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스포츠의 경향에 맞춰야 살아남아



 
본래 올림픽은 아마추어 스포츠의 정신이 가장 잘 살아있는 축제이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때부터 쭉 이어져 온 정신이다.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순수하게 자신의 명예와 단련을 위해 참가했고 우승하는 것을 굉장한 영예로 생각했다. 상금이 주어지긴 했지만 그것은 우승자에게 선사하는 일종의 예우였다. 쿠베르탱 남작이 근대 올림픽을 창설할 때 강조한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라는 메시지는 중요한 올림픽 강령이 되었다. 이는 고대 올림픽의 정신과도 부합한다.
 
오늘날 올림픽에서는 자본이 절대로 빠질 수 없다. 메달리스트에게는 메달뿐 아니라 국가에서 거액의 상금 혹은 연금을 지급하며, 유명 선수들의 경우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광고나 개인 스폰서가 붙기도 한다. 물론 돈이 훨씬 많이 돈다고 해서 반드시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명예나 위상이 손상된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확실히 이전 올림픽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또한 올림픽은 원칙적으로 개인 간의 경기이지만, 시간이 가면서 점차 국가 간의 대리경쟁 성격이 강해졌다. 개인의 명예는 어느새 국가의 명예와 함께 얘기되었고, 노골적으로 올림픽을 정치적인 수단으로 이용하는 국가들도 있었다. 이처럼 국가 간의 대결로 판이 훨씬 커진데다가, 대대적으로 TV중계가 되고 보는 눈이 많아지면서 IOC는 보다 큰 재미를 추구해야 했다. 대중들의 구미에 맞게 요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실제로 이번 런던 올림픽 개막식을 TV로 시청한 인원은 약 40억 명에 달한다.
 
광고, 특히 TV광고와 스폰서는 올림픽의 이러한 변화를 더욱 촉진했다. 거대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름도 알리고 이미지도 높이기 위해 올림픽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기 시작했다. 올림픽의 상업화 경향이 강해진 것은 1984년 LA올림픽 때부터였는데, 이 때 중계권 및 스폰서십을 대폭 개혁 및 확대하고 중계권 입찰을 철저한 경매 방식으로 진행하면서 이전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거두었다. 게다가 1974년 IOC가 올림픽 규정을 대폭 손질하면서 프로선수들의 참가도 부분적으로 허용했고, 이는 올림픽의 브랜드 가치를 크게 높였다. 그 결과 2억 2천 5백만 달러라는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 수익적인 면에서 가장 성공한 올림픽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후 IOC는 직접 ‘TOP(The Olympic partner)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스폰서, 중계권 계약 등을 모두 직접 맡았다. TOP프로그램을 통해 사업 분야별로 특정 기업들을 선정하면, 기업들이 IOC에 기술적‧재정적 지원을 하는 대신 IOC는 이들 기업들이 독점적으로 올림픽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오직 이들 기업들만이 올림픽 엠블럼과 휘장을 내걸고 마케팅을 할 수 있다.


 
이처럼 기업들이 스폰서와 광고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건 결국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올림픽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TV뿐 아니라 인터넷 중계도 가능해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올림픽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상업적인 성공을 위해서라도 IOC는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올림픽 경기에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래서 대중들에게 상대적으로 외면을 받는 몇몇 종목들에 대해 지속적인 압박을 가해 왔다. 각 종목들로써는 올림픽에서 퇴출될 때 받는 타격이 워낙 크기에, 자의로든 타의로든 쇄신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대중들의 흥미를 자극할 수 있을까’가 쇄신의 중심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대대적으로 룰이 바뀐 종목으로는 양궁, 태권도 등이 있다. 양궁의 경우 한국의 독주로 인해 승부의 변수가 너무 적다는 불만이 제기되어 왔고, 태권도는 심판의 애매한 판정과 지나치게 수세적인 경기 운영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그래서 두 종목 모두 흥미와 박진감 유발을 중심으로 룰을 개정했다. 양궁은 세트제를 도입하고 쏘는 화살 수를 줄임으로써 한 발 한 발의 중요성을 높이고 승부의 변수를 크게 했다. 태권도 역시 선수들에게 전자호구를 의무적으로 장착하도록 했고, 발 기술의 배점을 더욱 높이고 시간 지연으로 인한 감점 기준을 엄격히 하여 선수들의 화려한 공격을 독려했다. 그 결과 양궁은 경기의 긴장감이 더욱 높아져 재미있어졌다는 호평을 들었고, 태권도 역시 판정 시비가 줄고 화려한 기술이 늘어나면서 ‘재미없다’라는 세간의 평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았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들의 룰 변경이 철저히 재미와 공정성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는 것이다. 두 요소 모두 대중들을 끌어들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레슬링은 이러한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양궁과 태권도가 룰 변경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둔 반면 레슬링은 룰 변경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왔다. 여전히 ‘재미없다’는 목소리가 컸다. 심판 판정 논란은 이번 런던올림픽에서도 몇 차례 불거졌고 안전할 것만 같았던 레슬링의 위치를 크게 위협했다. 오히려 내부적인 비리와 부패로 인해 문제의 심각성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오랜 역사와 전통에 막연한 기대를 걸었지만, 결과적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받아들었다. 아무리 유서 깊고 인간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종목이라 하더라도, 흥행성과 대중성이 떨어진다면 얼마든지 도태될 수 있다는 것을 IOC는 레슬링을 퇴출시킴으로써 명료하게 나타냈다. 

▲앞으로의 방향은?

아직 레슬링의 회생 가능성은 남아 있다. 오는 5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IOC 집행위원회에서 새로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한 종목을 결정하는데, 잘만 하면 여기서 다시 선택을 받아 2020년부터 다시 나설 수도 있다. 레슬링은 야구•소프트볼, 가라테, 우슈, 롤러스포츠, 스쿼시, 스포츠클라이밍, 웨이크보드(모터보트가 만들어 내는 파도를 이용해 점프, 회전 등의 다양한 기술을 구사하는 수상스포츠) 등 7개 종목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 그러나 가라테가 일본, 우슈가 중국을 등에 업고 있으며, 스쿼시 등 다른 종목들도 나름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쉽지 않은 경쟁이 예상된다. 레슬링을 제외한 이들 종목은 지난 12월부터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등 IOC로부터 정식종목 채택을 위한 철저한 검증을 받고 있다.

재선택을 받기 위해 국제레슬링연맹은 파격적인 쇄신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미 파테르 규정을 전면 폐지하는 등 쇄신책을 강구해 왔지만 다시 선택받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방안이 요구된다. 그래서 ▲지나치게 세분화된 체급 수의 감축과 체급 구간 확대 ▲그레코로만형(상반신만을 사용하여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는 경기 유형)을 폐지하고 자유형으로 단일화 ▲심판 판정 시스템 개선 등의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뉴시스



향후 추세를 볼 때 IOC와 올림픽의 상업화는 더욱 극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런던올림픽은 짙은 상업성으로 악명 높은 대회로 평가되고 있다. 런던의 비싼 물가와 TOP프로그램에 선정된 스폰서들의 독점적인 물건 판매가 결합해 올림픽 기간 동안 런던의 물가는 살인적이다시피 했다. 올림픽 조직위는 TV중계의 편리함을 위해 임의로 경기시간을 조정하기도 했다. 곳곳에서 상업성이 희석되지 않은 채 노골적으로 나타났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역시 예외가 될 것 같진 않다. 막대한 올림픽 준비 비용으로 인해 스폰서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게다가 다음 올림픽이 열리는 브라질은 내년에 월드컵도 개최하기에 월드컵 개최로 인한 비용이 올림픽으로 전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연히 스폰서의 유혹은 더욱 심해지게 된다. 거대 스포츠 이벤트는 ‘돈잔치’가 된지 오래라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IOC는 이번에 핵심 종목으로 지정된 종목에 대해선 영구적으로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될 것이라 얘기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이 방침이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대중성, 그리고 이와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상업성. 이제는 한 스포츠 종목의 명암을 가를 정도로 아주 큰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