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것을 정할 때 매뉴얼만큼 확실한 해결책은 없다. 경험자의 말을 듣는 것도 좋지만, 한 사람의 '경험'으로서 이야기를 듣는 것보단 체계화된 '매뉴얼'로서 정보를 접하는 게 더 신뢰가 가기 때문이다. 매뉴얼은 여러 사람들을 통한 검증 과정을 거쳐 왔고 그렇기 때문에 꽤 믿을 만한 정보가 들어 있다. 일종의 권위를 가졌다. 물론 그 신뢰가 너무 과도해지면 여러 부작용들이 나타날 수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매뉴얼을 필요로 한다. 왜 사람들은 매뉴얼에 이토록 열광하는 걸까.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애정남'의 역할을 현실에선 매뉴얼이 대신하고 있다.


 
매뉴얼이 각광받는 이유
 
가장 큰 이유는 반드시 무언가를 제대로 해야만 한다는 강박 때문이다. 이는 곧 과도한 성취욕과 연결될 수 있다. 놀 때도 제대로 놀고, 쉬더라도 제대로 쉬어야 직성이 풀리는 풍조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노는 건 뭐고, 제대로 쉬는 건 뭔가? 과연 그것을 매뉴얼을 통해 정할 수 있을까?

성취욕 자체는 좋다. 그러나 성취욕이 너무 과도해지다 보면 뭐든지 성취해야 할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게임도, 사람 사귀기도, 무엇이든지 성취해야 할 것이 되고 성취하기 위한 올바른 방법을 참조하기 위해 매뉴얼을 필요로 하게 된다. 물론 기왕이면 뭐든 잘 하는 게 낫다. 문제는 매뉴얼로 인해 성취의 기준이 일원화된다는 점이다. 매뉴얼은 몇 가지 정형화된 방법을 제시해줄 뿐 사람이나 상황에 맞는 방법을 하나하나 제시할 순 없다. 그러나 신뢰할 만한 매뉴얼이 나타나는 순간, 매뉴얼을 통해 성취의 기준이 정해지고 이를 통해 잘 했는지, 못 했는지도 나뉜다. 사람들은 매뉴얼을 통해 무엇이 잘 한것인지 나름의 기준을 세운다.

왜 이렇게 성취욕이 과도해진 것일까. 세 가지 측면으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실패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은 어떤 행동을 하든 반드시 약간의 성과라도 거둬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출발한다. 즉 내가 이 행동을 해서 만족할 만한 효과를 얻지 못할까 두려워 절로 위축되는 거다. 그런데 왜 성취하지 못하는 게 곧바로 실패와 연결될까? 이는 매뉴얼을 참조하는 순간 성공과 실패가 정의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과도한 자기과시욕이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관심받고 싶은 마음, 남들에게 더욱 좋게 보이기 위한 마음에 무엇이든 성취를 하려 한다. 매뉴얼을 참조하면 이것이 더욱 쉬워진다. 세 번째로 조바심 역시 성취욕을 이끄는 중요한 요소이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이걸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압박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사람들은 다 매뉴얼을 따라서 충실하게 해 나가는데, 혼자서 매뉴얼을 안 따르고 자기 끌리는 대로 하기엔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이 세 가지 원인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외부에서 유발된다는 점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결국 남에게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으로부터 시작되며, 과도한 자기과시욕은 남에게 보이는 자신의 이미지를 강화하는데 지나치게 집중했기 때문에 생겨난다. 조바심 역시 마찬가지로 남들이 다들 이렇게 하는데 자기만 안 할 수 없다는 불안감에서 유발된다. 남에게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매뉴얼의 필요성이 늘어났다. 그만큼 한국인들이 외부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뜻이다. 왜 한국인들은 외부의 시선에 유난히 몸을 움츠리는 것일까.

매뉴얼을 따르도록 요구하는 사회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 오랜 기간 동안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입시 위주의 교육부터 살펴야 한다. 아무리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혁신적이고 대안적인 교육을 받더라도, 한국의 중등교육은 이미 학생들의 대학 입시가 제1의 목표가 된지 오래다. 그나마 혁신적인 교육을 하는 초, 중학교도 그리 많지 않다. 공부를 잘 해서 성적을 잘 받는 게 최고라는 생각이 어릴 때부터 주입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교육은 시험 점수를 잘 따기 위한 주입식 교육에 머무른다. 대학교가 철저히 서열화되어 있다는 것도 문제다. 합격한 대학교의 등급에 따라 외부로부터 비춰지는 이미지의 등급도 달라진다. 외부의 시선에 의해 자기 자신의 지위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이미 성인이 되기 전부터 한국인들은 남의 눈치를 보는 데 매우 익숙해졌고 남의 시선에 의해 평가를 받는 걸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부산일보


외부 시선에 대한 의식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계속된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뤄내고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분위기가 퍼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분위기를 잘 나타내는 게 바로 스펙 쌓기 경쟁이다. 대학생들이 온갖 스펙을 쌓기 위해 이런저런 활동을 하는 것, 즉 매뉴얼을 충실히 따르는 것은 대개의 경우 온전한 자기 의지라고 보기 어렵다. 남들이 대외활동을 하니까, 교환학생을 가니까 따라서 하는 측면이 크다. 어느덧 스펙은 자기를 전시하는 수단이 되었고 사람들에게 자기를 소개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보다 안정적인 방법으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매뉴얼에 나온 대로 충실하게 자신을 꾸민다. 여기에는 불안함과 조바심 같은, 외부 시선에 대한 의식에서 유래된 생각들이 크게 작용한다.

이는 취업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회사 자체가 꽉 짜인 하나의 조직이기에 외부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승진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한국은 이러한 경향이 더욱 심하다. 상하 관계가 여전히 강하며,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풍조가 강한 한국 특유의 기업 문화 때문에 개인이 마음 놓고 활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은 혁신창의력을 외치지만 한계는 뚜렷하다. 이러한 경향이 효율성 측면에선 나을 수 있다. 그러나 회사 구성원들은 종종 자신을 회사라는 조직의 단순 부속품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부속품은 정해진 순서에 따라 가동되어야 하고 그것은 곧 꽉 짜인 매뉴얼이다.

한편 경제적인 요인 역시 외부 시선에 신경을 쓰게 하는 주된 이유이다.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에 검증된 방법으로 작게라도 성공을 거둬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이로 인해 자연히 매뉴얼을 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매뉴얼을 통해 성취를 편하게 할 수 있다는 믿음도 공존한다.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 대한 국가의 사회 보장 체계가 아직까지 여러 모로 미흡한 상황에서, 국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매뉴얼을 따르는 게 편한 길이다. 개인적인 여유가 없거나 어떻게든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매뉴얼은 분명히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굳이 자신이 골치 아프게 머리를 짜내지 않아도 무언가를 적당히 할 수 있는 방법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성취 그 자체이지 그것을 어떻게 이루느냐가 아니다. 자기가 그 성취를 통해 무엇을 깨달았느냐가 주가 되지 않는다.

타자화된 욕망의 토양이 되는 매뉴얼

이러한 사회적인 조건은 사람들에게 자존감을 키울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무언가를 성취하는 데 더욱 신경을 쓰게 된다. 남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어떤 것을 성취함으로써 자신감을 드높이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불안감도 상쇄하고, 실패할 수 있다는 압박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러한 경향이 지나칠 정도로 강해졌다.

본래 욕망은 필요로 인해 유발된다. 내가 무언가를 필요로 하고, 무언가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욕망이 생긴다. 그런데 외부에서 유발된 욕망은 애초에 타인으로 인해 발현된 욕망이다. 그 기저에는 특정한 것을 성취한 타인에 대한 모방 욕구가 존재한다. 성취하는 데 성공한 타인을 통해 느끼는 부러움, 시기심, 경쟁심 등은 자기 자신에게 똑같은 욕망의 씨앗을 퍼뜨린다. 매뉴얼은 그 욕망의 씨앗이 자라기 위한 토양이 되고, 사람들은 매뉴얼 속의 영양분을 빨아들여 타자화된 욕망을 내면화하고 성취라는 열매를 맺기 위해 애를 쓴다. 결국 정형화된 매뉴얼이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처럼 타자화된 욕망이 급속히 퍼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