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브랜드, 특히 샤넬의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다. 현재 샤넬의 가격 상승 주범인 샤넬 2.55 백의 캐비어 미디엄 사이즈는 550만원 대, 빈티지 미디엄 사이즈는 600만원 대이다. 이러다 보니, 한국보다 샤넬 2.55 백이(이하 ‘그냥’ 샤넬 백) 약 200만원 정도 가격이 싼 프랑스로 휴가를 가서 샤넬 백을 사오거나, 샤넬 백을 사서 몇 년 동안 깨끗이 쓰다가 중고로 비싸게 판다는 ‘샤테크’ 라는 신조어까지 유행하는 상황이다. 대표적 명품 브랜드답게 샤넬의 위엄은 단지 소비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의 부유와 소비의 상징인 백화점마저 샤넬의 눈치를 본다. 명품 매장 인테리어 비용은 백화점에서 100% 책임진다는 암묵적 합의 때문에, 8월에 새로 개점한 현대백화점 대구점이 샤넬 매장에 들인 인테리어 비용은 330억 원 이상이다. 이런 샤넬의 "무용담" 덕분에 사람들은 점점 샤넬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이기 시작했고, '샤넬=사치'라는 공식이 암암리에 성립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디가서 샤넬에 대한 찬사 한 마디라도 했다간, 여지없이 사람들의 눈총을 받기 일쑤다.


모든 원흉(?)의 원인인 샤넬의 생전 모습. 그녀는 선원의 모자, 남자들의 베스트, 화려한 모조 보석을 이용한 스타일을 즐겼다.




하지만 알고 있는가? 이 모든 비화에도 불고하고, 샤넬 백의 담고 있는 역사적, 디자인적, 철학적 가치들은 인정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우선 샤넬 백의 가치를 알아보기 위해선 그것을 디자인한 가브리엘 코코 샤넬의 철학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본디 고아원 출신이었던 샤넬은 가수로 일하던 시절 애인의 도움으로 모자가게를 차리게 되고 1916년에 정식으로 그녀의 디자인을 발표한다. 그리고 이 컬렉션은 여자들이 옷 입는 방식을 바꾸었고, 나아가 여자들의 생활 방식을 바꾸었다.


1910년대 초기까지만 해도 여자들은 장식이 많고, 치렁치렁한 옷을 입었다. 당시 여자들이 목숨같이 지켰던 불문율인 ‘코르셋을 이용한 잘록한 허리, 풍만한 엉덩이’를 증오한 그녀는 몸의 곡선 드러내지 않는 일직선 실루엣과 무릎을 살짝 덮은 편안한 옷을 디자인 했다. 이로 인해 당시 여자들은 씩씩하게 거리를 걸을 수 있는, 활동의 자유를 가질 수 있었다. 활동의 자유를 여자들에게 선물한 것 외에도 샤넬은 남성들만이 입었던 옷들을 여성복에 차용하면서 남녀의 차이를 허물었다. 남자들의 스포츠웨어였던 스웨터, 가디건을 여성복 컬렉션에 최초로 도입한 것도 샤넬이었다. 지금도 ‘샤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인 트위드 자켓 역시 남자들이 사냥할 때만 입던 트위드 소재로 만든 옷이었던걸 아는가?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샤넬은 남자들이 가장 활동적으로 움직일 때 입던 옷들을 여자들에게 소개하면서 옷에 있어서 ‘성차별’을 없앤 선구자였다. 



 

1910년대의 여자들의 의복                                            샤넬의 컬렉션 이후 1920년대에 유행한 스타일



그뿐인가, 샤넬은 럭셔리의 개념을 뒤집은 여자였다. 처음 샤넬이 보석 디자인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사람들은 경악했다. 진주목걸이는 흔히들 말하는 남프랑스 지중해 양식장에서 ‘한 알 한 알’ 채집한 천연 진주가 아닌 모조 진주였기 때문이다. 모조 진주와 모조 보석에 화려한 디자인을 갖춘 크고 장식이 많은 디자인은 모조 보석으로 만들어진 주얼리의 통칭인 일명 ‘코스튬 주얼리(Costume Jewelry)’의 시초였다. 이처럼 싸구려 취향이라 치부했던 모조보석을 명품의 반열로 올려놓은 그녀의 혁신적인 발상은, 만화의 기법을 차용해 그린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 미술관에 전시 되고 있는 것과 그 개념이 비슷하다. ‘싸구려 취향의 고급화.’ 그것을 그녀는 세계 누구보다도 먼저 세상에 소개했다. 샤넬이라는 여성은 ‘고급취향’을 비웃으며 ‘고급’의 개념을 재정립했고,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허무는 혁신적 디자인의 창시자였다. 그리고 그녀의 ‘자유’와 ‘럭셔리’에 대한 철학의 정수가 1955년 2월에 만들어진 샤넬 2.55백이다. 유명하디 유명한 이 가방의 체인장식은 샤넬이 군인들이 쓰던 가방 끈에 영감을 받아서 만든 것이라 한다. 어느 귀족의 가방도 아닌 한낱 ‘군인’의 가방에 영감을 받았다는 것은 당시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반항이며, 그것은 바로 샤넬이 생각하던 진정한 고급의 의미였다. 또한 샤넬 백은 세계 최초의 숄더백이었는데, 당시 여자들에게 숄더백이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한 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여자들은 외출 할 때 항상 손에 가방을 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여자들은 숄더백을 어깨에 메기 시작하면서, 여성들은 두 손을 자유롭게 움직일 권리를 가지게 됐다. 이는 여자들도 더 이상 담뱃불이 가방에 붙지 않을까 조심하며 담배를 피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뜻했다. 샤넬 백 덕분에 여자들은 남자들처럼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담배를 피울 수 있게 되었고, 여자들도 남자들처럼 자전거는 물론 오토바이를 자유롭게 탈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여태껏 남자 밖에 할 수 없었던 행동을 샤넬 백 덕분에 여자들이 할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왼쪽의 빈티지 샤넬 백과 오른쪽 현재의 샤넬백. 별다른 디자인의 변화가 없다.




그렇다면 샤넬의 디자인적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세상에 나온 지 약 60년이 지났어도 샤넬의 원형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사이즈변화, 잠금 장치의 변화를 빼면 체인과 퀼팅(quilt: 누비무늬)의 조합이라는 기본적인 디자인은 바뀐 적이 없다. 게다가 샤넬 백은 고급스러우면서 동시에 무난하다. 60년 전 샤넬이나, 중년여인, 아가씨, 심지어는 어린이까지 같은 가방을 들어도 이질감이 없으며, 심지어는 어떤 옷에도 다 잘 어울린다. 우리나라 여자들은 이 사실을 할리우드 스타의 파파라치 사진을 보면서 깨달았다. 우리나라 여자들의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그들이 트레이닝 복에도 샤넬을 들고, 레드 카펫에서도 샤넬 백을 들었을 때 우리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청담동 며느리 룩, 사모님 스타일의 대표주자였던 샤넬의 2.55 백이 이렇게나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니!(그러면서 항상 고급스럽고 예쁘다니!) 생각해보면 그 순간은 재앙의 시초였지만, 동시에 소비자들이 샤넬 백 디자인의 가치를 알아본 순간이었다.



 

중년여인에게도, 가벼운 옷에도, 드레스와도 트레이닝 복과도 어울리는 샤넬 백.

 

우리 나라에서 샤넬은 가격 거품이 많이 껴있다. 여자들의 소비심리와 브랜드의 이윤추구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가격이 오른 결과이다. 하지만 이런 판국에서도 우리는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샤넬이 단순한 사치와 된장녀의 상징이 아닌, 여성 해방, 럭셔리의 개념 변화에 앞장 선 선구자였다는 사실과, 그러한 철학을 담은 디자인들은 매우 가치 있는 유산이라는 것을…. 그리고 여성들은 샤넬 백을 들고 싶은 이유에 대해 한 번쯤 고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뻐서, 신분상승의 의미로, 내 친구가 선물 받았다니까, 아니면 ‘샤테크’ 라는 재테크 수단으로? (참고로 샤넬 백은 중고로 비싸게 팔 수 있다고 해도, 원가보다 싼 가격에 팔 수 밖에 없기에 예전에 샤넬 백을 산 사람이 아니라면 ‘샤테크’ 의 덕을 볼 수 없다.) 이런 감정적 이유를 제쳐두고, 당신은 그토록 갖고 싶어하는 샤넬 백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이성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샤넬과 그를 추종하는 여자들을 비난하는 이들 또한 그 대상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비난 받을 대상은 한국에서 유독 그 위용이 높은 샤넬과, 어느새 명품백이 필수가 되어 버린 풍토지, 디자이너의 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는 샤넬 백과 샤넬이라는 브랜드가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