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한 번쯤 꼭 해보고 싶은 것’을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세계일주를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 꿈을 실제로 시도할 용기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오늘의 인터뷰이 임지혜씨에게는 그런 용기가 있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년 2개월의 여행을 무사히 마친 그녀. 그럼에도 “오세아니아는 다녀오지 못했으니 세계일주라고 말하기는 부끄럽다.”는 겸손함도 잃지 않는다.

내가 임지혜씨를 처음 만난 것은 런던에서였다. 그녀에게 가장 놀라웠던 것은 혼자 여행을 하는 패기보다도 무엇에든 열려있는 그녀의 태도였다. 세계의 반을 1년간 돌아다닌 그녀에게 웬만한 이야기는 신기하지 않을 만도 했다. 그런데 그녀는 시덥잖은 여행객들의 이야기도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는 듯이 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녀보다 5년을 덜 산 나는 이미 많은 것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누구에게든 밝은 에너지를 가져다주는 그녀가 고맙고 부러운 것은 당연했다.

에딘버러에서 8월 말 즈음 헤어진 이후 1년 3개월 만에 한국에 돌아온 지혜씨를 만났다. 동남아에서 살도 찌고 얼굴도 까매졌다고 부끄러워했지만 건강하고 반짝반짝한 모습이었다.


Q. 여행 전체 여정은 얼마나 되었나요? 

갑작스럽게 회사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많이 준비는 하지 못하고 여행을 시작했어요. 다른 분들은 보통 1년을 준비를 하는데, 저는 무작정 몰타에 가서 쉬면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몰타까지 포함하면 2년 2개월간 여행을 했고 (몰타를) 제외 하면 50개국을 1년 7개월, 즉 600일 동안 여행했어요. 하지만 세계일주라고 하기에는 조금 민망해요. 몇 개국을 여행해야 세계일주라는 법칙은 없지만 모든 대륙을 한 번씩은 방문해야 하는데 오세아니아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민망한 부분이 있어요. 


Q.
특별히 2년의 여행으로 잡았던 이유가 있나요?

한 곳에서 여유 있게 여행을 다닌 스타일이었고 계획도 철저하지 않은 편이었어요. 덜 스트레스를 받아서 길게 여행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원하는 대로, 가고 싶은 곳으로 그때그때 정했어요. 1년 여행을 다니시는 분들 중에서는 하루하루 스케줄을 짜서 1년 치 비행기를 끊어놓으신 분들이 많은데 하루만 틀어져도 큰 스트레스를 받곤 하셨죠. 



Q. 여행하기 전에는 무슨 일을 하셨나요?

관광학과를 졸업했지만 관광 계통은 너무 박봉이었어요. 동생의 대학교 학비를 대야 하는 상황이라 돈이 되는 회사를 다녀야 했죠. 막연히 삼성과 LG가 돈을 많이 줄 거라 생각하고 그 쪽에 지원을 하기 시작했죠. 철강화사나 자동차 회사가 더 많은 돈을 준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어요. 어쨌거나 삼성, LG같은 1군에서 떨어졌으니 2군에 지원을 하기 시작하던 중 일본계 전자회사에 들어가기 되었어요. 좋은 회사라 붙었을 때 얼떨떨했어요. 면접 때 간단한 일본어 질문을 했는데, 일본어 자격증 있는 분들도 대답을 못 하시더라고요. 저는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알았는데 자격증이 없어 이력서에는 넣지 않았었거든요. 그 질문에 대답했던 게 주요했던 것 같아요. 



Q. 세계여행을 하겠다는 마음은 언제부터 품고 계셨어요?

제가 언젠가 세계 일주를 하게 될 거라는 걸 언제나 알고 있었어요. 그게 조만간일지 10년 후 일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초등학교 때 방학 때마다 대형 전지에 세계지도를 그리는 것이 있었어요. 매 방학마다 그걸 하다 보니까 언젠가 다 갈 수 있을 것 같았고, 가고 싶었어요.



Q.
갑자기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직접적인 동기가 있었나요
?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는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이 내가 다닐 때 폼 날 것 같은 회사,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했어요. 하지만 다니다 보니 나한테 좋은 직장이 좋은 회사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회사는 제가 만족하고 발전할 수 있는 비전이 없는 회사였어요. 능력을 쌓아나가기도 힘들고, 여자의 한계도 정해져 있고 일을 하면서 보람도 느끼기 어려웠어요. 일이 질리지도 않았고 일이 익어서 힘들지 않았고 안정적이기도 했지만 보람이나 내 능력을 쌓아나가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컸어요. 

때마침 같은 나이대의 사람들이 회사 신입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제가 조금 일찍 취업을 한 편이라 5년차에야 나이대가 맞는 분들이 들어오셨는데, 소위 스펙이 다들 굉장했어요. 외국 대학을 나온 친구들도 많았고, 자극이 되었고. 제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죠. 결론은 이 회사를 그만 뒀을 때 저의 경쟁력이 없다는 거였어요. 아직 젊기 때문에 도전도 해 보고 싶고, 실패도 하면서 제가 부족한 점을 채우고 싶었어요. 



Q. 아무래도 한국 사람이다 보니 우리나라와 비교를 많이 했을 텐데, 여행하면서 느낀 우리나라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일단은 우리나라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 강국이라는 걸 느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도 어디서나 자신감 자부심을 느낄 만 하다고 생각했어요. 문화 강국이고 자부심이 많은 유럽 국가들에 있을 때도 우리나라 문화가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죠.

유럽에서 부러웠던 것은 ‘여유’인 것 같아요. 한국 사람으로써는 불편할 때가 많았죠. 많은 것들이 한국처럼 24시간이 아니고, 일요일엔 상점들이 문을 닫고. 하지만 반대로 한국 사람들은 과도하게 노동을 한다는 거죠. 유럽 사람들은 노동자들도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주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6시 넘어서 문을 닫고 일요일에도 닫고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문을 열지 않아요. 우리나라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돈 벌수 있는 날이라면 가게 문을 여는 걸 최선으로 여기잖아요. 여유와 자신의 즐거움을 더 위에 놨으면 좋겠어요. 



Q. 해외에서 본 한류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어딜 가나 한류 열풍은 장난 아니에요. 중동에서는 한국 사극 열풍이 장난 아니에요. 송일국은 페르시아 왕자급이죠. 중동에서는 여성의 노출이 많이 된 것은 방송을 못하다 보니 방송할 수 있는 해외 콘텐츠가 한국의 사극 외엔 많지 않거든요. 일반 한국 사람들 하고도 사진 찍자고 하고 환영을 많이 해줘요. 남미에서도 인기가 많은데 페루의 2000m가 넘는 고산지대에도 한국 사람들을 좋아하는 현지 모임이 있어요. 도배지가 한국 포스터에요.
그 이유가 중동이나 남미 사람들이 보기에 정서가 비슷해서인 것 같아요. 가족적이고. 한국 여자는 순종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인기가 많아요. 



Q. 외국에서 본 다른 한국 여행자들은 어땠는지 이야기 해 주실 수 있나요?

유럽 여행을 하는 한국 여행자들을 보면서 여행을 ‘즐긴다’는데 방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간다’에 초점을 둔다는 것 같아서 아쉬웠어요. 짧은 기간에 중요한 포인트만 찍고 이해하기도 전에 가는 것이 아쉬웠어요. 여행을 즐기려면 시간이나 돈을 투자해야 하는데 그냥 훅 쇼핑만 하고 가버리죠. 유럽 물가가 비싸다 보니까 한인 민박에서 아침 한식 먹고 저녁 먹곤 하는데, 뭔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먹고, 자고, 보는 게 여행인데 말이죠. 잔디밭에서 포도주 마시는 것 같은 건 안 하고 박물관에서도 모나리자만 보고 가버리는 게 아쉬워요. 문화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별로 하지 않아요.  

물론 저 같은 장기여행자들은 반면에 꼭 봐야하는 명소들을 못 보는 경우도 있어요. 어디를 가야하고 언제 가야하는지 정해져 있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길게 있으면서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것들이 많아져요.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고 더 길게 보고. 
 

 

Q.
중동이나 남미처럼 문화가 크게 다른 곳에서의 여행자들은 어떤가요?

이란 같은 근본주의 무슬림 국가에서는 여행자도 히잡을 써야 하거든요. 그런데도 중동에서 나시나 미니스커트를 입는 여행자들이 좀 보기 좋지 않아요. 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느낌? 그 나라 사람들에게는 문화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Q. 정말 많은 곳을 가보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 장소는 어디인가요?

아프리카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첫 여행지기도 했고, 내가 알던 세계와 너무 반대되는 곳이기도 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가서 크게 와 닿았던 것이 있을 수도 있고. 아프리카 하면 가난하고 병도 많고 그럼에도 굉장히 ‘사람이 희망이다.’ 라는 생각을 들게 했어요. 아프리카에 있으면서 내 자신이 바뀌는 것이 느껴졌거든요.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말라리아 약 부작용이 생겨서 크게 아팠던 적이 있는데, 탈수가 오고 힘들어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있는데 아프리카 사람이 ‘왜 아무데도 못가고 있어?’라고 물어서 몸이 안 좋다고 했더니 ‘어떻게 해야 좋아질 것 같냐’고 묻더라고요. 흰 쌀밥이 먹고 싶다고 했어요. 한국식 쌀밥이요. 코코넛 물로 쌀밥을 지어 줘서 그거 먹고 나았죠. 어느 날은 ‘별이 춤추는 걸 보여준다고’ 해서 나갔더니 반딧불이 수백 마리가 있었어요. 너무 아름다웠어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바뀌는 것이 느껴지는 여행 장소였어요. 

한 번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진 곳이었어요. 그래서 나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된 것 같아요. 아프리카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거의 안 일으키는데 가장 피해를 많이 보는 사람들은 아프리카 사람인거죠. 우리가 일으킨 환경오염 때문에 기후 변화가 일어나는데, 이집트에서 피해를 보는 거죠. 원래 연 강수량이 10mm정도라 배수시설도 없고 흙으로 집을 짓는데 비가 많이 오면 집이 무너져버려요. 그래서 공동체의식에 대해 생각해보거나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보통 아프리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잖아요. 한 번은 아프리카에 원조를 결정하는 국제회의를 반대하는 시위대를 만난 적이 있어요. 그쪽 주장은 아프리카는 자립을 할 수 있는데도 서구 열강이 원조를 주면서 자립을 못하게 하고 자원을 담보로 원조를 한다는 거죠. 몇몇 나라는 건전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원을 가져가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산업화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우리한테 산업화란 당연한 과정이고 무조건 좋은 것이었잖아요. 우리의 과거라고도 할 수 있는 아프리카를 보다 보니 문명화, 산업화가 좋은 것인지 모르겠더라고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점들을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Q. 막상 세계를 다녀보니 영어가 중요하던가요?

가기 전에는 ‘영어 못하는데 어떻게 여행을 하지?’하는 걱정을 가장 많이 했어요. 겁이 나는 부분 중에 하나기도 했고요. 하지만 막상 영어 쓰는 나라가 많지는 않더라고요. 중동, 남미에서는 영어가 안 통해요. 그리고 사람 사는 게 어떤 부분에서는 비슷해서 바디랭귀지로 충분히 소통이 가능하더라고요. 여행하면서 쓰는 말이 그리 많지는 않아요. 그래도 남미 가기 위해서 간단한 스페인어는 2주정도 배웠고, 언제나 ‘인사’와 ‘감사합니다’는 현지어로 알고 다녔어요. 그 두 마디는 현지어로 배워서 쓰면 반가워하고 좋아해요.  



Q. 세계여행을 끝내고 나서 얻은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좀 더 자신감이 생겼어요. 앞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두려움이 많이 사라지고 책도 전시회도 하고 싶어졌어요. 



Q.
책과 전시회에 대한 구상이 있을 텐데 그런 부분에 대해 말해주세요.

책은 내내 구상하고 준비를 하면서 여행을 했어요. 자랑처럼 나 이런 것 해봤다는 책이 아니라 오래도록 누군가의 책장에 남을 책을 만들고 싶어요. ‘공감’과 ‘위로’를 주는 것이 저의 목표에요. 요새는 여행기도 많고 볼거리나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있어요. 무전여행, 자전거여행처럼 다이내믹함은 없지만 여자 혼자서 할 수 있는 평범한 여행을 했기 때문에 여행의 여운이나 공감을 남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심플함’이 저의 강점인 것 같아요. 

여행 정리는 한 반 정도 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진척이 쉽게 되지 않아요. 과장이나 미사여구를 체로 치듯이 거르고 걸러서 덩어리만 남기고 싶은데 자꾸 수려한 말을 덧붙이게 되는요. 수사는 쉼표로 대체하고 짧으면서 긴 여운을 남기고 싶은데 쉽지 않아요. 그래서 진척이 잘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책은 시작이고, 앞으로도 저를 끊임없이 표현하고 싶어요. 글, 전시, 공예 다양한 것들과 결합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구요. 결국 사람은 알게 모르게 자신을 표현하면서 사는데, 저는 아직 가장 저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매체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정형화 되어있었는데 표현하는 세대로 넘어갔기 때문에 남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개성이 필요해요. 저만의 그런 부분을 찾아가고 싶어요. 나를 내보이고 사람들이 호응해주고 공감하는 것들이 즐거워요. 남들이 저를 통해 위로를 얻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어요. 



Q. 여행을 통해 특별히 새로 하고 싶어진 것이 있나요? 

우리나라 문화재를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중에서도 ‘마당놀이’를 문화 콘텐츠로 발전시키고 싶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해외여행하면서 오페라, 뮤지컬 많이 보잖아요. 외국인은 한국에 왔을 때 보고 즐길만한 문화 콘텐츠가 없는 것 같아요. 마당놀이는 정말 재밌고 무대와 관객들도 같이 호흡하는 많은 장점이 있는 극인데, 우리만 아는 게 아쉬워요. 굉장히 즐거울 수 있는 콘텐츠인데 개발되지 않았다는 것. 
인간문화재들의 작품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연계해 주는 창구 역할을 해 주고 싶어요. 런던이나 뉴욕처럼 문화요소를 소비하게 하는 콘텐츠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Q. 세계여행을 하고 나서 취업을 하니 세계여행에 대해 고용주들은 어떻게 생각하던가요?

두 가지 유형이 있는 것 같아요. ‘세계여행이라니 대단하시네요.’라고 이야기 하면 좀 가망성이 보이고, ‘아니, 여행을 이렇게 오래 하고 다시 회사 다닐 수 있겠어요?’라고 이야기 하면 어렵죠. 전체적으로 보면 취업에 플러스보단 마이너스가 많은 것 같아요.



Q. 다음 대통령에게 특별히 바라는 점이 있나요?

나는 누구나 봐도 안 되는 것은 안했으면 좋겠어요. 음.. 그냥 억울한 사람들이 생겨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억울한 게 가장 답답하고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그런 감정인데, 그런 게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억울함 없이 깨끗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에요. 이미 ‘공부’처럼 하나의 길이 정답이라는 공식은 깨졌으니 다양한 모델들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방식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아져야 다양한 방식으로 도전하고 성공하고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더 여유 있어지고요. 그러려면 일단 교육과 문화 제도가 다양해 져야 할 것 같아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원해 주는 정책을 쓰면 풍요로운 혜택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공부 잘 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다른 것을 할 수가 있고, 별 것 아닌 것에 모두 매달리는 사회가 아니면 사람들이 조금 더 여유로워 질 것 같아요. 여유를 통해 우리 사회도 조금 더 밝고 건강해 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