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는 말했다. ‘자신을 즐겁게 하는 일을 하라’ 여기 그 말을 올곧이 실천하고 있는 두 사람이 있다. 스튜디오 뮤지컬을 만든 전 KBS 아나운서 고은령 씨(이하 고아나)와 스튜디오 뮤지컬 홍보 담당 최수진 씨(이하 수진)다. '세계 최초로 들리는 뮤지컬'을 만들고 이를 만방에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꿈을 잃고 현실에 치어 살아가는 수많은 20대를 자극시키기 충분했다. 자신의 꿈을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는 그들을 만나기 위해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녹음실로 찾아갔다.  

ⓒ 스튜디오 뮤지컬

 
Q. 스튜디오 뮤지컬(이하 스뮤)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한다.
 
수진) 기존의 스테이지 뮤지컬에 대응하는 ‘새로운 장르’다. 방송 멘트에도 나오지만 ‘세계 최초로 시도되는 들리는 뮤지컬’이다. 라디오 드라마와 비슷하지만 우리 방송은 팟캐스트라는 점에서 다르다. 스뮤는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관객들이 쉽고 간편하게 접할 수 있고, 창작자들의 부담을 덜어 줄 수 있는 일종의 ‘문화적 대안’이다.


Q. 방송에 로고송처럼 이런 식의 말이 나온다. ‘돈이 없어도, 시간이 없어도, 뮤지컬을 잘 몰라도, 귀찮아도 이어폰만 꽂으면 즐길 수 있다’ 핵심을 잘 찔렀다는 생각이 든다.
 
수진) 문화생활을 즐기지 못하는 20대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스뮤의 주요 타깃이 20대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집에서도 마치 공연장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주자’ 이것이 스뮤가 만들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Q. 스뮤 구성원이 참 재밌다. 배우나 예술을 공부하는 학생은 쉽게 와 닿지만 ‘아나운서’의 참여는 좀 특이하다. 2005년 KBS 홈페이지에 게시된 아나운서 자기소개서를 보면 “공연예술에 관심이 많아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좋아하는 배우는 조승우”라는 말이 있다. 이미 그때부터 준비하고 있던 건가?
 
고아나) 맞다. 물론 그 때는 ‘팟캐스트를 해야 겠다’라는 식의 구체적인 실현방법이 있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공연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겠다는 마음은 항상 갖고 있었다. (굉장히 장기프로젝트다. 한예종에 입학해 공부도 하신다고 들었다) 맞다. 지금 옆에 있는 수진이와 선후배 사이다. 


Q. 스뮤는 크게 ‘자리주삼’과 ‘창작프로젝트’로 나눠 진행되고 있다. 각각의 특징이 무엇인가?
 
수진) 자리주삼의 경우 기존 창작뮤지컬을 배우들이 직접 들려주고, 그들의 인터뷰도 함께 진행한다. 관객들은 아무래도 무대 밖의 배우를 알고 싶어 하지 않나? 그런 부분을 많이 충족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뮤지컬을 각색해 뮤지컬 넘버도 들려 드린다. 창작프로젝트는 올해 처음 시도하는 건데, 뮤지컬 전문 잡지 ‘더 뮤지컬’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을 받았다. 아직 무대화 되지 않은 것을 방송을 통해 먼저 무대화시킨다. 총 5편이 소개될 예정이며, 현재 1편은 방송됐고 지금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고 있는 게 두 번째다. 

한창 녹음 중인 고아나와 배우들

 
Q. 자리주삼은 매달 ‘이달의 뮤지컬’을 뽑아 그걸 방송한다. 뮤지컬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
 
고아나) 일단 무조건 한국 창작뮤지컬이어야 한다. 창작뮤지컬에 ‘으샤으샤’ 기를 불어넣어주자는 취지가 가장 강하다. 사실 그 외엔 특별한 기준은 없다. 기준이 없는 게 기준이다. ‘선을 긋고 편견을 갖고 우리의 잣대로 평가하지 말자’고 늘 생각한다. 그 창작자의 세계를 라디오라는 매체로 전달해 줄 수 있다면 뭐든 괜찮다. 


Q. 지금 방송이 15화까지 업로드 됐는데, 그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
 
고아나) 그동안 스뮤에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 전부가 에피소드다. 방송을 시작할 때도 사람 덕에 시작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할 수 있는 것도 전부 사람 덕이다. 에피소드라고 해서 하나의 사건을 끄집어내기보다 한순간 한순간이 에피소드라고 느껴지는 건 사람이다, 특히 배우의 경우 진짜 바쁜데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서 와주시는 것 자체가 정말 고맙다. 또 방송이 끝나고 굉장히 만족한 표정으로 집에 가시는 걸 보면 그것만큼 보람 있는 일도 없다. ‘잘 됐으면 좋겠다. 앞으로 우리 배우들을 위해서 계속 노력해 달라. 신 창작자들을 위해서 앞으로도 부탁한다.’ 같은 말을 들으면 우리의 취지가 잘 전달되는 것 같아 뿌듯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워하고 이런 과정 속에서 신뢰가 쌓이는 것이 매번 기적 같다.


Q. 스뮤에 출연중인 손사마(배우 손성민)가 직접 지은 자리주삼의 의미를 되짚어 보지 않을 수 없다. ‘관객과 창작자 모두에게 자리를 돌려 달라’는 의미, 참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아나) 방송 오프닝 때 마치 구호처럼 외치면서 시작한다. ‘자리~주삼~~~~’ 이렇게 (웃음). 굉장히 유치하게 보이지만 짧고 철학적이다. (맞다)(웃음) 스뮤가 창작뮤지컬을 좀 더 대중화하고 관객과의 다리로 작용하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 (창작프로젝트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열심히 작품을 만들었지만 올릴 곳이 없는 게 현실이다. 대중에게 평가받고 싶어도 평가받을 기회조차 없다. 어떻게 보면 앞으로 스뮤가 나아갈 방향성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맞다. 창작프로젝트를 기획한 것도 그런 측면에서다. 늘 고민하는 부분이다.


Q. 최근 대학로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변화들을 보며 여러모로 안타까웠다. 스뮤에서도 방송된 적이 있는 지하철 1호선이나 빨래의 전용관이었던 학전그린이 문을 닫은 것도 그렇고, 대학로도 어느 순간 흥행배우나 흥행될 만한 내용의 작품만 무대에 올리는 것 같다.
 
수진) ‘관객들 끌어 모으기’식의 공연은 전반적으로 공연의 질을 떨어뜨리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작품성만으로 공연되는 게 아니라 배우와 팬을 위한 공연을 하는 것이다. 그게 꼭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아쉬운 측면은 있다. (한 쪽에선 창작뮤지컬을 알리기 위해 이렇게나 노력하는데 한 쪽은 공연장마저 빼앗아가고, 괴리감이 크다.) 맞다. 그래도 우리가 공연장을 세울 순 없으니까(웃음)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선 최선을 다하려고 다들 노력한다.

ⓒ 스튜디오 뮤지컬


Q. 스뮤 블로그를 보면 청취자의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늘 고민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뮤지컬 상식이나 관람팁을 쉽게 설명해주며 어렵게만 느껴지는 뮤지컬 장벽을 허물고, 자체적으로 창작 뮤지컬 어워드를 실시해 흥미도 끌고. 특히 스뮤 팬클럽에 고아나가 일일이 답변 해주시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녹음실에 청취자들을 초대해 대화의 시간도 마련하고 정말 뮤지컬과 관객 사이의 간격을 좁히려는 노력이 눈에 보인다.
 
수진) 고아나와 손사마가 늘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참여율을 높일 수 있을까, 뮤지컬을 알릴 수 있을까’하고.
고아나) 녹음이 끝나면 꼭 배우들에게 사인을 받는 이유도 이런 측면에서다. 배우 사인이 새겨진 텀블러 같은 MD상품을 만들어 청취자들에게 선물한다든지 여러 가지 활용 방법을 모색 중이다.


Q. 2012년 3월에 처음 시작했으니 방송한 지 1년 조금 넘었다. 그동안 청취자들과 소통하며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
 
고아나) 뮤지컬에 관심이 없는 분들이 방송을 듣고 뮤지컬 마니아가 됐을 때가 가장 뿌듯하다. ‘아, 또 이 세계로 한 명 더 끌어들였구나’ (웃음) 물론 힘들 때도 있다. 아무래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고 활동하시는 청취자분들은 그만큼 우리에게 바라는 점도 많아진다. 그 바라는 바가 마치 요구사항처럼 다가올 때 가장 소통하기 힘들다.


Q. 그만큼 스뮤 청취자가 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겠다. 스뮤를 홍보하고 청취자를 늘리기 위해 더 신경쓰는 부분이 있나?
 
수진) 미약하다만 영상을 만들어 유투브에 올리려고 한다. 예를 들어 ‘날아라 박씨’를 쳤을 때 관련 영상이 나오면 즉각적인 홍보가 되고 서로 윈윈하는 측면이 있다. 창작프로젝트의 경우 아직도 고민 중이다. 방송을 듣지 않으면 모르니까 ‘어떻게 더 대중적으로 할 것인가’가 늘 고민이다. (창작프로젝트 1탄 ‘안녕’은 이번 의정부음악극페스티벌에서 당선이 돼서 무대화된다고 들었다. 스뮤의 영향이 클까) 글쎄(웃음), 누구 공인지 따지기보다 그냥 뿌듯하다. 비록 무대가 아니라 팟캐스트일지라도 어쨌든 종이로 소멸되지 않고 공연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Q. 스뮤에서 수익성이 창출되나.
 
수진) 그런 걸 생각하고 만든 게 아니기 때문에 다들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우리 방송으로 인해 창작뮤지컬 시장이 활성화되고, 우리 방송에 나왔던 공연이 흥행한다면 그게 곧 우리 수익이지 않을까? (웃음) (재능기부의 일종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 참여해주시는 배우들도 돈을 바라고 우리 방송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서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자는 마음으로 오기 때문에 다들 아낌없이 퍼주신다. 


Q. 앞으로 스뮤와 관련한 목표나 소원이 있나.
 
고아나) 10년은 하고 싶다. ‘버티는 거’ 그게 목표다. 스뮤를 할 때 제일 힘든 건 ‘힘든 것들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경제적인 건 물론이고 방송이 진행될수록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초심이 꺾일 것이 가장 염려스럽다. 우리가 즐겁기 위해 시작했으니까 끝까지 즐겁고 싶다. 같이 하는 친구들에게도 항상 물어본다. 즐겁니?
 

고아나는 차림새가 별로라며 울상이었지만 카메라를 대자 예쁜 미소로 화답한다. (수진은 끝까지 촬영을 거부했다.)


Q. 마지막으로 세계최초로 들리는 뮤지컬을 만든 ‘개척자’로서 20대에게 해줄 말이 있나.
 
고아나) 멋있게 말해야 하는데... 개척자라는 말은 좀 부끄럽다. 음... (한참 고민 끝에) 취업관련 강의를 나가보면 20대의 얼굴은 항상 그늘져있다. 당장 앞이 안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꿈을 잃어 있더라. 이해한다. 취업이 워낙 힘들고 일단 돈이 벌려야 그 다음에 꿈도 꿀 수 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꿈을 생각할 여력조차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게 너무 안타깝다. 앞으로 취업할 때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원래 뭘 하고 싶었지?’ 그걸 항상 잊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점을 찍는 삶이 있고 선을 긋는 삶’이 있는데, 힘들어도 일단 선을 그어 놓고 갔으면 좋겠다. ‘이거 해볼까, 저거 해볼까, 여기 돈 많이 준다니까 일로 가볼까 이직할까’ 그냥 이렇게 점만 찍다보면 이도저도 아닌 갈팡질팡한 삶을 살게 된다. 때문에 항상 불안하고 성격적으로 파괴적인 면이 생겨난다. 하지만 선을 긋는 삶을 살게 되면 내 신념은 바뀌지 않는다. 당장에 내가 원하는 일을 못하고 있고 돈이 없더라도 길이 있으니까 덜 불안하다. 나도 아나운서 그만두고 갑자기 경제적으로 순식간에 힘들어졌다. 결혼과 동시에 더 심해졌고, 앞으로 내가 뭘 해야 할지 막막했고, 사람들의 비웃음과 안 좋은 소문도 많이 났다. ‘방송국 관두더니 꼴좋다’ 라든지. 하지만 뮤지컬 하나는 놓지 않았었고, 그래서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힘들지만 불안하지 않고 즐겁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두 사람은 녹음이 한창이라 길게 인터뷰하지 못한 것을 내내 미안해 했다. 아쉬운 인터뷰가 끝나고 꼭 다시 만나자며 두 손을 꼭 잡아주는 고아나, 그의 따스함이 담긴 방송이 앞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 나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