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갤럽이 지난 달 23일 발표한 자체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차기 대선 예비 후보들 중 지지율 35.4%로 초강세를 유지했다. 그런데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이유를 주관식으로 묻자 ‘여성 대통령이 나올 때가 됐다.’ 또는 ‘여성이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17.5%로 가장 많았다. 지난 3년간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박근혜 지지율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답이, 그녀의 전반적인 능력과는 무관한 이유라는 점에서 고개를 갸우뚱 하게 한다. 이와 같은 답변은 대선이라는 상황에서 사회적 소수자에 처해있는 '여성'과의 평등, 안배의 정서가 깃들어 있다. 그러나 일상생활이 아닌, 객관적인 시각이 바탕이 되어야할 대선에서 '레이디 퍼스트' 식의 태도는 위험하다. 이는, 꼭 박근혜가 아니더라도 경쟁력을 갖춘 여성후보가 출마한다면 이동가능한 지지층이 상당하다는 것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평등이란 이름으로 역차별의 불공정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번 박근혜 지지율의 답변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소수자 배려 정서는 한국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의 실력, 능력을 고려하기 보다는 평등이란 타이틀 아래 그들의 편에 서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과연 이러한 식의 배려와 안배가 진정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수적으로 비례한 평등 vs 대등한 실력의 평등

대학 입시의 상황에서, 도시에 사는 인문계 고등학생이 아닌 농어촌에 사는 학생이나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소수자로 해석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입시제도에서 그들을 위한 특별 전형을 만들어 학교 간, 지역 간의 균형을 꾀하려한다. 즉 다른 학생들 보다 대학 입시에 불리한 상황에 있는 그들에게, 그들의 상황을 고려한 별도의 통과선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평등을 위한 좋은 취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능을 준비하는 일반계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특별 전형의 공정성에 대한 불만과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비록 내신 성적에서는 그들이 앞서지만, 보다 객관적인 수능 성적에서는 본인들 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학생들이, 자신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학교를 비교적 쉽게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와 같은 식으로 특목고에 다니는 학생들은 그들보다 좋은 내신으로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일반계고 학생들을 비난하기도 한다. 특별전형제도와 무한경쟁사회가 맞물리면서 일어나는 학생들의 인식 문제다.
 
이러한 인식의 문제는 제도가 소수자로 분류된 농촌 지역 학생들의 실력에 관심을 갖기보다, 학교 간의 분배와 평등을 위하여 행하는 형식적인 평등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실제로 대학에 들어가 학업에 대한 실력 차이로 좌절하고 부적응한 경우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특별전형의 혜택을 보지 못한 학생들은 '농촌 출신 학생들은 멍청하더라'는 식으로 그들을 다시 타자화하며 제도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키워나가게 된다.

대학에 들어가는 통과 선은 다른 학생들에 비해 가까울지라도, 정작 대학에 들어가 ‘특혜 받은 자’, ‘마이너’로 낙인 된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수적으로만 알맞은 분배, 실력과 나란하지 않는 평등의 추구는 혜택을 받는 이에게도, 그렇지 않는 이에게도 결국 또 다른 차별을 느끼게 한다.




이와 비슷한 류의 또  다른 사례에서 좀 더 살펴 보도록 하겠다. 새 정부 출범, 개각, 주요 정부부처의 인선 때 마다 항상 신문 지면에 보도되는 기사가 있다.

“16개 부처 장관 (후보자 포함)의 출신지역별 분포를 보면 서울 출신이 3명으로 가장 많고 대구. 경북(TK) 출신이 3명, 부산. 경남(PK)출신이 2명으로 영남 출신은 모두 5명이다. 호남과 충청 출신이 각각 3명씩으로 뒤를 이었다.”
“서울 출생 유인촌, 원적 따라 호남으로 분류”
“‘텃밭.측근’챙기기. 내각.청와대 통틀어 호남출신 1명뿐”

 
지역 간 차별이 심하다는 지겨운 문제지적으로 인해, 어느덧 사회는 개인의 능력과 자질보다 지역안배에 의한 지역 간 균형과 평등을 꾀하는 것을 우선시 하고 있다. 정확히 말해, 위의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보여주기식의 지역 안배와 지역 안배만 되면 무난한 인사라는 꽉 막힌 사고가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계 뿐만이 아니다. 몇 해 전 정부의 약사 배출 확대를 위한 방법이 결국 지역안배에 초점을 맞춘 약대신설로 이루어지고, 기존 정원을 늘려 약사회의 비난이 들끓었다. 정부가 공평성을 위한다며, 질적 교육이 담보가 되어야 함에도 기존 약대들의 질적 향상 노력과 메리트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지역 안배 차원에서 질적인 교육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학교에 증원하는 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불거진 ‘지방인재채용목표제’로 인한 수도권 역차별 논란도 이와 같은 양상을 띠고 있다. 이는 국회사무처가 8급 공채 결과, 직렬별로 지방인재의 비율이 30%에 도달하지 않을 경우 서울, 인천, 경기 지역 소재 학교를 제외한 다른 지역 학교 출신자만을 대상으로 추가합격을 시키는 것이다. 지역 할당제를 두는 것에 대한 역차별의 논란이 나오고 있다.

이렇듯 개인의 능력과 자질을 위협하는 소수자 안배는 언제든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특히 위의 기사에서 나타나는 보여주기 위한 식의 소수자 안배로 시혜를 베푸는 것은, 도리어 우스운 꼴이 될수 있다.


‘소수자이기 때문에’ 의 오류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사회적 소수자, 약자와의 평등을 추구한다. 하지만 이러한 평등이 또 다른 불평등과 차별을 불러온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그들에게 좀 더 평등한 삶을 주고자 한다면 같은 결과로서의 평등을 제공하는 것 이전에, 뒤처지지 않는 실력을 겸비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우선이다. 즉 실력 앞에서 그들이 차별받지 않아야 하며, 그들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소수자이기 때문에’, ‘소수자에게 한번쯤’과 같은 시혜적 논리는 결국엔 ‘그들은 소수자이기 때문에 안돼’와 같은 차별의 논리와 동일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