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는 약 250만 명의 장애인이 ‘존재’한다. 그 중 시각 장애인은 25만여 명, 청각 장애인은 40만여 명이며, 휠체어를 이용하는 이는 약 100만 명으로 추정된다. 국민의 이십 명당 한 명꼴로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에 들어서야 장애인들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었다. 그들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지하철 역사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것이 5년이 채 되지 않았고,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저상버스나 콜택시의 보급은 여전히 미흡하다. (*2013년 등록 장애인 수 기준)

가고 싶은 곳에 갈 권리조차 제대로 누릴 수 없는 이들이 ‘문화생활’을 한다는 것은 더욱 만만치 않다. 비장애인들은 너무나 당연히 누리는 무언가가 장애인들에게는 부담과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이 문화생활을 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쯤 되니 장애인들의 문화소비 실태를 더 ‘현실적으로’ 알고 싶어진다. 일반인들이 흔히 즐기는 세 가지 문화 활동을 장애인의 시각에서 살펴보자.

장애인, 영화 보기

지난 9월 26일부터 나흘간 서울 대한극장에서 장애인 영화제(PDFF)가 열렸다. 올해로 15회를 맞이하는 PDFF는 장애인을 소재로 한 영화를 활성화하고, 장애인들에게 영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영화제 주최 측에 따르면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영화를 향유하기 위해 꼭 필요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다. 전체 장애인 인구의 약 절반이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다. 상영관까지 올라가는 승강기가 없거나 극장 안에 휠체어 공간이 확보되어 있지 않으면 영화를 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다른 하나는 ‘배리어프리 영화’이다. 배리어프리 영화란 장벽에서 자유롭다는 뜻으로 청각 장애인을 위한 한국어 자막과 시각 장애인을 위한 음성 해설을 추가한 영화를 의미한다. 시‧청각장애인이 제약 없이 일반인들과 함께 영화를 즐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장애인의 문화생활을 위해 편의증진법이 개정되긴 했지만, 여전히 그들이 영화를 관람하는 데에는 많은 제약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울 시내에 있는 대형 영화관을 기준으로 장애인 전용석의 비율은 전체 좌석의 1~2% 정도이다. 특히 장애인석은 대부분 맨 앞자리로 배치돼 있어 ‘선택권 박탈’로 이어진다. 현행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스크린 기준 300석 이상 규모’의 영화 상영관에 대해 편의시설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CGV 기준 서울지역 188개 상영실의 평균 좌석 수는 150개 내외이며, 300석 이상 좌석을 가진 상영실은 13개에 불과하므로 이 역시 현실성이 없는 기준임을 알 수 있다.

ⓒ함께걸음

시·청각 장애인들의 경우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에 비해 더욱 상황이 열악하다. 대형 영화관에서는 현재 시·청각 장애인 위해 배리어프리 영화를 상영하는 ‘장애인 영화관람 데이’ 등의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1달에 3회 가량 상영되고 있고, 영화 역시 본인 선택이 아닌 행사 주최 측이 선정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영화 상영이 제한되고 있다. 제15회 장애인영화제개막식에 참석한 대학생 ㅅ씨는 "배리어프리 버전의 영화는 처음 보았는데 장애인들이 평소 영화를 관람하는데 여러 어려움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동안 내가 이에 대해 얼마나 무심했는지 깨달았다"며 소감을 밝혔다. 

장애인, 클럽 가기

지난 7월, 인터넷에 올라온 한 글이 화제가 되었다.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는, 장애인의 옥타곤 클럽 체험기'라는 제목이었다. 장애인과 클럽이라니,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아직 장애인이 즐기는 다양한 범위의 문화생활에 ‘관대’하지 않은 우리 사회를 탓해 달라.

ⓒ인터넷미디어'ㅍㅍㅅㅅ'

 

인터넷미디어 ‘ㅍㅍㅅㅅ’에 본 글을 게시한 변기석 씨를 비롯한 5명의 대학생이 클럽체험에 도전했다. 변 씨는 목발을 짚는 지체 장애인이었고,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 장애인이 한 명, 청각장애인이 두 명, 시각장애인이 한 명 있었다. 그들의 체험담은 클럽에 가게 된 계기부터 사전 컨택, 입장, 클럽 안에서의 일, 그리고 후기까지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장애인들의 클럽 이용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들이 이용한 클럽 관계자들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전 준비가 충분히 이루어졌고, 클럽에 들어갈 때와 내부에서의 이동 시에 보안요원의 도움이 있었다. 약간의 배려와 준비가 갖춰진 상태에서 스피커의 진동으로 리듬을 느끼고, 진동 휠체어로 묘기를 부리고, 어둠에 익숙한 눈을 빛내며 그들의 ‘불금’이 지나갔다.

“Anything can happen here”, 클럽을 떠나며 감사 인사를 전하던 변기석 씨에게 클럽 관계자가 했던 말이다. 변씨는 “장애인에게 있어 클럽은 하나의 극복해야 할 공간을 의미한다”고 밝히며, “우리는 막연히 밤새 춤을 추고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즐거웠던 것이 아니다. 차이를 인정하고 변화를 기다리는 이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즐거웠다”고 말했다. 그가 지적한 대로 여전히 어딘 가에선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클럽 출입을 거절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클럽은 장애인에게 ‘불가능’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석 씨 일행이 보란 듯이 제대로 ‘불금’을 즐기다 온 것처럼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다만 세상이 장애인과 클럽을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을 뿐이다.

장애인, 콘서트 가기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문화생활 중 ‘그나마’ 영화 관람이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며, 전시회 관람이나 공연 관람은 극소수의 비율로 나타난다. 앞서 다룬 클럽이나 콘서트, 페스티벌과 같은 활동적인 문화 공간에서 장애인은 여전히 이방인이다. 종종 지역사회나 사회단체의 주관으로 ‘장애인을 위한~’ 콘서트가 열리지만, 그것 역시 제한적이고 이벤트성이 짙은 행사일 뿐이다. 장애인들이 일반적인 콘서트에 얼마나 접근 가능한지 알아보고 싶었다.

한 공연예매 사이트에 접속했다.(*10월 14일 기준) 예매 가능한 콘서트는 총 34개였다. 공연 시간은 바로 이번 주말에 공연 예정인 콘서트부터 크리스마스 디너쇼까지 매우 다양했으며, 힙합‧클래식‧발라드‧개그쇼 등 그 범위도 다양하게 있었다. 총 34개의 콘서트 중 장애인에 대한 할인을 진행하는 공연은 16개였다. 대부분의 경우 복지카드를 소지한 장애인 본인에 한해 공연비의 20~50%를 할인했으며, 일부의 경우 동반 1인까지 할인을 적용하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장애인 관객을 위한 이용 안내’에 관해 언급한 공연은 4개뿐이었다.(*윤복희 콘서트, 제이슨 모라즈 콘서트-서울,대전,대구) 제이슨 모라즈의 지역투어 콘서트를 하나로 친다면 고작 두 공연에서만 장애인을 위한 이용 안내를 하고 있었다.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는 관객에게 사전의 컨택을 통해 도움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외에 일부 공연은 장애인 할인을 이용할 관객은 전화 상담을 통해 예매를 진행할 것을 명시하고 있었고, 대다수의 공연은 관람 안내사항에서 장애인 관객에 대한 어떤 언급도 하고 있지 않았다.

애인 문화생활의 실태를 알아보며 필자가 끊임없이 마주한 것은 철저한 ‘벽’의 존재였다. 장애가 없는 일반인들에게는 별 의미 없이 느껴졌을 ‘전석 스탠딩’, ‘선착순 입장’ 등의 문구들이 장애인들에게는 “이곳은 당신에게 불가능”이란 뜻으로 다가온다. 어떤 영화를 보고 싶은지를 정하기 전에 어떤 영화를 볼 수 있는지를 찾아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문화생활’을 한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당연함’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함’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