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80원. 2015년 대한민국의 최저시급이다. <고함20>은 6월 29일, 내년도 최저시급 결정 일을 앞두고 최저시급에 대한 연재, "마지노선의 최저임금"을 시작한다. 연재는 현행 최저시급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해, 최저시급 인상안을 놓고 오가는 쟁점들을 짚어보고 최저시급에 관한 다양한 시각의 이야기를 다룬다. 5,580원. 2016 대한민국의 '마지노선'으로 충분한가?


알바천국의 동영상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동영상에 나오는 아르바이트 생들은 손님에게 바라는 것으로 ‘존중’을 꼽았고, 자신을 존중해주는 손님들의 등장에 감사하며 눈물을 흘린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아르바이트생들은 존중받는다는 것에 대해 어색하다. 이러한 상황은 대부분이 최저시급 혹은 그에 준하는 낮은 시급을 받고 일하는 환경이 만든다. 뉴욕대학교와 런던정경대 교수인 리처드 세넷은 <불평등 사회의 인간존중>에서 노동자들은 ‘유용성’ 발견을 통해 자아존중을 확립하며, 자신이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유용하다고 생각될 때 타인에게서 존중받는다고 느낀다고 했다.  노동자들이 자신이 하는 일의 ‘유용성’판단에는 급여가 큰 영향을 끼친다. 상품 시장에서 ‘비싼 재화는 그만큼의 가치를 한다’고 인정받는 것처럼, 노동시장에서 ‘고임금’ 역시 ‘유가치한 것’으로 평가된다. 


화제가 된 알바천국 동영상, '알바를 대함에 마음을 더하다'편. ⓒ 알바천국


낮은 급여는 존중도를 떨어뜨린다


높은 급여, ‘유가치한 사람’으로 평가된다는 것은 곧 타아로부터의 존중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낮은 급여의 일을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상대적으로 무가치하게 느끼게 된다. 모든 이들은 노동에 대한 대가를 기대한다. 허나 그 대가가 낮을 경우, 노동의 가치에 대한 평가를 절하하고, 다시 자신의 가치에 대한 평가절하로 이어진다. 로스 펄린은 <청춘 착취자들>에서 방송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롭의 이야기를 인용한다. “조감독은 최저의 임금을 받는 방송계의 최저계층의 노동자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들은 할리우드 카스트 제도의 불가촉 천민이다”. 즉, 최저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일수록 더 낮은 처우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는 저임금 노동자가 타아로부터 존중을 받지 못하고, 결국 자아존중을 확립할 수 있는 유용성 역시 느끼지 못함을 의미한다.


<시사인>에 따르면, 2015년 최저임금인 5,580원은 OECD에서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26개 국가 중에서 15위다. 이 순위는 최저임금제를 법으로 도입하지 않은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같은 나라를 감안해서 계산하면 더 떨어진다. 이 순위로 계산하면 OECD 총 34개국 중 27위다. 거기에 더해 <아시아경제>에서 밝힌, 경제사회발전노사정 위원회가 올해 2월 개최한 전문가 워크숍에서 국제비교 통계 분석 결과 우리나라는 2012년 기준으로 저임금 근로자 비율이 25.1%로 OECD에서 두 번째로 높다. 청년들 대부분이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직종인 커피숍, 백화점, 편의점, 식당, PC방은 대체로 최저시급, 저임금이다. 낮은 최저시급을 받으며 일하는 청년들이 자아존중이 생기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아르바이트생이 존중 받아야할 대상이라고 여기지 않고, 아르바이트 생 역시 자신의 가치는 자신의 시급인 5,580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아르바이트 사이트의 구인 공고. pc방, 편의점, 카페 등  대부분이 최저 시급이다. ⓒ 알바몬


무시받는 인도네시아, 스스로를 존중하는 유럽


유럽에 갔을 때와 인도네시아에 갔을 때를 기억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물가 차이가 심하다보니 노동에 대한 댓가의 차이도 심해서, 잘 사는 국가에서 온 외국인들은 청소해주는 사람, 빨래해주는 사람, 운전수 등 최소 3명의 현지인 노동자를 데리고 살았다. 이들은 정해진 시간이나 부르는 시간이면 언제든 와서 노동을 했는데, 고용주의 신경을 조금만 거슬리면 바로 해고당하곤 했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바로 다른 이가 와서 그 자리를 채웠다. 그곳에서 노동자는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바로 대체가능한 하나의 ‘로봇’과 같은 존재였다. 인도네시아의 노동자들은 고용주 혹은 돈이 많은 외국인들의 ‘갑질’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거기에 더해 돈 많은 외국인들은 그들을 존중할 대상으로 보는 대신 무시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등에 갔을 때 가장 답답했던 것 중 하나는 ‘일하는 사람들이 제멋대로’라고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유럽의 노동자들은 저녁 5시가 되면 문을 닫기 시작해서 6시가 되면 거의 문을 닫았다. 우리로 치면 명동같은 나라 최대의 쇼핑거리도 마찬가지였다. 기차역이나 공항처럼 공공적인 곳에서 서비스직으로 일하는 사람들 역시 점심시간과 퇴근시간을 칼같이 지켰으며, 일하는 시간에도 창구가 6개면 2개 정도만 열려있는 등 불편하게 느껴지곤 했다. 한국에서 으레 받았던, 소비자의 입장이면 더 높은 자리에 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동등한 위치거나 소비자가 더 낮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유럽의 노동자들은 그만큼 자아존중이 강했으며 무엇보다 ‘자신’을 우선순위에 두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프랑스인들의 '칼퇴근'을 소재로 다룬 웹툰 생활의참견 


최저시급이 올라가면 우리 사회의 상호존중도 향상될 것


그 두 곳은 최저시급에서 큰 차이가 났다. 인도네시아는 2014년 기준으로 1.03달러로 약 1,100원 가량이었다. 그나마도 2012년에 44% 상승한 수치다. 전 세계의 최저시급과 물가를 비교한 HMML(How Much is My Labor?)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영국은 약 1만 1500원, 프랑스는 약 1만 4천원, 독일은 약 1만 2500원 가량이다. 우리나라는 5,580원이다. 노동자에 대한 존중 척도도 그 시급을 따라가는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최저시급 그래프(단위 : 원)


모든 이가 같은 임금을 받거나 모든 이가 높은 임금을 받아야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최저임금이라는 것이 계속 낮은 수준에 머문다면, 우리 사회의 상호존중도, 청년의 자아존중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최저임금은 단순히 이 정도는 지급해야 한다는 임금적 문제 뿐 아니라 ‘우리가 노동자를 존중하는 정도는 이 정도까지다’라는 존중의 척도이기도 하다. 리처드 세넷은 <불평등사회의 인간존중>에서 애커먼과 오페의 ‘소득보장으로 사람들을 보다 사회적으로 평등한 존재로 만듦으로써 진정한 상호존중의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는 제안을 인용했다. 노동자의 존중도를 높이는 방법은 임금과 더불어 다양한 측면에서 고려될 필요가 있다. 허나 최저임금이 높아진다는 것, 즉 기본 소득보장은 먼저 노동자의 유용성 판단을 통해 자아존중을 생기게 하고 노동자들에 대한 존중 역시 높아져 상호존중으로 이어지는 사회가 되는 데 기여한다. 그러한 사회는 아르바이트 생들이 손님에게서 처음 받아보는 존중에 감동받아 눈물 흘리지 않는, 존중이 당연시된 사회일 것이다. 




글. 감언이설(gchhg2005@naver.com)
[마지노선의 최저임금] 기획 / 아호. 감언이설. 종자기. 상습범. 베르다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