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나는 네이버 중고물품 직거래 카페인 중고나라에 글을 올렸다. ‘소형 냉장고 삽니다.’ 며칠간 소형 냉장고를 검색해가며, 이 제품 저 제품 따지고 비교하는 일이라면 이골이 난 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냉장고를 판매하겠다는 사람들이 먼저 문자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첨부된 사진 속의 냉장고는 모두 상태가 좋았고 가격도 합리적인 편이었다. 그렇게 가격흥정도 실랑이도 없는 쿨거래가 시작됐다. 

가장 거래 조건이 좋아 보이는 판매자에게 거래 의사를 밝혔다. 늦은 밤이었지만 판매자는 물품을 24시간 화물 택배로 접수한 후 다음날 편하게 출근하고 싶다고 했다. 나 역시 ‘그래, 이왕 거래하는 것 하루라도 일찍 해치우자’는 마음으로 ATM기로 향했다. 그놈의 쿨거래 때문이었다. 직접 내게 전화까지 걸어 접수 후 운송장 번호를 보내주겠노라고 말하는 그를 의심하지 못했다. 글을 쓰는 지금은 모든 것이 사기꾼처럼 보이지만, 당시 그 상황 속에 놓인 나는 그 사람이 쿨거래 판매자인 줄로만 알았다.

이후부터의 이야기는 뻔하다. 입금했다는 연락 이후 점차 답장이 느려졌고 한 시간 후부터는 나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차 싶어 거래자명과 계좌 번호를 검색해보니 그 판매자에게 똑같은 수법으로 당한 사람들이 보였다. 회원 수만 1,200만 명에 달하는 카페여서였을까, 사기사고사례를 신고하는 게시판은 사람들의 아우성으로 가득했다. 사기 사고사례를 신고하는 게시판에는 하루 50여 개, 사기 글을 신고하는 게시판에는 하루 45여 개의 글이 올라왔다.

적잖이 당황한 마음을 추스르고, 인터넷 사기피해 정보공유 사이트 더치트에 접속했다. 사기피해 대응 매뉴얼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은행에 피해사실을 알리고 입금한 금액에 대한 지급정지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그 후에는 해당 금액에 대한 환급 신청 역시 할 수 있다. 이때 관건은 내가 입금한 금액이 인출되기 전에 환급 신청 절차까지 마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사기범을 잡았을 때 피해 금액을 환불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서둘러 해당 은행에 전화를 걸어 입금한 금액에 대한 지급정지 신청이 가능한지 문의했다. 그러나 사기피해 대응방법 매뉴얼에 쓰인 것과는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고객님, 개인적인 사기 피해이기 때문에 저희 측에서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렇게 전화 한 통으로 간단하게 신청할 수 있는 것일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나름대로 납득이 갔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걸어 물었다. “혹시 제가 사기 피해를 당했다는 공문서를 지참하고 은행에 방문할 경우에는 지급정지 신청이 가능한가요?”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고객님의 개인적인 사기 피해이기 때문에 저희 측에서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인터넷 거래 피해자가 입금한 금액에 대한 지급정지와 환급신청을 할 수 있는 것은 은행마다, 사건마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모양이었다. 사건사실확인서를 지참해 은행에 가 지급정지 요청을 비교적 손쉽게 끝낸 사례가 있는가 하면, 모든 서류를 지참하고 갔어도 전례가 없었다는 이유로 손쉽게(?) 거부당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고객님 피해 구제가 안돼서 많이 당황하셨죠? ⓒKBS2 캡쳐


나의 당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기 피해 신고를 접수하기 전 증거를 제출하기 위해 휴대폰 통신사를 찾아 문자수신내역 조회를 요청했다. 그러나 현행법상 스토킹이나 음란, 욕설 등의 피해를 받았을 경우에만 내역 조회가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말인즉슨 문자수신내역을 증거로 첨부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통신사에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문자수신내역을 조회하면 사기범의 실제 휴대폰 번호 혹은 인터넷 가상 번호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7일 국민권익위원회가 인터넷 불법거래 및 사기피해에 대한 주의 경보를 발령했음에도 사기 피해에 대응하는 방안은 여전히 ‘개인적인 차원’에만 머무르고 있다. 사기범의 술수는 날로 치밀해지는데 피해자들은 은행이나 통신사로부터 도움을 받기는커녕 스스로 대책을 얼기설기 마련해야 한다.

그렇게 빈손으로 관할 경찰서에 가 진정서를 접수했고, 담당 조사관은 “잡아드려야 하는데, 대포폰, 대포통장을 이용한 거래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추적이 힘들다는 말씀을 먼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운 좋게 사기범이 잡힌 경우 합의금을 돌려받고 합의할 수도 있지만, 사기범이 합의를 거부하거나 재산이 없을 경우 피해 금액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민사 소송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때쯤 나는 모든 상황에 넌더리가 나기 시작했다. 수사관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와 이제는 모든 것을 잊고 지내는 것이 나의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그래도 이번 사건을 통해 얻은 바가 없지는 않았다. 당분간 인터넷 거래는 쳐다보지도 않겠지만, 거래하게 될 경우에는 이 돌 저 돌 가리지 않고 모두 두드려보리라는 다짐이다. 타인에 대한 지나친 낙관에서 비롯한 나의 쿨거래는 죽었다. 한번 사건이 터지고 나면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과 세상만사에 대한 불신만을 얻게 된다. 은행도 통신사도 당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테니, 돌다리가 그 자리에 박힐 때까지 쾅쾅 두들겨 볼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