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 재학 중인 홍이슬(25)씨는 21일 통장의 모든 돈을 인출했다. 소액결제만 20만원이 넘는 통신요금이 빠져나가면 당장 생활비가 없기 때문이다. 통신회사에서 이번 달에 홍이슬 씨에게 청구한 요금은 총 27만원 4천원, 그 중 22만원이 소액결제로 사용한 돈이다. 홍이슬 씨는 지난달에 연애를 시작했다. 새 옷이 필요했지만 잔고는 부족했다. 그 때 이슬씨의 눈에 들어온 것은 휴대폰. 인터넷에서 휴대폰 소액결제를 이용하면 간단하게 주문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달에 30에 불과한 조교비를 생각하면 다음 달 사정도 뻔했지만 이슬씨는 남자친구에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 이슬씨의 휴대폰은 정지 위기에 처했다.

대구 달서구에 사는 주부 장 모(43)씨는 통신요금을 보고 깜짝 놀랐다. 평소에는 3만원 수준이던 통신 요금이 8만원이 넘게 부과된 것이다. 자세히 내역을 살펴보니 3건의 소액결제요금이 도합 4 7천원이 나왔다.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보고 나서야 장씨는 고등학생 딸이 자신의 휴대폰으로 인터넷에서 화장품, 목도리 등을 구매한 사실을 알았다. “휴대폰과 주민번호만 있으면 이렇게 쉽게 결제를 할 수 있는지 몰랐어요. 제가 이 서비스(소액결제)를 신청한 적도 없고 딸애가 제 공인인증서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스무 살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30만원 결제 한도 드릴게요.

통신 3사의 소액결제 서비스가 인터넷에서의 카드사용을 대체하고 있다. 특히 새로운 결제수단에 거부감이 낮고 신용카드발급이 되지 않는 대학생들에게 인터넷 소액결제는 매력적인 수단이다. 통장잔고가 없어도 휴대폰만 가지고 있으면 별도의 신청 없이 즉시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소액결제는 카드로 결제가 불가능한 1000원 이하의 금액을 결제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지만 이통사에서 30만원의 한도를 제공하자 휴대폰 소액결제로 구매할 수 없는 물건은 거의 없어졌다.

현재 이통 3사가 가입자들에게 제공하는 소액결제 한도는 3만원에서 30만원. U plus의 경우 가입한지 두 달이 지나면 별다른 고지 없이 자동으로 한도가 30만원으로 올라간다. 나머지 이통사도 대다수의 가입자가 최고한도인 30만원을 제공받는다은 점에서 사정은 대동소이하다. 2000년대 초반 카드대란 이후 카드 발급 요건이 까다로워 진 신용카드사들과는 한참 사정이 다르다. 신용카드사들은 고정 수입이 있는 사람에게만 카드를 발급할 수 있다. 게다가 카드회사들이 무이자 할부 등의 유인책을 통해 지불능력이 낮은 고객들도 높은 금액의 물건을 구매하도록 유도하자 금융감독원(금감원)이 개입했다. 카드사들이 돌려막기를 유도하여 신용문제를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올해부터 가처분 소득이 월 50 이하인 경우 신용카드 발급과 연장에 제약이 걸린다.

흔히 보는 휴대폰 소액결제 창. 보통 증명서 등 1000원 이하의 결제를 위해 휴대폰 소액결제를 사용하다가 자신에게 한도액이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소액결제 쇼핑에 빠져든다. 


하지만 저신용자인 학생들에게도 최고한도를 제공하는 이통사들에게는 별다른 약이 가해지지 않고 있다. 방통위 관계자는 지난 달 15일 문화일보 기사를 통해 "이통사 측이 소액결제 한도액을 정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한도액 변경 시 이용자 고지를 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대부분의 이통사가 지키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유사금융업을 제공하는 이통사와 카드사의 형평성 문제도 남아있고 소액결제의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해야 할 상황이지만, 정부는 도리어 소액결제를 부추기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전자금융거래 활성화를 목적으로 작년 10 31일에 의결한 전자금융감독규정 일부개정 규정안은 스마트폰 소액 결제 채널을 허용하여 편의점 등에서도 30만원 이내의 결제를 할 수 있다는 규정을 포함했다. 오프라인에서는 제한적으로만 가능하던 소액 결제를 전격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소득을 넘어서는 이통사의 결제 한도 제공은 이미 사회적 문제를 낳고 있다. 앞서 고함20에서 보도한 소액결제 사기(http://goham20.com/2693), 지불이 준비되지 않은 저신용자들의 연체와 신용불량자로의 전락, 그리고 범람하는 소액결제 현금서비스 등의 문제는 늘어갈 뿐 해결이 어렵다. 이렇게 산적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해결의 의지 없는 이통사 결제 대행사들에 대한 규제의 논의 없이 정부는 오프라인으로 시장만 키워가고 있는 셈이다. 이미 소액결제를 현금처럼 쓸수 있게 하는 불법 업체들이 문제를 낳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 비판받을 만 하다. '소액결제 현금화' 업체가 바로 그렇다. 

 
 
휴대폰만 있으면 현금 서비스 3분만에 가능합니다.

갓 군에서 제대한 대학생 김민성 씨(23)는 지난 달 선배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장례식장에 가기가 두려웠다. 수중에 현금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돈을 빌릴 지 고민하던 중 인터넷 댓글 란에서 보았던 소액결제 현금화 서비스 광고가 기억났다. 소위 휴대폰 ‘깡’이다. 가장 광고가 많은 ‘세xx’이라는 업체에 전화해 보니 10만원 이상은수료 25%를 떼고 10만원 미만은 30%를 뗀다고 하기에 10만원을 서비스 받았다. 3분만에 통장에 7 5천원이 입금되었다. 김 씨는 수수료가 아깝기는 하지만 현금이 부족할 때면 (소액결제 현금화 서비스가) 생각이 날 것 같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한 소액결제 현금화 업체 광고


휴대폰 소액결제를 현금으로 바꿔주는 ‘소액결제 현금화 서비스’ 광고는 인터넷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인증번호를 통해 먼저 결제하고 수수료를 뺀 나머지 금액을 통장에 바로 입금시켜 주는 업체다. 대출은 소액도 기록에 남아 신용등급을 저하시키는 데 반해 소액결제 업체는 원금을 통신사에 지불하면 되니 20대 초반 저신용 고객들이 진입장벽 없이 사용할 수 있다. 현금을 쓸 일이 있을 때 전화 한 통이면 된다는 점도 부담이 없고 소액결제와 마찬가지로 휴대폰만 있으면 되니 연령과 소득의 제한도 없다.

금융약자들에게 현금서비스를 높은 수수료로 제공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 서비스는 불법인 데다 사기업체가 많아 피해사례가 증가한다는 것도 문제다. 결제 유도 후 입금하지 않으면 해당 전화번호를 받지 않는 식이다. 사기를 당해 수사를 요청, 진행하면 피해자도 불법 서비스를 이용한 대가로 벌금을 내야 한다. 이통사는 이런 사기사건에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이미 사기가 접수된 업체의 소액결제 창구도 제한하지 않는다. 아직 이통사에 내지 않은 돈을 사기당한 것인데도 이통사에서는 결제를 취소해 주거나 업체에의 지급을 미루는 등의 가능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이러한 불법이 판치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이러한 불법으로 인해 이통사도 이득을 본다. 이통사는 알면서도 묵인해 준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통사도 책임을 저야 마땅하지만 책임은 피하고 모든 문제를 소비자들과 결제대행사에 전가하기 급급한 모습이다.


당장 부족한 금전사정에 시달리는 가난한 20대들이 소액결제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는 어렵다. 책임은 이들이 지고 돈은 이통사가 번다. 이통사들에게 소액결제시장은 과부하인 통신시장을 기반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매력적인 신사업이다새로운 결제방식에 거부감이 낮은 20대에게 신사업의 성공이 달려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하지만 신용이나 지불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도 무작위 결제를 허용하는 것은 결국 이들의 쪼들리는 처지를 이용해서 배를 불린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소비자들의 연체 채권을 추심업체에 팔아넘겨 연체를 회수했기 때문에 이통사들의 금융업 확장을 금융업계 수준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피해갈 수 없다. 소액결제로 핸드폰 정지 위기에 처한 홍이슬 씨는 말한다. "정부가 신기술을 장려하는 것은 좋지만 특정 사업자들에게 혜택을 주기 전에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