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 김미화. 어김없이 익숙한 이름들은 등장하고야 말았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지난 2009년 '특정 연예인 명단'을 작성해 경찰에 불법사찰을 지시했음이 1일 밝혀진 것이다. 이날 공개된 문건에서는 '김제동씨의 방송 프로그램 하차 사실', '좌파 연예인 표적수사 시비'등의 문구가 들어있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삭제된 파일 중에는 '연예인'이라는 별도 폴더가 발견됐다. 보도에 따르면 당국 관계자는 "현 정부 비판 발언을 한 연예인들이 조사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100%를 사찰했든 20%만 사찰했든 한 나라의 정부가 민간인을 불법사찰했다는 사실이 확실해진  상황에서 김제동씨의 증언은 '사찰 그 이상'을 생각하게 한다. 2일 김제동씨는 <한겨례>, <경향신문> 등과의 전화통화에서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앞둔 2010년 5월쯤 국가정보원 직원의 요청으로 두번 만난 일이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 직원이 '방송을 앞으로 계속 해야하지 않겠느냐'며 추도식에 안 가면 안되겠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조사하여 살핌'의 의미를 갖는 사찰에 그치기에는 '방송을 앞으로 계속 해야하지 않겠느냐'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협박'에 가까워보이는 국정원 직원의 위와 같은 언행은 우습게도 아침 드라마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한 귀부인이 며느리가 되려 하는 여자의 생계를 들먹이며 아들에게서 떠나라고 하는 고리타분한 그 장면 말이다. 심지어 그런 모습은 너무나 전근대적이고 유치하기까지 해서 이제 잘 보이지도 않는 90년대의 진부함이다. 드라마가 아니고서야 상상할 수 없는, 드라마라고 해도 야유하게 만드는 그 장면을 청와대와 국정원이 연예인을 대상으로까지 재현했다니 믿고 싶지도 않은 일이다. 30~40년 전에나 했던 연예인 사찰이 21세기에 이뤄졌다는 것은 정말이지 부끄러운 짓이다.

정부는 더 이상 옛날을 생각하면 안된다. 생계를 위협하는 유치한 협박이 통할 것이라 생각해서도 안되겠지만, '이전 정권도 사찰했다'며 과거로 잘못을 떠넘기는 것이 성숙한 태도라고 생각하는가. 과거 독재 정권이 정권유지를 위해 자행했던 악덕한 짓을 저질러놓고, 그들이 행복했던 그 시절처럼 적당히 넘기면 될 일이라고 치부하지 않길 바란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 앞에 당장 고개를 숙여야 한다. 딴청을 피울 수록 제 얼굴에 칠한 먹만 진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