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지의 위기

10개가 넘는 대전지역 대학 가운데 교지가 발행되고 있는 곳은 목원대학교, 충남대학교, 카이스트, 한남대학교로 4개 대학 뿐이다. 이마저도 2011년 6월 카이스트 교지 '한울'이 10여년의 공백을 딛고 재 창간되어 늘어난 숫자다. 이 숫자는 다시 원래대로 줄어들 뻔했다. 작년에 충남대학교 교지 '보운'이 존폐 위기를 겪었기 때문이다. 교지편집위원회가 중앙운영위원회에서 제명되었고, 총학생회 또한 교지편집위원회를 없애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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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지가 겪는 공통적인 어려움에 대해 카이스트 교지 '한울'의 편집장 김태진씨는 "학생 사회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며 교지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90년대 말에 비운동권, 반운동권이 학생 사회를 주도하며 학생들의 성향이 달라지고 교지 또한 사라졌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교지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적어졌다는 것이다. 충남대학교 교지 '보운' 전 편집장 황성경씨도 "교내 대부분의 학생이 교지를 모른다."고 말했다.

80년대 교지의 지면 대부분은 학생운동이론이 차지했다. 운동권 학생들이 사회 문제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 지금 학생들이 보기엔 알아들을 수 없는 말투성이겠지만, 그 시절의 학생에겐 학생운동을 이끄는 교지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학생운동의 동력은 약해졌다. 이에 따라 정치적 지향점이 뚜렷한 교지도 학생들과 점차 멀어졌고, 많은 교지가 폐간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일부 교지는 탈정치화를 외치며 잡지처럼 모습을 바꿨으나 큰 호응을 얻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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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다가가는 교지

언론은 독자의 관심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그렇기에 각 대학의 교지편집위원회는 교지의 독자인 학생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한남대학교 교지 '청림' 편집장 강수진씨는 "과거에는 학생운동과 민주화가 많은 대학생의 정신이었고 대학생이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으나, 시대가 바뀌어 대학생들의 생각과 위상이 바뀌었으니 교지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청림'은 글을 잘 읽지 않는 학생들이 교지를 많이 읽게 하기 위해 사진 위주의 콘텐츠 비중을 늘렸다.

충남대학교 교지 '보운'은 대학 문화 형성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단순한 언론사가 아닌 문화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되는 것이 목표다. 편집장 김기영씨는 "추억 만들기, 봉사 활동, 이색 체험, 스펙 쌓기 등을 겸해서 여러 학과 학생들과 어울릴 수 있는 대학 문화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동시에 교지를 홍보하고, 진행한 프로젝트에 대한 기사도 쓸 계획이다. 지난해에는 교지를 홍보하며 학생들에게 학교에 바라는 점을 적도록 했고, 그 중에서 글의 주제를 찾았다. 학생들과 같은 문제를 공유하고 해결해나간다는 생각이다.

카이스트 교지 '한울'은 학생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학내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다. 편집장 김태진씨는 "재미있는 콘텐츠를 실어 학생들의 관심을 끌 수도 있으나, 그러면 아무런 의미 없는 언론이 된다고 생각하여 내린 결론이 학내 문제를 얘기하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는 영화 '레미제라블'을 패러디한 영상으로 교지를 홍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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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적인 어려움이 존재

학생들의 적은 관심 외에도 교지편집위원회에게 큰 걸림돌이 존재했다. 바로 재정 문제다. 충남대학교 교지 '보운'은 존폐위기를 겪은 작년 봄학기에 학생회비 지원이 너무 적어, 선배들의 모금으로 겨우 교지를 발간했다. 교지를 발간해도 발행부수는 전체 학생 수의 1/10 정도에 불과하다. 한남대학교 교지 '청림'은 학생들의 관심을 끌만한 감각적인 패션기사를 쓰려했으나, 인쇄비용이 너무 상승해 결국 쓰지 못했다. '청림'의 편집장 강수진씨는 "상품 이벤트를 통해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고 싶지만 상품 준비를 할 만한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재정 상황이 열악하다보니 학생들에게 주목받는 교지를 만들기 힘들고, 교지의 인지도가 떨어지니 재정 확보가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존재했다.

교지가 다른 대학 언론사에 비해 재정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유는 자치 언론이라는 교지의 특성 때문이다. 학교로부터 받는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대학 학보사, 영자신문사, 방송국과 달리 교지는 학생회비와 광고비를 바탕으로 운영된다. 그런데 학생회비 중 교지편집위원회에 배정되는 돈은 그리 많지 않고, 교지의 독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광고를 따내기도 힘들다.

‘자치 언론’ 교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교지 편집장들은 자치 언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카이스트 교지 ‘한울’ 편집장 김태진씨는 “언론은 자치가 중요하다. 종속 받는 곳의 검열을 받으면 언론으로서의 의미가 퇴색된다.”고 말했다. 카이스트 학보사의 경우 발행인이 총장이기 때문에 학교 정책에 대한 비판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치 언론인 교지가 존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