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20의 새로운 연재, 치명적인 매력의 VS
살아오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 "여야가 잘 화합해서 결정하자"는 적당적당한 결론은 이제 그만! 제3의 선택지는 없다. 피할 수 없는 양자택일의 상황. 극한의 조건에서 고함20의 기자들이 냉철한 분석력으로 마주한 현실을 낱낱히 분석해드립니다. 여러분의 선택은 어느쪽입니까?



당신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면 웬만해선 대입의 높은 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수능만 해결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텐데. 하지만 대학입학 정도로 인생의 큰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하면 커다란 착각. 만약 당신이 남자라면 1학년을 마칠 때 쯤 군대야말로 절대 피할 수 없는 장애물임을 다시금 깨닫게 될 것이다. 입영신청이 마무리되고 카운트다운이 한자리수대에 접어들면 군입대를 피하기 위해 영혼이라도 팔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될지도 모른다... 진짜?
 

그래서 준비했다. "서울대 경영학과 입학하고 평범한 방법으로 군대가기" 대 "군면제 받고 내 실력대로 대학가기". 20대 초반 남성이라면 피할 수 없는 두 개의 위기인 대학과 군대. 둘 중 하나를 마음대로 해결할 수 있다면, 여러분의 선택은 어느쪽입니까?  


1. 서울대 경영학과 입학해서 군대 감 ㅇㅇ
소개팅에 나간다고 생각해보자. ‘군대 면제받았습니다.’는 말이 이성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마이너스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관악에서 경영대 다니고 있습니다.’라고 하면 목 늘어난 티셔츠에 카고바지를 입고 있는 남자라고 해도 조금은 다르게 보이는 것이 현실. 목에 힘이 들어간 서울대 경영 군필자는 ‘흥 내가 너를 기꺼이 만나주고 있지.’라는 태도로 데이트에 임할 수 있으니 그 자신감만으로도 승산이 있다. 90년대 생의 95%가 군대에 간다. 서울대 경영의 0.01%의 희소성을 이길 수는 없다는 점에서 서울대 경영 승.
 


2년의 시간이면 뭐든 할 수 있다고도 하지만 2년의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원하는 대학조차 들어가기 힘들다. 삼수해서 망한 사촌형의 가문전설 하나 없는 집도 있던가. 하고 싶은 일이 대학 학위와는 관련 없는 일이라고 해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학벌은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같은 2년의 시간이라고 해도 ‘서울대 경영’이라는 보장된 타이틀을 기반으로 하는 것과 고졸의 신분으로 시도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문제는 2년 희생 vs 평생의 영광이다. 할배가 되어 똥오줌을 못가리는 때가 와도 '오오오 저 할아버지 왕년에 서울대'하는 질시와 존경을 받을 수 있다. 문과의 정점에 있는 저 타이틀을 거머쥐기 위해 누구나 가는 군대 2년 다녀오는 것이 그리 대수일까.
 

게다가 서울대 경영 학생이라면 군생활도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다. 앞으로 잘 될 사람을 건드려봐야 좋을 일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당신의 선임들은 슬쩍슬쩍 봐주거나, 전역 후 인맥을 만들기 위해 잘해 줄 공산이 크다. ‘서울대 경영’출신의 누군가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든든한 것이 한국사회. 당신을 전력해서 갈구는 선임은 없을 거고 당신이행여나 크게 다칠까 다들 조심할 것이다.

입대가 목숨을 내놓고 하는 일이라지만 설령 당신이 죽는다고해도 ‘예외적으로’ 신문에 짧은 기사정도는 나갈 것이다. 다음, 네이버에는 메인으로 걸릴 공산도 크다. ‘서울대 경영대생 군대에서 사망 알고보니...충격!’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겠지만 말이다. 당신의 죽음이 기릴만한 것이어서 실리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서울대 경영대’생이기 때문에 기사가 나온다.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는 192명이 생을 달리했다. 그리고 언론은 서울대 합격통보를 받은 스무살 학생만을 주로 다뤘다. 2년 안에 언론이 당신의 죽음을 애도할 만큼의 사회적 성취를 이룰 수 있을까. 어렵다 '서울대'만으로도 사람들은 당신의 죽음에 애도의 감정을 가진다. 반면에 고졸 아무개가 전방에서 죽은 것은 불행하게도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만큼 이 사회에서 중요한 일이 아니다.


2. 뭔소리야, 군면제가 갑 ㅇㅇ

무슨 미친 소린가 싶다. 죽어서 기사 몇 줄 실리는게 대수냐. 이승에서 구르는게 최고다. 

사실 이건 아주 간단한 얘기다. 
일단 이성적으로 뭐가 더 이익이냐는 뒤로 제쳐두자. 애초에 군대를 앞둔 남자들에겐 그냥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군 면제가 갑이라는 것이. 이건 마치 콩깍지가 씌인 것과 같아서 눈 앞에 돈다발 들이밀거나, 취향맞는 여신님이 내 방에 앉아있는 확실한 것이 아니면 군대를 피하고자 하는 위험회피본능을 억제할 수 없다. 그 유명한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설에도 안전 욕구가 무려 2순위 아니던가. 이게 충족이 되어야 명예나 자아실현을 따질 일이다. 그러니까 이건 군 면제를 포기한다면 서울대 입학을 선물로 주지라는더 큰 선물을 약속하는 마시멜로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군대에 대한 강렬한 거부감이 이야기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 거부감은 ‘웬만한 마시멜로로는 택도 없다. 서울대 경영 입학은 더 이상 보장이 확실한 마시멜로도 아니다.


물론, 이성적으로 합당하기도 하다! 애초에 군대는 2년이다. 근데 그 날고 긴다는 서울대생들도 취업이 안 된다는 이 시대에 서울대라는 간판이 자유로운 2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아무도 모른다. 서울대에 가기는 했는데 거기서 학고를 받을지, 날고 긴다는 서울대생들의 발바닥 아래에 있을지 모른다는 얘기다. (돌고래 아이큐 그대로 서울대 가면 무슨 소용인가 싶다.) 대신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있다. 군면제를 선택하면 군대에서 온갖 스트레스와 중노동에 시달리지는 않아도 된다는 거다. , 또 한 가지 있다. 서울대를 선택하면 군대에는 가야 된다는 거.

 

군대에서 하늘에서 눈이 내려와 커플들이 신나할 때 그 눈을 치우고 남자들밖에 없고 그동안 공부한 것 다 까먹고 나날이 변해가는 사회에 동떨어져 버림받은 느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군면제 만한 마시멜로는 없다. 군대에서 먹는 초코파이 맛이 각별하다지만, 그 안에 든 자그마한 마시멜로보다 훨씬 큰 마시멜로가 군 면제라는 달콤한 마시멜로다. 

 

비록 서울대를 가지 않아도 2년간 열심히 공부하면, 혹은 돈이라도 벌어두면 뭐라도 도움은 되지 않겠는가. 2년간 열심히 언어수리외국어만 파도 서울대 비슷한 대학교라도 진학할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군대에 가는 바람에 신체, 정신, 사회적응력 모두 나날이 떨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2년 간 열심히 살지, 그냥 놀지 어떻게 알아? 최소한 서울대라는 간판은 확실하다구!’라고 묻는다면, ‘서울대 간판 달고 군대 들어갔다가 군대 내 사고로 몸 어딘가가 크게 다칠지 어떻게 알아? 최소한 2년간 그런 위험이 없어지는 건 확실하다구!’라고 답하고 싶다. 어차피 확률 얘기 아닌가. 그나마 자유로운 2년은 내 의지에 달려있지만  군대 생활 2년은 내 의지랑은 전혀 관련 없는 오로지 확률에 따라 달린 일이다. 이쯤되면 어차피 확률 놀음인거 본능적 위험을 피하고 내 자신을 믿어보는게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