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링이 올림픽 종목에서 퇴출되었다. 지난 12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집행위원회 회의에서 레슬링은 25개의 올림픽 ‘핵심 종목’에서 제외되었다. 당초 태권도, 배드민턴, 하키, 근대5종 등이 유력 퇴출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IOC 위원들은 레슬링의 퇴출을 선택했다. 공식적으로 결정되는 자리는 올 9월 열리는 IOC 총회다. 그러나 집행위 회의에서 내려진 결정이 뒤집힌 예는 거의 없었기에 사실상 퇴출이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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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C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부터 최대 28개 종목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지나치게 종목 수가 많아지면 올림픽 규모가 너무 커져 개최국에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핵심 종목 25개는 오는 2020 올림픽부터 영구적인 올림픽 종목으로 지정되고, 오는 2016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 골프, 럭비와 오는 5월 열리는 IOC 집행위원회에서 새로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 1개의 종목을 포함한 숫자다. 새로 채택되는 종목은 2020 올림픽에서 첫 선을 보인다. 올 런던올림픽에서 열린 종목이 26개였기 때문에 기존 올림픽 종목들 중 한 종목은 올림픽에서 빠져야만 했는데 그것이 레슬링이 되었다. 이로써 레슬링은 2016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올림픽 무대에서 내려가야 한다.

레슬링의 퇴출은 의외였다. 함께 퇴출 후보로 거론된 근데 5종, 하키, 태권도 등이 TV시청률, 관중 수, 보편성 등 39개 항목으로 평가하는 사전평가에서 레슬링보다 더 낮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레슬링은 고대 그리스에서 열렸던 올림픽 때부터 있어 왔고, 근대 올림픽에서도 어김없이 정식종목으로 선정되어 왔기에 퇴출을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세계레슬링연맹 회장은 “발표 15분 전에 레슬링이 퇴출 후보에 포함되었다는 걸 알았다”라고 털어놓았다. 아시아레슬링연맹 회장은 인터넷 기사로 레슬링의 퇴출 소식을 처음 접했다.

그만큼 레슬링의 퇴출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레슬링에 대한 여러 비판 보도가 쏟아졌다. IOC와 대중들의 요구에 제대로 발맞추지 못한 레슬링계의 미숙한 현실 대처, 내부 앞가림을 하기에도 바빠 레슬링의 국제적 위상에 대해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한 국제레슬링연맹의 무능함 등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레슬링의 퇴출 원인을 오롯이 레슬링 탓만으로 돌리기에는 다소 가혹한 면이 있다. 레슬링의 퇴출은 현대 스포츠의 경향을 보여주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역사가 깊은 종목이라도, 현대 스포츠의 경향-보다 강한 재미와 짜릿함을 추구하는-에 발맞추지 못하면 도태될 수 있다는 것을 IOC는 레슬링의 퇴출을 통해 보여 주었다.

 
▲오랜 역사와 전통도 퇴출을 막지 못하다

 


레슬링은 육상(달리기, 멀리뛰기,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판크라티온(오늘날의 격투기와 비슷), 경마, 전차경주, 복싱 등과 함께 고대 올림픽 종목으로 널리 행해졌다. 레슬링은 기원전 708년에 열린 제 18회 올림픽 때 처음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어 마지막 고대 올림픽인 제 293회까지(기원후 293년) 쭉 행해졌다. 레슬링은 그리스 신화에도 등장한다. 헤라클레스가 제우스를 기려 올림픽을 창설했는데, 레슬링 경기방법을 시민들에게 가르치고 경기장 규격과 경기 시간을 제정한 게 바로 헤라클레스였다. 헤라클레스는 또한 황금사과를 찾을 때 포세이돈과 가이아의 아들인 안타이오스를 레슬링으로 이긴 적도 있었다. 한편 제우스가 아버지인 크로노스를 물리치고 천계의 지배권을 얻을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게 레슬링이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이 밖에 1만 5000년 전 프랑스 동굴벽화나 고대 바빌로니아, 이집트의 부조 작품에도 등장하며, 그 외 산스크리트 문학, 창세기 등에서도 레슬링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이처럼 레슬링은 고대부터 활발히 진행된 인간의 원초적인 체육 활동 중 하나이다.

그러나 현대 스포츠의 변화 요구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레슬링은 결국 올림픽 퇴출이라는 철퇴를 맞았다. 사실 레슬링은 이전부터 꾸준히 ‘재미없다’, ‘지루하다’ 등의 여론이 제기되어 왔다. 선수들의 실력이 상향평준화되다 보니 선수들이 화려한 기술보다는 탐색전과 버티기 중심으로 경기를 했고, 이로 인해 긴장감이 떨어졌다는 지적이다. 현대스포츠가 전반적으로 빠르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추구함을 감안할 때 시대에 역행하는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이에 국제레슬링연맹은 종합점수제(세 번의 라운드에서 누적된 점수를 합산하여 높은 쪽이 승리)에서 세트제(세 번의 세트를 진행해 두 차례 세트에서 더 높은 점수를 얻으면 승리)로 룰을 변경하고, 파테르(방어하는 선수가 매트 중앙에 엎드린 자세를 취하고 상대방 선수가 엎드린 선수의 등 위에 올라가 공격을 하는 자세. 벌칙의 일종으로 부과되었으나 2008 베이징 올림픽부터는 매 라운드 30초씩 양 선수가 파테르를 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룰도 보다 탄력적으로 변경하는 등 대대적인 룰 개정을 통해 경기의 흥미를 높이고자 했다. 그러나 세트제는 오히려 선수들이 경기운영을 더욱 소극적으로 하도록 유도했고 애초 기대했던 흥미 유발 효과는 적었다. 어차피 한 점이라도 많은 사람이 그 세트를 차지하기에, 일단 점수를 딴 선수는 방어 위주로만 경기를 펼친 것이다.

 


고질적인 심판 판정 논란도 문제다. 레슬링은 오로지 심판의 눈에만 점수 판정을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심판의 공정성이 중요한데, 국제레슬링연맹의 현 회장이 취임 이후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연맹을 운영하고 있다는 혐의가 있다. 그것이 심판들의 판정에도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설이 팽배하다. 실제 지난 베이징올림픽 때는 스웨덴 선수가 판정에 항의하며 자신이 받은 동메달을 내팽개쳤고, 런던올림픽에서도 한국의 정지현 선수가 8강전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인해 준결승전 진출이 좌절되었다. 이런 식으로 오심 논란이 계속 불거졌음에도 레슬링연맹 측의 적극적인 개선 의지는 없었다. 퇴출을 면하기 위한 레슬링 연맹의 대처도 부실했다. 근대 5종, 하키, 태권도 등이 퇴출당하지 않기 위해 치열한 로비와 교섭을 펼친 것과 달리, 레슬링은 퇴출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을 연맹 측에서 최종발표 불과 15분 전에 알았을 정도로 준비가 부족했다.

이처럼 문제점이 산적해 있었음에도, 워낙 인간 역사에서 유서 깊은 종목이었고 순수한 ‘인간의 힘’을 겨룬다는 상징적 의미가 강했기 때문에 레슬링의 퇴출을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레슬링계의 끊임없는 부패 논란, 그리고 현대 스포츠의 변화는 레슬링의 오랜 역사와 상징성마저도 제압해 버렸다.

여기서 ‘현대 스포츠의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레슬링이 올림픽 핵심종목에 선정되지 못한 데에는 분명 레슬링 자신의 책임도 있지만, 현대 스포츠 자체가 레슬링 같은 종목에 더 이상 관대하지 않게 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현대 스포츠의 경향 하에서 벌어진 치열한 경쟁에서 레슬링이 무릎을 꿇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최근의 올림픽은 그야말로 현대 스포츠가 ‘총집합’한 곳이다. 현대 스포츠의 경향이 매우 잘 나타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