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이란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학력. 학점. 토익 점수 따위를 합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20대들은 자신이 꿈꾸는 취업을 하기 위한 스펙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바야흐로 20대들의 ‘ 스펙 쌓기 열풍 ’의 시대인 것이다. 하지만 어느덧 스펙이 20대의 전유물이었던 시대는 갔다. 친구들과 함께 모래바닥에서 뛰놀고 만화를 보며 EBS 교육방송을 통해 기초 상식을 쌓아가던 초등학생들 마저 입시를 위한 치열한 ‘스펙 열풍’에 합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학사정관제에 관련된 한 사설 교육업체의 강사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초등학생의 입학사정관제 준비는 전혀 이르지 않았다며 오히려 늦은 셈이라 말하기도 하였다. 이에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들의 마음은 또 다시 조급해져 아이들의 스펙을 위해 두발 벗고 나서게 된다. 우리는 이를 아이들이 과거 보다 향상된 교육 수준을 체감하는 좋은 기회며, 치열한 입시경쟁 아래의 필연적인 현상으로 보아야 하는가.


신발이 닳고 닳도록…….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

최근 보도된 서울시 초등학교의 전교어린이회장 선거 형태는 입시를 위한 초등학생의 스펙 쌓기의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선거에 출마하는 학생들은 스피치 학원에서 학원 강사의 지시에 따라 연설 연습을 하곤 한다. 학원에서는 학생들의 연설 컨셉트를 잡아주고 쩌렁쩌렁 울리는 발성 연습으로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도록 지도한다. 그리고 발음교정과 연설문 작성법을 알려주며 학생들만의 아마추어 느낌이 사라질 수 있도록 한다. 

뿐만 아니라 후보로 나선 일부 학생들은 전화를 걸어 표 단속을 하거나 심야에 지지를 호소하는 문자를 발송하기도 하며, 전문 스튜디오에서 선거용 사진을 찍는 등 정치권 선거 못지않은 치밀하고 치열한 선거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수고와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이유는 앞서 말한 듯이 국제중학교나 특목고등학교의 입시를 위한 스펙을 쌓기 위해서다. 즉 국제중과 일부 특목고에서 자기주도학습 전형이 확대 시행되면서 반장과 전교 회장 등 리더십을 기본 스펙으로 쌓으려는 학부모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5~6년 전만 해도 초등학교 전교어린이화장 선거철이면 계단 옆의 벽과, 교실 사이사이의 복도에는 그들의 선거 공약이 가득 담긴 전지가 차례로 붙어있었다. 그 전지에는 물감으로 칠해진 파란색 운동화를 큼지막하게 그려놓고 ‘ 신발이 닳고 닳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지는 ‘ 여러분의 발이 되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와 같은 글들이 쓰여 있곤 했다. 인상 깊은 퍼포먼스나 뚜렷한 공약을 보여주기 보다는 열심히 하고자 하는 본인의 의지를 보여주고자 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제 막연히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 전문 스피치 학원, 전문 스튜디오. 돈이 없으면 손쉽게 선거에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제는 입시 승리라는 뚜렷한 목적과 그들이 주목받기 위한 선거 유세를 맘껏 할 수 있는 금전적인 부분이 선거에 나가기 위한 또 하나의 ‘스펙’ 이 되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스펙 챙기기’는 비단 임원 선거 뿐 만이 아니다. 그들은 각종 자격증과 특기, 외부시험 성적에 열을 올리고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해 그들의 부모는 국제중. 특목고 입학. 대입. 유학까지 바라보며 장기 포석에 주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은 토익, 토셀, 펠트, 한자급수자격검정, 컴퓨터 자격증, 정보기술 자격증 등 각종 자격증을 따기 위해 노력한다. 위의 여러 자격증 중에 아직 20대인 대학생들도 제대로 시험을 본적이 없는 것도 수두룩할 것이다.

2010년 EBS주관 영어능력인증시험인 토셀은 초등생 응시자가 절반을 넘어섰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미 재작년에 실시한 한국생산성본부가 주관하는 컴퓨터 ITQ와 한국외국어평가원에서 시행하는 펠트의 초등생 응시 비율은 각각 50%, 40%에 달한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향한 안타까운 눈길, 멈추고 싶다.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했던 시절은 분명히 존재했고, 지금도 가난에 치여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들 교육에, 스펙에 극성인 학부모들은 맘껏 스펙을 쌓을 수 있는 그들의 아이에게 ‘복 받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너희에게 좀 더 나은 세상을 주기 위함이라며 아이들에게 이토록 치열한 사회를 웃으며 받아들이기를 강요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이 훗날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부모의 울타리 아래서 잠시 험난한 세상과는 벽을 쌓은 채, 친구들과 맘껏 뛰놀며 행복할 수 있는 시기가 그들에게 또 존재하는가. 아이들의 행복과 동심의 희생으로 가져온 입시 성공 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문을 향한 스펙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