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교수가 또 한 차례 우리를 놀라게 했다. 1500억 상당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14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 원장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안철수 연구소 주식지분의 37.1%의 절반(1500억원 상당)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결정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고민해오던 그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연구소 직원에게 보낸 단체 e메일에서 그는 “기업이 존재하는 것은 돈을 버는 것 이상의 숭고한 의미가 있으며,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기여하는 존재가 돼야 한다는 보다 큰 차원의 가치도 포함된다고 믿어왔다”고 이야기하며, “특히 상대적으로 더 많은 혜택을 입은 입장에서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안 교수의 결정은 사회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500억원 상당의 큰 금액을 기부하기로 한 그의 통 큰 결정에 다수의 사람들이 존경어린 박수를 보냈다. 트위터의 타임라인은 안 교수의 기부를 환영하는 멘션으로 가득 찼고, 안 교수의 기부를 다룬 기사에 네티즌들은 환호로 답했다. 그가 한국사회에 갖는 상징적인 위치를 고려했을 때, 이 같은 결정은 단순히 일회적인 기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안철수 교수도 그의 e메일에서 “오늘의 제 작은 생각이 마중물이 되어, 다행히 지금 저와 뜻을 같이해주기로 한 몇 명의 친구들처럼, 많은 분들의 동참이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뜻 있는 다른 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대해봅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의 이런 통 큰 결정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연쇄적인 사회 흐름으로 만들어내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안 교수가 주식 지분 사회 환원 결정에 대해서 “단지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던 일을 실행에 옮긴 것일 뿐”이라 밝히고 있다. (출처 ; 중앙일보)



 하지만 ‘기부’라는 보편적 가치를 실천한 것을 두고도 웃을 수 만은 없는 사람들이 있다. 몇몇 보수세력을 비롯한 기득권 세력이 그렇다. 물론 다수의 의원들은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볼멘소리를 쏟아내는 이들 또한 존재했다. 강용석 의원은 안 교수의 결정을 두고 “좋은 일인데도 의도가 없어야 평가 받을 수 있다”며 “정계입문의 발판이 되질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안철수 연구소 주식은 전형적인 작전주”라고 주장했다. 자유선진당은 논평에서 “새 정치는 절대선이고 기존정치는 절대악이란 광신을 불러올 수 있다.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고 밝혔다.  이는 서울시장 출마 이후 대권 주자로 부각되고 있는 안 교수의 행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여 경계한 탓이다. 기부라는 사회 보편적 가치를 정치적 의도로 해석하여 그 가치를 깎아 내리려는 그 발상이 놀랍다. 더 우스운 것은 이들이 안 교수를 비난함으로써 자신들의 입지를 더욱 더 좁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 교수는 진보인가, 보수인가? 정치와 거리를 둔 채 청년세대의 멘토로, 의식있는 기업인으로 살아온 안 교수에게 묻기 어려운 질문이다.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기준은 한가지가 아니다. 그 중 가장 흔한 잣대 중 하나는 ‘변화에 대한 태도’이다. 현재 상태를 고수하고자 하는 세력은 보수, 현재 상태를 개혁하려는 세력은 진보라 볼 수 있다. 안 교수는 기득권 세력의 행보를 비판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진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변화에 대한 태도로 진보와 보수를 나누려는 시도는 그 변화의 구체적 내용을 이야기하지 않은 채, 변화 자체만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오류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이보다도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태도가 보다 정확한 판단을 내리도록 도움을 준다. 아직까지 안 교수의 정치 성향에 대해 정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에 대해 안 교수는 보수주의자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진중권 평론가는 안 교수를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라 칭했다. 그는 안 교수가 문제 제기한 ‘부의 편중된 분배’를 시장개혁의 필요성으로 보았다. 자유주의 시장체제 전제로 합리적인 방향으로의 시장 개혁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진보주의자는 아니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자칭) 보수 세력은 그런 안 교수를 비난하고 나섬으로써 스스로 보수의 정체성을 저버리고 있다. 안 교수와 진보 세력을 묶고 있는 끈은 ‘상식 대 비상식’의 구호이다. 이 틀에서 현 기득권 세력은 ‘비상식’의 영역에 포함되는 존재이다. 이들이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고 ‘보수주의자’라는 정체성을 지키고 싶다면, ‘상식 대 비상식’의 틀을 깨야 할 것이다. 이는 합리적 보수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비상식’에서 벗어나 ‘상식’의 영역으로 들어감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합리적 보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안 교수를 비난함으로써 ‘비상식’의 영역으로 더 깊숙히 침잠해 들어가고 있다. 그럴수록 국민들의 마음은 그들에게서 더욱 더 멀어지고 있다.

강용석 의원이 9일 열린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청문회에서 안철수연구소 예산삭감 소동과 관련해 발언 하고 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위기에 빠진 기득권 세력이 진정한 쇄신을 이루려면 단순히 당 지도세력을 교체하고 당명을 고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한참 모자라다. 그들이 갖고 있는 진짜 문제는 정체성의 문제다. 어떤 사건에 대해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들이 내세우는 정체성과 일치하지 않거나 오히려 부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모습으로 인해 국민들의 신뢰는 더욱 더 낮아져가고 있다. 문제의 근원으로 깊숙히 들어가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자칭 보수 세력에게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