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주인공은 도박으로 생긴 빚 때문에 지하감옥에 갇혀 강제노동에 시달린다. 노동 대가로 최저임금을 받고 여기서 일정부분 빚이 변제된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에 들어오는 돈은 시간 당 350원 정도다. 사병들이 받는 임금이 이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얘기다.” - 노승욱(28)

한달 108만원이 아닌 10만8천원

툭 까놓고 얘기해보자. 사병들이 받는 임금이 적정선인지 말이다. 올해 기준으로 육군 병장은 월 10만8천원을 받는다. 108만원이 아니다. 이마저도 지난해에 비해 4% 인상된 것이다. 시급으로 따지면 520원에 불과하다. 한 시간 일해 과자 한 봉지도 사먹기 힘든 셈이다. 좀 더 엄밀히 따져보면 시급은 더 낮아진다. 주어진 하루 일과가 끝났다 해서 무조건적인 자유시간이 보장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며칠 새 걸쳐 진행돼 잠을 못자는 일도 부지기수인 부대 훈련과 취침시간 사이에 있는 야간 경계 근무도 있다. 이를 포함하면 병장이라 해도 한 시간에 500원도 채 되지 않은 돈을 손에 쥐게 된다.

참고로 국회사무처 소속 안보경영연구원이 2009년 9월 현역병 7,2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병의 41.9%는 부모 등에게서 송금을 받고 있으며 평균 송금액은 월 5만8,020원으로 조사됐다. 징병제를 유지하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적은 건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의 경우 우리나라 돈으로 22만원 정도 되는 월급을 지급하며 대만 병사는 약 39만원을 받는다. 독일은 200만원 수준이다.


그럼에도 헌법재판소는 최저임금에 현저히 못 미치는 현역 병사 임금에 대해 소수 의견이 없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특정한 보수수준’에 대한 내용이 법령에 의해 구체적으로 형성된 바 없어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헌재는 또한 “현역병은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비교적 단기간 병영 생활을 하는 것이고, 의식주에 필요한 비용 역시 국고에서 지급되고 있다”며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당할 정도의 보수를 줄 필요가 있는 직업군인과 비교할 때 평등권을 침해한다고도 볼 수 없다”고 부연했다.


헌재의 이번 판결이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을까. 주 40시간 근로 시 받을 수 있는 월 최저임금은 약 96만원이다. 사병 하루 급식비는 6155원으로 월 18만4650원,  월 보급품 구입비로 군이 책정한 비용은 3500원이다. 신촌 지역 저렴한 하숙집의 임대료가 30만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모두를 빼더라도 47만1850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군 복무기간 전체로 따지면 약 990만원이다. “의식주에 필요한 비용 역시 국고에서 지급되고 있다”는 근거로 정당화기는 어려운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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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적어서는 안된다”

사실 직업군인도 병역의무의 일환이지만 이점을 차치하더라도 최저임금에 비해 사병이 받는 봉급은 너무 적어 비교하기 우스울 지경이다. 문제는 헌재가 이 지나친 간극까지도 정당화했다는 것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트위터에 “‘사병 월급이 이 정도인 것이 이상적이다’라는 것을 헌법재판소가 결정해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적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헌재가 판단 해줘야 합니다”라며 이견을 달았다.

최저임금은 사용자가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근로자의 노동 행위에 과도하게 낮은 임금을 지급해 착취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에서 정한 최소한의 임금이다. 결국 최저임금을 정한 국가 스스로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여 이를 지키지 않은 셈이다. “자발적으로 일하는 사람에게 최저임금을 안 주면 형사처벌(3년 이하의 징역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습니다. 그런데 국가가 강제로 일을 시켜놓고 최저임금도 안 준다는 것이 어떤 논리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홍교수의 지적이다.


군인을 법적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법적 근로자가 갖는 일반적인 권리들을 보장할 경우 국가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논리다. 대학생 권영재 씨(25)는 “군인들이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까지 주장하면 어떻게 하냐”며 우려를 표했다. 이 주장대로라면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32조를 군인에게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법적으로 사병의 월급 역시 봉급이다. ‘공무원보수규정’에서 정한 ‘군인의 봉급표’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봉급의 법적 의미는 “직무 곤란성과 책임 정도에 따라 지급되는 기본 급여”를 말한다. 근로자가 아닌데 봉급을 주진 않는다는 얘기다. 사병과 마찬가지로 군법·공무원법을 적용받는 장교, 부사관이 최저임금에 상응하는 봉급을 받는 것도 군인의 근로자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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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지급 요구가 포퓰리즘인가

현실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돈이다. 대학생 최연석 씨(25)는 “첨단무기 도입 같이 다른 곳에 쓸 돈도 많은데 그 많은 병사들에게 최저임금을 줄 수 있겠느냐”며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병 월급 현실화 움직임이 번번이 공론화되지 못하고 무산된 것도 대부분 예산 때문이었다.

기획재정부가 내년 사병 월급을 26% 인상하겠다고 한 국방부에 불편한 심기를 표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동연 재정부 차관은 지난 7월3일 “(국방부의 사병 월급 인상 계획은) 정치권의 포퓰리즘에 따르는 요구로, 예산 요구단계부터 너무 포퓰리즘에 맞추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직접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줄다리기 끝에 결국 인상률은 15%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조금만 고심해보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관건은 돈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 지난 4.11총선 당시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은 “군 사병 월급을 50만원으로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이를 통해 마련되는 목돈을 “대학등록금, 창업자금 용도로 사용될 수 있도록 국가가 관리하자”는 것이다. 남 의원은 사병 평균 급여를 50만원으로 인상할 경우 필요한 예산을 약 1조 8천억원(평균급여기준) 혹은 2조 2천억원(상병월급기준)으로 추정했다.


군인권센터가 추진하고 있는 방안도 이와 흡사하다. 월 60만원을 지급하고 그 중 30만원을 산재보험으로 적립해 전역 후 사회복귀비용으로 마련하자는 것이다. 올해 국방예산의 6~7%, 국가예산의 0.7~0.8% 수준으로 “국가의 의지와 사회적 합의만 있다면 현재 정부예산에서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규모”(남 의원)다. 군인권센터는 “군 보급품을 맡는 군인공제회나 PX(영내 매점) 운영 등을 담당하는 국군복지단에서 나오는 수익과 군인들이 일괄적으로 사용하는 국군복지카드 수수료 등으로 재원을 충당할 수 있다”고 했다. 군인의 소비를 군인의 복지로 바꾸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얘기다. 


국방비가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보급병으로 복무했던 한 공군 예비역은 “수억원에 이르는 비행기 부품이 ‘빵꾸’(서류상 수량보다 실제 수량이 적은 것)가 나는 것은 일도 아니다”라고 증언했다. ‘100만원짜리 USB’ 논란 같은 예산 오용을 줄이면 이를 사병 임금으로 충당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국방비 사용에 투명성을 확보함으로써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들의, 아니 우리들의 목숨값

그외 예산 투입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방법이 있다.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되는 토목공사를 줄였을 때 절약되는 예산을 끌어오는 것이다. 임금 현실화에 소요되는 비용이 1년에 2조원이라 쳤을 때 4대강 공사(22조원)를 하지 않았을 경우 11년 예산을 마련할 수 있다. 무엇이 우선이고 더 가치 있는지는 위정자들의 입을 통해서 드러나곤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0월18일 NLL 근방 부대를 방문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세상에 목숨값보다 비싼 것은 없지만 최저임금에 못미치는 사병임금은 이를 무색하게 한다. 국방부가 대안으로 주장하고 있는 게 군가산점이다. 고함20과 인터뷰를 가졌던 백목련 씨(25)는 “군가산점 제도는 국가고시와 공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소수만 이득을 보는 제도”라고 꼬집었다. 반면 최저임금 지급 요구는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모두에게 평등한 방법이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달라는 것이다. 헌법을 보자. 제39조 2항은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