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다. 연예인들은 자신이 공황장애였노라고 고백하고, 정신과 심리에 대해 다루고 있는 웹툰 '닥터 프로스트'는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는 책, 신문, 뉴스에서 주기적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래도 '나의 일'은 아니다라는 인식은 여전한 듯 하다. 수많은 이야기들과 관심이 쏠리고는 있지만 다들 남의 일인양, 방송에 나오는 불치병 얘기를 보는 듯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한 사건에 대해서도 '정신 질환자'란 말이 붙냐 안 붙냐에 따라서 반응이 정반대로 갈리듯이 말이다.

문제는 이미 우리 사회엔 정신 질환자라고 포함될만한 사람들의 숫자가 남의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는 것이다. 물론 정신 질환혹은 정신 질환자에 대한 단어에 대해서 정의는 아직 명확하게 내려진 바 없다. 하지만 정신병 혹은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은 옛날의 천벌에서 갈수록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또한 많은 선진국들이 정신질환을 일상 생활이 어려운 정신 장애 증세는 물론이고 각자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벼운 정신적 문제나 스트레스성 질환들도 포함해 해결하고자 하고 있다.

현재 정신질환에 대해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는 크게 정신질환자의 숫자가 많고, 계속 증가하는 것사회적 분위기 탓에 정신질환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거나 인식하면서도 치료 혹은 상담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아래의 사례들을 확인해보자.


 
# “애초에 그걸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C(21)는 중, 고등학교를 공황장애와 함께 보냈다고 했다. 공황장애는 '특별한 이유 없이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는 극단적인불안증상, 즉 공황발작(panic attack)이 주요한 특징인 질환이다. 공황발작은 극도의 공포심이 느껴지면서 심장이 터지도록 빨리 뛰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며 땀이 나는 등 신체증상이 동반된 죽음에 이를 것 같은 극도의 불안증상'이다.

물론 전 제가 그 때 겪었던 것들이 공황장애인 줄 몰랐어요. 다만 하나의 공포증이라거나, 이상한 거라고 생각만 했죠. 최근 몇 년 간 방송에서 연예인들이 공황장애가 있다고 말해 공황장애가 이슈화되면서 알아봤더니 그게 제 증상이더라고요(웃음)”

물론 그가 공황장애 때문에 병원을 찾아보거나, 상담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애초에 정신병이라고 깊게 생각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문제가 있다곤 생각했지만 병원에 찾아가면 어떻게 상담이나 진료를 받을지도 두려웠고 기록이 남는 건 아닌가 걱정되었다고 한다. 또 자신이 정신병원에 찾아갔다는 이야기를 집에다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애초에 그걸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가 겪은 공황장애는 비 공포증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중학교 1학년 어느새부턴가, 비가 오는 게 되게 무서워지는 거예요. 비가 세차게 오는 날이면 막 죽을 것 같은 공포심이 너무 드는 거죠. 그게 실제로 비가 엄청 오는 날 우산 없이 그걸 맞으면서 집에 돌아올 때 이러다 죽겠다는 공포심이 들었어요. 사실 말은 안 되잖아요. 근데 전 그 때 친가족 중 한 명이 돌아가신 상태였고, ‘사람이 죽는 것에 대해 너무 많은 걱정을 하고 있어서 그랬나봐요. 결국 그게 트라우마로 남아서인지, 그 이후로 비가 내리거나 천둥번개가 치는 날이면 집에서 꼼짝도 못했어요. 너무 무서워서.”

다행히 현재 그는 꽤나 자가 치료된 상태라고 말한다. “어쩔 수 없었어요. 비는 1년 내내 오는 거잖아요. 여름엔 장마, 태풍도 있고.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일부러 비가 오면 비를 더 맞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괜찮다 괜찮다 안 죽는다이러면서 막 달래는 거죠. 실제론 무서워서 심장이 엄청 뛰고 있는데. 그러다보니까 어느새 많이 괜찮아 졌어요. 이제 비 오는 건 별 감정이 없어졌거든요. 다만 비오는 상황 아니더라도 종종 죽을 것 같다는 공포심이 갑자기 들기도 하지만, 가끔이라 괜찮아요


# “별건 아니었지만, 그 때 치료로 지금은 많이 나아졌죠

K(21)는 어린 시절 정신병원에 간 적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언덕 위 하얀 집의 느낌은 아니지만, 어릴 때 집중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어 부모님이 상담 겸 데려갔다고 했다. 이후 6개월 정도 병원에 다니며 집중력을 키우는 치료를 했고, 지금 그는 집중을 하는 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사실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그런 거대한 정신질환의 이미지는 아니죠. 그냥 일반 병원 다니듯이 다녔던 거고, 가서 특별한 치료 받은 것도 아니고 도형 맞추기나 뭐 이런 거 했었거든요(웃음)”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요. 어린 시절 했던 것들이 도움이 된 것을 부정할 수 없.”


# “전 이런 비밀이 있어요인터넷 속 익명 프로젝트 비밀엽서

2004년 예술가 프랭크 워렌의 '비밀엽서 프로젝트'는 프랭크 워렌이 공공장소에 비밀엽서를 보내달라는 엽서를 남긴 것에서 시작했다. '자신의 비밀을 보내주세요'라는 내용에 사람들은 프랭크 워렌에게 편지를 보냈고, 2008년까지 15만 통의 비밀 엽서가 왔다. 
 

프랭크 워렌의 비밀엽서 프로젝트

인터넷의 커뮤니티에서도 비밀에 관한 프로젝트들은 진행되고 있다. 인터넷의 익명성을 이용해 자신들의 비밀을 풀어놓는 것. 댓글이 수백 개에 달하는 이 글들을 보면 성추행이나 집안 문제, 성적 문제 등 다양한 비밀들이 담겨있다. 그 안에는 우울증, 강박증과 같은 정신질환도 빠지지 않는다. 심각한 우울증에 손목을 그어봤다고 고백하는 이야기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인터넷 속 사연을 담은 이야기들


사실 정신질환은 위의 사례들처럼처럼 흔하고
, 누구에게나 생길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일차적으로 자신의 상태가 정신질환이라고 인식을 못하고 있고, 이차적으로 알더라도 사회적 분위기 상 그 누구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뿐이다.


‘1/4
가 정신질환 경험’, ‘상담이나 진료 받지 않아...’ 숨기기만 하는 정신질환

하지만 우리나라의 정신질환 실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에 의하면 최근 1년 간 정신 질환을 앓은 사람은 16.7%에 달했고, 그 중 10명 중 1명은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와 같은 질환이었다. 평생 한 번 이상 정신 질환을 겪은 사람은 약 25%에 달했다.
 

'모든 정신장애'에 응답자 전체가 27.6%에 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정신질환 경험이나 치료 수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20122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의하면 정신질환 진료를 받은 사람은 2006년에 160만 명이었지만 2010년에는 204만 명으로 늘었다. 특히 1020대는 무섭게 증가하고 있다. 같은 조사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0년이 되기까지 15~19세의 질환 환자는 41% 증가했다. 20대는 올 초 서울의대 윤영호 교수가 건강관리 인식 및 실천에 대한 대국민 조사결과에서 20대의 29.5%가 자살할 위험도가 있다고 밝혔다. 전체 응답자 평균이 19.1%인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결국 이런 문제들은 일상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고, 우리나라를 세계 최고의 자살률 국가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20대의 '자살하고 싶었다'가 가장 높아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됨을 알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공황장애를 겪었던
C씨의 사례처럼, 사람들이 진료나 상담을 받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2011년 정신질환 보고서에 의하면 정신질환자 7명 중 1명만이 상담하거나 진료를 받았다. 또한 ‘2011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 의하면 정신질환에 걸린 사람이 치료 받은 경험은 15.3%로 미국의 약 40%가량보다 훨씬 낮았다. 치료를 받지 않은 이유도 C씨와 마찬가지로 치료 사실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32.2%에 달했다. 그렇다보니 진료를 받고나서 보험처리를 받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보험처리를 할 경우 여러 기관에 기록이 넘어갈까 두려워서다.
 

2011년 한국은 2001~3년 유럽이나 2002~3년 일본보다는 높았지만 비슷한 년도의 미국, 호주보다는 월등히 상담 치료율이 떨어짐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정신질환은 일반 질환들처럼 살면서 한 번 쯤은 겪을 수 있는 것들이다
. 하지만 가벼운 정신질환이라서, 사회분위기상 문제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은 상담을 받거나 치료를 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우울증이 되고, 자살로 이어진다. 20대의 사망 원인 1위 자살,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부끄러운 결과에는 분명히 우리나라의 정신질환에 대한 부족한 사회 인식이 한몫 차지하고 있다.


정신질환은 이미 전 세계적 문제... 지속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물론 정신질환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것은 우리나라 뿐만은 아니다
. 유럽의 경우 2011년 유럽인 5억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유럽인의 38%가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지역 정신건강 보건소를 설치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정신병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등 우리보다 한 발 빠른 대처로 정신질환 부담률을 줄여나가고 있다. 미국의 경우 법원에서 정신질환자 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판결하지 않는 이상 정신질환자에게 어떤 사회적 불이익도 줄 수 없도록 명시하기도 했다.

4월부터 보건복지부는 약물처방과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기존의 정신과 질환표기 대신 보건일반상담으로 바꾸기로 했다. 하지만 심리상담사를 찾아 상담을 받은 경우가 아니라 정신병원에 찾아간 경우,정신질환에 대해서는 약을 처방해주는 일이 잦다. 약은 효과가 빠르고, 모든 사람들에게 상담을 해줄 수없는 현실적 여건이 주된 이유다.

결국 이번 변화도 현실적으로 맞닿은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해보인다. 다만 이번 일을 시작으로 정신질환이 자신의 삶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인식과 정신질환에 대해 치료나 상담을 받는 것을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개선되어야 한다. 언제까지고 사람들이 스스로 개선될 때까지 노력을 하고, 인터넷의 익명성을 빌려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하는 방법에만 기댈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