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자들의 취업 불황은 우리나라의 일만이 아니다. 전 세계 청년들이 취업 때문에 울상 짓고 있다. 영국은 대졸자의 절반이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으며, 중국의 경우 고학력자들이 환경미화원에 몰리고 있다. 그렇다면 4년제 대학에 비해 일찍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는 전문대생의 형편은 좀 더 나을까. 요즘 같은 시대에 취업이 잘 돼서 부럽다, 혹은 나도 전문대 갈 걸 하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듣는다는 전문대생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전문대, 적성에 맞춰왔지만...
실내디자인을 전공하는 A씨(22). A씨는 남들보다 1년 늦게 전문대학에 들어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진로를 고민했고 흥미와 적성에 맞추어 전문대학에 입학했다. 처음엔 대학을 가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대학을 다닐지 말지 고민했다. 하지만 전문대로 눈을 돌리고 작년부터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등록금은 4년제 사립대와 비슷한 328만 원 정도다. 대학 입학 전에 좋아했던 일을 깊이 있게 배우고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고 교수님들에게 전문적인 견해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학교를 다니면서 과제가 많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도 굉장히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졸업을 앞둔 그는 이번 학기에 제출해야 하는 졸업 작품 때문에 하루에 3시간도 못 잔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졸업 작품을 준비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있다고 했다. 바로 취업이다. 취업을 바로 할 것인지 아니면 워킹홀리데이를 이용해서 외국을 갈 것인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빨리 취업을 하는 것도 좋지만 먼저 취직한 동기나 선배들의 말을 들으면 지금 환경이 그다지 좋지 않아 망설여진다는 것. A씨는 졸업 작품을 끝내고 교수님들과 취업한 선배, 동기들과 이야기해본 뒤 더 고민해볼 것이라 했다.
A씨에게 전문대 나오면 취업이 잘되지 않느냐는 말을 꺼내자 A씨는 먼저 한숨을 쉬었다. 4년제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소리라고 했다. 전문대를 나오면 취업이 비교적 잘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질은 낮지 않느냐고 A씨는 반문했다.
“우대는 바라지 않아요. 4년제에 비해 배운 것도 적은데 우대를 바라면 욕심이죠.” 4년제와 월급차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 하냐는 질문에 A씨가 대답했다. 일단 2년제라는 점에서 차이가 나고 4년제 대학생들에 비해 스펙에서 밀릴 수 있다는 것이 A씨의 의견이다. 2년 더 오래 공부한 점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해서는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디자인사무실에 취업한 동기의 경우, 4대보험이 적용되고 월급은 150만 원 선이에요. 그런데 주6일 근무도 모자라 일주일 내내 출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다른 동기는 야간근무까지 하고 아예 밤을 샌 상태로 다시 출근하기도 하더라고요.”
대우는 좋지만 자기개발이 불가능해
전문대 간호학과 3학년인 B씨(22)는 요즘 국가고시 준비에 한창이다. B씨는 지금 대학병원에 취직이 확정된 상태이지만 68일 남은 국가고시에 떨어지면 취업이 취소된다. 공부가 어렵지는 않지만 공부하는 양이 많아 힘들다고 했다. 학교행사도 참여해야 하고 곧 기말고사가 다가와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다.
3년제 간호대학의 한 학기 등록금은 300만 원 정도이다. 전문대이긴 하지만 학생들에게 이것저것 지원을 많이 해줘서 좋았다고 한다. 특히 간호학과의 경우 학교에서 밀어주는 학과라 혜택이 더욱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해외 인턴십 제도다.
B씨가 합격한 대학병원의 근로환경은 다음과 같다.
- 연봉 2,800~2,900만원
- 앞으로 주5일 근무 확대될 것
4년제 대졸자들은 누구나 대기업 취직과 3000만 원 이상의 연봉을 꿈꾼다. 하지만 조선비즈의 자료에 따르면 올 대졸자 중 월 200만 원대 이상의 월급을 받는 사람은 겨우 37%이다. 10명 중 4명도 채 안 되는 숫자이다. 대졸자 중 월급 100만원도 못 버는 사람이 8명 중 1명인 상황에서 B씨의 근무환경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그렇지만 B씨에게도 고민은 있다. B씨는 학사도 빨리 따고 조금 더 공부해서 다른 쪽도 알아보고 싶지만 병원이 보수적인 편이라 연차 어린 간호사가 학교 다니는 걸 별로 반기지 않는다고 한다. 더욱이 연차가 높은 간호사들이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눈치가 보여 힘들다는 것. B씨는 ‘이렇게 일하다 보면, 과연 나는 언제 공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공부를 더 하면서 자기개발을 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이다.
전문대라고 진로고민 없나요?
이번이 마지막학기인 전문대 유아교육과 C씨(22)는 실습을 다녀온 뒤로 고민이 많다. 유아교육을 전공하면서 적성에 맞지 않아 힘들었는데 실습을 하고 나서 취업과 적성에 대한 의문이 더 깊어졌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선생님의 평균 초봉이 1,440만 원정도이고 주5일제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토요일 근무하는 곳이 많고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한다. 얼마나 좋은 근무환경의 유치원에 갈 수 있느냐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이 일을 할지 말지도 확실하게 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당장 졸업이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도 없다. 직업을 정하는 일이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데 그에겐 신중할 수 있는 시간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는 “대학 3년 동안은 대학생으로서 좀 더 다양한 곳으로 눈을 돌려 세상을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전문대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라고 말했다. 전문적인 기술 딱 하나만 배우는 느낌이 4년제 대학에 비해서 부족하게 느껴져서다. 이것저것 해보고 싶었지만 보통 전문대는 시간표가 매 학기 정해져있기 때문에 다른 공부를 할 수도 없었다. 학교생활 외의 시간도 잘 나지 않는다. 지금도 실습 때문에 빠진 수업을 보강하느라 저녁 늦게까지 학교에 있는단다. 그는 “4년 배울 것을 3년에 배우다 보니 시간에 쫓겨 제대로 못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라고 말했다. 졸업을 앞두고 보니 나는 이 일에 맞지 않는 것 같은데 3년 동안 배운 것이 이것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에 용기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왜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냐는 질문에 C씨는 “아이들을 굉장히 좋아해서 유아교육과에 오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공부를 하면서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했다. 가장 힘든 것은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느끼는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는 것. 그래서 이 일이 적성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러한 판단에 도움이 된 것은 실습이었다. C씨는 실습을 통해서 이 일이 적성에 맞는지 아닌지를 고민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C씨는 “저에게 맞지 않는 일을 하다 보니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고 자꾸 실수를 해서 힘들었다”면서도 “오히려 지금이 좋은 점도 있어요. 저녁까지 이어지는 보강에 몸이 너무 힘들지만,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어 고민이 없어져요. 지금만이라도 다른 일은 있고 싶어요” 라고 털어놓았다.
전문대를 나오면 취업이 잘된다? 4년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된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취업의 질이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월급은 주로 150만 원 안팎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도 모호하다. 월급은 그렇다 쳐도 칼퇴근은 당연히 있을 수 없고 야간. 주말근무는 기본이다. 또 적성에 맞지 않다고 해도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취업난을 뚫고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전문대생들의 얼굴은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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