 일단 합의안이 통과되면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드디어 35m 높이의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와 영도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리해고 철회 없이는 내려오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가 결국 현실화되는 것이다. 김진숙 위원이 올해 1월 6일 크레인에 올랐으니 계산해보면 겨울부터 봄, 여름, 가을까지 1년을 꼬박 공중에서 보내고서야 이 같은 결과를 얻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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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권고안을 제시한 이후로는 한 달, 그리고 사실상의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된 이번 달 8일부터면 고작 사흘이면 해결될 일이었다. 그러나 부당해고 노동자들의 지위가 회복되는 데까지는 너무 많은 힘과 시간이 들었다. 지난해 12월 20일부터 전국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는 총파업에 돌입했다. 법적 해결을 위해 ‘정리해고 무효확인 청구소송’도 진행 중이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309일을, 정리해고자 박성호·박영제·정홍형 씨는 137일을 크레인 위에서 떨어야 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희망버스’가 있었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조직된 희망버스는 다섯 차례에 걸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한진중공업의 부당 정리해고 문제는 이렇게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한 사회적인 이슈화가 된 이후에야 해결됐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에 올라가고 나서야 정치인들이, 시민들이 힘을 모아주기 시작했고, 또 희망버스가 주요 언론 1면 기사를 뒤덮고 나서야 국회와 사측이 제대로 된 협상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런 면에서 한진중공업의 노사 합의가 이제야 이루어진 것은 한편으로는 매우 씁쓸한 일이다. 아주 기본적인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것마저 한국에서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도의 투쟁은 일단 마무리되었지만 한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근로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는, 그리고 그로 인한 비명 소리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한진중공업의 노사 타결이 끝이 아니라 노동자의 고통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한진중공업의 낭보가 전해진 날인 9일, 한 명의 근로자가 목숨을 끊은 채로 발견됐다. 안성휴게소 뒤편 야산에서 목을 맨 채로 발견된 주검은 쌍용자동차에서 재직하던 근로자였다. 그는 쌍용자동차 구조조정 사태가 빚어진 2009년 4월 이후로 18번째 사망한 쌍용차 노동자로 기록됐다. 최근 두 달 사이에만 세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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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는 2009년 4월 8일 경영난 해소를 명목으로 2천646명에 이르는 인력감축안을 발표했다. 당시 노조 측은 총파업을 통해 평택공장을 점거했고, 이 과정에서 노사 간의 무력 싸움이 계속되어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당신과 나의 전쟁>, <저 달이 차기 전에>와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져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9년 8월 6일 합의 이후 쌍용차 노동자들은 사실상 잊혀졌다. 그러는 사이 구조조정이 남긴 상흔으로 인해 2년 만에 노동자 18명이 저 세상으로 떠나갔다.

2011년 11월 9일, 영도에서 노동자의 희망이 실현됐다. 그러나 그 희망을 향해 하나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아직 완전한 승리가 아니라, 가야할 길이 더 먼 것이라고.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합의 이후 후유증을 겪지 않을 수 있도록, 또 더 이상의 쌍용자동차 근로자 자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길은 명확하다. 노동자의 보편적 권리와 노동의 보편적 가치를 증진시킬 수 있도록, 우리가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