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내가 지금은 달라져 있다. 청년정책연구소에 들어가 거대한 정책을 논하고 있는가? 오, 그건 아니다. 대선 후보 캠프의 청년 조직에서 실시간으로 뜨끈한 정치 현황을 파악하고 있는가? 그것도 아니다. 다만 대학생, 동아리 부원 같은 기존의 내 역할에 추가한 것이 있을 뿐이다. 바로 “당원”이라는 역할이다.
정치 무관심 인생 최초로 당원이 되다
나는 녹색당원이다.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처럼 귀에 익숙한 거대 정당을 생각하신 분들께는 생소하게 들릴 것이다. 생전 처음 듣는 정당일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친구들도 “그런 정당도 있어?”라고 눈이 휘둥그레졌더랬다. 그들의 다음 질문은 이거였다. “뭐야, 그럼 너 정치해? 너 정치인이야?”
맙소사, 나는 ‘정치인’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건 맞다. 정치적 발언 및 제언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에서 활동하는 것 등은 직접적, 적극적인 참여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 외에도 정당에 가입하고 매달 당비를 냄으로써, 내가 지향하는 가치를 정치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사람들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이것 또한 ‘참여’하는 것이다.
처음 녹색당을 알게 된 건 2011년 12월, 친한 동생을 통해서였다. “누나, 이런 정당이 새로 생긴대.” 툭 던지고 간 녀석 때문에 순전히 호기심에서 ‘녹색당 창당 준비 위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세계 각국의 녹색당 창당 및 활동의 역사(독일 당의 활발한 활동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창당 필요성과 정책을 찬찬히 읽었다. 생명권, 대안에너지 같은 생태적 가치나 지속 가능성을 지향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풀뿌리 민주주의와 평화, 여성과 어린이를 비롯한 소수자 인권문제를 주요 사안으로 설정한 것은 새로웠다. 아마도 그때가 ‘정책’이란 것을 찾아 읽어본 생애 첫 순간일 것이다.
“녹색당에 가입하세요!” 라는 글귀가 적힌 화면 오른쪽 배너를 클릭했다. 정당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창당 발기인이 5000명 이상 필요하다는 글과 함께, 현재 모인 인원이 몇 명인지 나와 있었다(당시 약 2700명이었던 것 같다). 좀 낯설기는 해도 이 당이 꼭 창당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중시하는 가치 중 몇 개를 주요 의제로 내걸고 있었기에.
창당 동의 서명만 하려고 했는데, 어느새 내 손은 당원 가입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당시 막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있던 터라, 매달 만원씩 당비까지 내기로 마음먹었다. 무슨 패기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정치에 무관심하던, 아니 그보다는 냉소적이던 내가 조그만 목소리를 내는 데에 보탬이 되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정당 가입은 사회에 대한 관심의 촉매제
그리하여 나에게는 하루아침에 이른바 ‘당적’이 생겼다. 이메일로 당 소식을 받기 시작했고, SNS에서 열심히 홍보 중인 당원들을 여럿 만났다. 나도 조금씩 주변에 알리기 시작했다. 지난 4월 총선 선거비용 마련을 위해 특별 당비도 냈다(녹색당은 오롯이 당원들의 당비로만 운영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정치 현황에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다른 정당에서는 어떠한 정책을 주안점으로 두고 있는지, 어떤 활동을 통해 지지자를 모으는지 등을 흥미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시도당 창당대회에 각 1000명 이상 모여야 하고, 대회는 5번 이상 개최되어야 정당 등록이 가능하다는 정당법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도 이 때다. 서울 및 수도권, 부산 지역에는 당원이 필요 인원보다 훨씬 많았지만 충청도나 강원도에는 당원이 부족해서 다함께 가입 독려를 해야 했다. TV뉴스나 신문에는 나오지 않는 군소 정당(진보신당, 청년당 등)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과 ”알면 좋아할 수 있다“는 말을 실감했던 시간이었다.
총선 결과를 논하자면, 준비 기간이 짧고 홍보가 부족했기 때문에 녹색당은 정당 존립 기준 2%의 득표율에 미치지 못해 해산되었다. 동일 정당명을 반복해서 쓸 수 없다는 정당법에 따라 ‘녹색당 더하기(+)’로 이름을 새로 짓고 현재는 재창당을 준비 중이다. 이것이 객관적인 현실이나,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정당 가입 이후의 ‘나’의 변화이다.
무엇보다도, 정치가 더 이상 나와 동떨어진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이 가장 크게 변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이제는 “그들만의 리그”라 여기고 아예 눈을 돌리지 않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강령이나 당헌 작성 과정 등 중요한 의사 결정 과정에 온라인으로 참가하기도 하고 복지 논쟁, 동물권 논쟁 등 토론 과정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또 정기적으로 열리는 운영위원회 소식과 당비가 사용 내역도 전달받는다. 지난 5월 13일에는 청년 녹색당 발족식에 참가하고 당원으로서의 투표권(공동운영위원장 선출, 선언문 채택)을 행사하는 뜻 깊은 경험도 했다.
당 내부 운영 소식뿐만 아니라 정치 전반에 대해서도 관심이 조금씩 생겼다. 총선 이후 “내가 투표로 뽑은 사람들은 어떻게 나라를 이끌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에 뉴스도 주의 깊게 보게 되고, 법안과 국회 개회 소식에도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어떤 정책들이 있는지, 꼭 필요한 것인지, 나는 이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을 정리하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입으로 내건 공약들이 실제로 지켜지고 있는지 찾아보기도 했다. 이와 동시에 학교에서는 정치학 수업을 들으며, 정치학으로 전공을 결정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기도 했다(나는 자유전공학부생이다).
작은 관심이 작은 변화의 원동력
물론 특정 정당에 가입함으로써 나의 정치적 입장이 그 정당에 완전히 국한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떤 사람들은 당적을 그 사람 자체와 동일시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제한적인 시각이며 상당히 위험한 인식이라고 본다. 단지 특정 정당에서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주된 안건으로 삼고 있다면 그에 대한 일종의 동의권을 행사하는 것이 정당 가입의 의미라고 본다.
따라서 ‘나의 정치 입문기’는 정당 가입을 독려하고자 쓰인 것이 아니다. 다만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고, 그 관심은 “작은 것에서 시작해서 작은 것으로 끝나도 된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적게 되었다. 예컨대 나는 지속 가능한 개발과 소수자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다. 이러한 작은 관심을 사회적으로 증폭해줄 수 있는 도구 중 하나가 정당이기에 가입한 것이다. 작은 관심들이 모여 작은 변화를 만들어낸다면, 느리더라도 충분히 의미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생각하는 정치는 좁은 의미에서 ‘나라를 통치하는 과정’, 즉 국가 권력을 획득, 유지 및 행사하는 활동을 뜻한다. 한갓 대학생인 나와는 거리가 먼 단어들이다. 그러나 보다 넓은 의미에서 정치란 사람들 사이의 의견 차이나 이해관계를 둘러싼 다툼을 해결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정치는 생각보다 우리 삶에 밀착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무조건적인 거부감은 뒤로 하고 작은 관심이나마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어느 사상가가 말했듯 우리는 “더불어 사는 동물”이고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아니, 이런 따분한 이야기는 제쳐 두고라도, 나의 의견과 생각이 더 큰 ‘스케일’에서 논의될 때의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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