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제 대학에 다니는 학생 위주로 만들어진 청년 정책은 고졸·전문대 출신 20대들에게 는 전혀 공감을 못 얻고 있었다. 그들에게 정치란, 삶에서 먼 이야기였다.
사회에서 묘사하는 20대의 표상은 ‘4년제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다. 언론매체에서나, TV 드라마에서나 20대는 언제나 4년제 대학 학생들로 그려지고, 청춘 마케팅, 청춘 담론 또한 4년제 대학 학생들을 기준으로 삼아 이야기되고 있다. “20대는 왜 정치에 무관심 하냐?”는 기성세대들의 핀잔 역시, ‘의식 있고 용감한’ 4년제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20대 대다수가 4년제 대학교에 다니는 것은 아니다. 올해 대학진학률은 고교 졸업자 기준으로 71.2%였다. 4년제 대학교 신입생은 37만명(43%), 전문대 신입생은 24만명(28%)이었다. 올해 14만명 (16%)이 재수생이라는 통계를 봤을 때, 아무리 적게 잡아도 전문대 28%와 고졸 13%(11만명), 41%는 4년제 대학에 다니지 않는다. 물론 재수를 하고 난 뒤에 전문대에 입학하거나, 대학 입학을 포기하는 사람까지 합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이렇듯 20대의 절반 가까이가 고졸·전문대 출신인데도 불구하고 정작 이번 대선에서 그들의 정치적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있다. 이들이 20대 초반에 취업을 위해 뿔뿔이 흩어져서, 조직된 목소리를 낼 수 없을뿐더러, 정치권에서도 이들을 ‘비주류’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정치권 공약만 보더라도,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일자리와 대학 등록금 정책에만 치중해있다. 이미 취업을 한 고졸·전문대 출신 20대에게는 남의 이야기인 것이다. 이들은 취업률은 높지만 비교적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고, 연봉도 4년제 대학 졸업자에 비해 훨씬 적은 편이다. 2010년 기준 학력별 평균 연봉은 고졸 189만원, 전문대졸 198만원, 대졸 이상 295만원으로 나타났다. OECD 국가들 중에서도 한국은 고졸과 대졸간의 연봉 격차가 가장 큰 나라다.
고졸·전문대 출신 20대들은 저임금과 불합리한 노동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그들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청년 공약을 적극적으로 내놓지 않고 있다. 4년제 대학교 재학생 위주의 청년문제 해결방안은 그들의 삶에 와 닿지 않았고, 정치와 대선에 대한 관심을 전혀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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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왔는지 잘 몰라요”
이규성(25·가명)씨는 얼마 전까지 인천에 있는 소규모 업체에서 9개월 동안 MCT 가공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이다. 그는 전문대에서 체육을 전공했으나,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공장에 들어갔다. 그에게 대선 후보 중 지지하는 사람이 있냐고 묻자 “누가 후보로 나왔는지도 정확히 몰라요. 알아 봐야죠”라고 말했다.
일할 때는 너무 바빠서 정치에 관심을 가질 엄두도 안 났다. 도면을 받고 프로그램을 짜서, 컴퓨터에 입력을 하는 MCT가공 일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배워나가다가 보니 고생도 심했다. 막내라서 눈치 보는 일도 많았고, 거의 12시간에서 15시간 동안 일을 했다. 시간이 남으면 주로 운동을 하다 보니 뉴스를 보거나 인터넷을 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는 “군인 하려고 준비했을 때가 있었는데, 그 때는 정치나 사회에 대한 공부를 했어요. 그런데 너무 바쁘니까 아예 관심이 없게 되던데요“라고 털어놓았다.
규성씨의 주변, 특히 일터에서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오가지 않는 것 같았다. 그에게 정치는 삶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먼 일’이었고 ‘공부’해야 하는 일이었다. “정치 쪽으로 이야기 할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빨리빨리 일을 해야 하잖아요. 누가 정치 이야기를 자주 하면 자존심 상해서 공부를 하겠지만, 그것도 아니고… 이걸 알아서 뭐에 써먹겠냐는 생각이 들죠”
4.11 총선 때도 투표를 하지 못했다. “원래 그 날은 쉬는 날인데, 주문이 많이 들어와서 바쁜 상황이었어요. 막내라서 눈치가 보이니까 그 날도 공장에 나갔고, 투표를 못했죠.” 그는 “평소엔 전라도 사람인 어머니를 따라서 민주당에 투표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선 후보에 대해서는 “치우치지 않고 자세하게 살펴보고 뽑겠다”며 앞으로 관심을 가져 보겠다고 말했다. 정치에 대해서는 막연하게나마 희망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자신의 삶에 정치가 전혀 영향을 못 끼친다고 느끼는 듯 했다.
“일본 같은 경우에는 목형(나무 가공)업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목형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거든요. 야간 수당을 붙여서 일을 시켜야 하는 거라서 업체에서 임금을 감당하지 못하나봐요. 그 나라는 국민들에게는 대우가 참 좋아보였어요. 노동시간에 비해 돈도 많이 주고… 그래서 한국이나 중국 쪽으로 목형 외주를 주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아직 일한만큼 대우받지 못한달까?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이런 부분에 대해 신경써줬으면 좋겠어요.“
그의 말은 근로기준법상 초과근무, 야간근무에 대한 수당이 존재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걸 이야기 해주고 있었다. 또한 청년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일자리 정책만큼, 노동 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해주는 부분이기도 했다.
ⓒ 민주노총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정치에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는 사람도 있었지만, 고함20이 만난 전문대·고졸 출신 20대 중에선 아예 대선에 무관심하거나 투표할 의지가 없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들은 입을 모아, 실질적으로 그들에게 다가오는 공약이 없으며, 대선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치과에서 치위생사로 일하고, A전문대 보건행정학과에서 오후 6시부터 10시나 11시까지 야간수업을 듣는 장한나(22)씨. 힘들게 일하고 바로 학교 가는 게 버거운 그에게 정치나 대선이란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해 떠 있는 시간에는 환자들의 치아를 보고, 해가 진 이후에는 전공 책 보기 바쁘다.
“솔직히 저는 정치에 관심 없어요. 제가 투표한다고 세상이 달라질 거라는 생각은 안 해요. 친구가 투표하라고 자꾸 권유를 해서 투표를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대선에 거의 관심이 없어요. 그리고 총선 때도 투표를 했지만, 병원일이 일찍 끝나지 않았으면 아마 못했을 거예요. 4.11 총선 때처럼 이번에도 병원에서 일찍 끝내줘야 투표를 하든 말든 하겠죠.” 4.11 총선 때도 그가 일하는 병원은 정상적으로 영업을 했다. 병원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집까지 한 시간이 걸리는 만큼, 평소처럼 다섯 시에 끝나면 투표를 하러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한의원에서 병원 관리와 간호 보조 일을 하고 있는 고졸 출신 김은영(22)씨도 “대선 후보가 누군지도 잘 모른다”고 말할 정도로 정치에 관심이 없다. 또한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정치계에서 복지 담론이 많이 나오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정치인들의 공약은 잘 모르지만, 요즘 ‘경제 민주화다’, ‘반값등록금을 한다’ 얘기 많이 하잖아요. 솔직히 저에겐 세금 더 내라는 얘기로만 들려요. 지금 4대 보험료로 세금 내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물가가 비싸니 임금 인상이 저의 관심사예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지역에서 아마추어 바둑 선수로 활동하는 이혜진(20·가명)씨도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 한다. “인터넷을 해도 만화책을 보거나 포털사이트에 있는 게임을 하지, 인터넷에 있는 정치뉴스를 잘 안 봐요”라고 말한다. 그의 삶에는 정치가 전혀 개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변 친구들도 대부분 같이 바둑을 두는 애들이다보니, 만나면 주로 바둑에 대한 이야기나 잡담을 해요. 정치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아요.”
수많은 사람들이 다 중요하다고 떠드는 대선도 그에게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별 상관 없는 것 같아요. 내 삶에 무슨 영향을 끼치진 않잖아요. 지역이 지역이다 보니까 어른들은 박근혜를 찍으라고 하는데, 사실 저는 별 생각이 없어요. 그 사람들이 뭘 하는지도 모르겠고요.” 냉소나 회의가 들어있는 말투는 아니었다. 진심으로 정치와 자신의 삶에 대한 연관성 자체를 찾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회사에 취직하지 않고 바둑선수와 같이 1인 자영업 식으로 돈을 버는 청년들에 대한 정책이 거의 없거나, 있어도 홍보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의 말에서 잘 드러난 것이다.
기존 정치권에 관심을 가지다가 회의적으로 변한 경우도 있었다. 전문대 졸업 이후, 생활용품 매장에서 매장관리직으로 일하고 있는 서진식(27·가명)씨는 얼마 전까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다가 지금은 ‘정치인들 다 거기서 거기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서민적인 느낌, 서민의 편일 것 같아서 문재인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친구들하고 이야기 하다 보니 문재인 역시 너무 거대하고 지키기 힘든 공약들만 내세우는 것 같았어요. 공약 같은 걸 보면 기대가 되고, 마음에 확 와 닿고 그래야 하는데…” 사퇴한 안철수 전 후보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정치계에서 때 묻지 않은 사람이라 약간은 기대했는데, 단일화 토론 때 얘기하는 걸 봤는데 정치에 자신이 없어 보였어요.” 진식씨는 자신이 기꺼이 표를 줄 후보를 찾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치가 내 삶을 바꿔준다고 생각하지 못한다면, 이런 말들도 전혀 공감이 안 될 것이다.
“주변에서 저만 정치에 관심이 있어요.”
고졸·전문대 출신 20대들이 대선에 큰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정치계에서 내놓는 구호 또는 공약들과 그들의 삶에 접점이 없다는 점이 가장 컸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직접적으로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좋아질 거라는 기대를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정치적 무관심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고, 우연한 계기로 정치적 의식이 생긴 경우도 찾아 볼 수 있었다.
고졸 출신으로 모 대기업 계약직에 취직한 김다정(21·가명)씨는 이모가 운동권 출신이여서 같이 집회를 가다 보니, 자연스레 정치적 관심이 생긴 경우다. 그는 트위터에 자주 글을 쓰면서, 정치적 의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직장 동료들은 정치에 거의 관심이 없다.
“저는 은행에서 넘어오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카드 신청서 틀린 것을 교정하고 스캔을 하는 일을 해요. 9시부터 18시까지 일하는데 카드 신청서가 워낙 많다보니까 상당히 바쁘죠. 저야 일 끝나면 약간의 여유가 있지만, 20대 중·후반 정도의 직장 동료들은 결혼을 해서, 퇴근하고 집안일을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정치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평생교육원(학점은행)에서 실용음악을 공부하는 한유일(20)씨도 정치에 관심이 많다. 그는 “고등학교 때 이런저런 책을 읽다가 자본주의가 빈익빈 부익부를 조장한다는 것을 깨닫고, 진보적인 정치색을 갖게 되었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주변에선 정치 이야기를 하면서 공감대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제가 파악하기로는 한 반에 있는 40~50명 중에 저를 포함해 1~2명 정도가 정치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혼자서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대선에 대해서 편하게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아요.”
그는 주변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오히려 자신이 특이한 케이스라고 여기고 있었다. “10대 때는 입시에 시달리느라 정치색을 가지거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시간과 공간이 없고, 20대 때는 취직이나 먹고 사는 문제를 생각하다보니, 오히려 정치에 무감각해지죠. 청년문제 해결한다고 말들이 많지만, 실제로 저한테 도움이 되는 정책은 없는 것 같아요. 특히 저는 음악을 하고 싶은데, 그 쪽은 취직하거나 안정적인 생활하기가 유난히 어렵거든요. 대통령 바뀐다고 솔직히 일자리가 생기거나 삶이 직접적으로 나아지는 건 없을 것 같아요.”
최초의 세대별 노조인 '청년유니온'의 활동. 피자업체의 '30분 배달제' 폐지를 추진하는데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다.
고졸·전문대 출신 20대가 대선에 관심 갖게 하는 방법은?
그렇다면 이들이 정치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대선, 나아가 정치 전반에 관심을 갖게 만들 방법은 없을까? 수도권 지역의 공단에서 노조를 조직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활동가 백성호(가명)씨는 “젊은 노동자들이 노동 환경에 많은 불만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그 불만을 정치를 통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최저임금과 근로 기준법 위반과 같은 문제가 우리 자신의 문제라는 걸 알려주면서, 정치적 의사가 조직화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연결고리를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정치인들이 고졸·전문대 출신 20대들을 위한 공약을 만들어내는 것도 좋지만, 대학생들처럼 조직적으로 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통로가 만들어지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중요한 일이라고 보고 있었다. 그들 다수가 느끼는 문제의식이나 불만 사항을 즉각적으로 정치에 반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졸·전문대 출신 20대의 상당수는 중소업체나, 개인 사업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조직화되기가 힘들다는 문제가 있다. 이 점에 대해서 청년유니온 대의원 이택준씨는 “청년유니온도 아직은 그들의 정치적 의사를 오롯이 모아내고 조직할 수 있는 역량이 없다. 파편화된 그들의 생활 형태를 보았을 때 앞으로도 조직해내기가 쉽지 않다. 결국 그들을 조직하는 것보다 그들이 자신의 정치적·사회적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전문대 졸이나 고졸 청년들의 의사를 명확하게 반영할 수 있는 정치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정치개혁의 방향이 정치적으로 소외된 목소리의 영향력을 키우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정치권에서도 고졸·전문대 출신 20대를 마냥 외면할 순 없을 것이다. 정치 무관심층, 무당파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곧 새로운 지지층 형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학생을 위한 정책에서 탈피한, 또 다른 청년정책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투표, 왜 해요?①] http://goham20.com/2618
[투표, 왜 해요?③] http://goham20.com/2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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