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다. 지난 16일 인천시 업무보고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시간제 일자리’ 대신 ‘시간선택제 일자리’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정부는 출범 당시 고용률 70%를 목표로 내걸며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국민 생활이 나아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양질의 일자리가 아닌 비정규직만 양산할 것이라는 비판과 관련하여, 박 대통령은 “시간제 일자리라는 것이 좋게 어감이 와 닿지 않는다”며 “이번에 정부가 추진하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라는 것은 자신이 하루 종일이 아니더라도 몇 시간 일할 수 있도록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선택제 일자리’로 바꾸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 역시 “시간선택제 일자리 용어는 일을 선택하는 사람이 주체가 된 용어”라며 “시간제 일자리가 고용주가 주체가 돼 근로자를 시간제로 쓰는 것이었다면,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내가 보육 등의 다른 것을 하면서 주체가 돼 하는 당당한 것 아니겠는가”라고 주장했다. 이는 사실상 전혀 문제의 본질을 건드리지 못한 처사다.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다. ‘시간선택제 일자리’라는 말은 분명 노동자 기준의 단어이다. 그러나 용어만 바뀐다고 해서 노동자들에게 시간을 선택하고, 일자리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저절로 갖춰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맞닥뜨린 현실은 전혀 주체적이지 못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50%를 넘는다. 같은 노동을 하면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 임금의 절반가량밖에 받지 못하는 셈이다. 지난 5월 통계청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임금 격차 수준은 사상 최대치로 벌어져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시간을 선택하는’ 자유란 허울뿐이다. 또한 법적으로도 초과 근로수당, 휴일급여, 월차 사용 등의 비정규직의 노동환경에 대한 보장 역시 미비한 수준이다. 고용률 70% 달성과 같은 양적 성장은 노동자들의 삶과는 맞닿아 있지 않은 말뿐인 성장이다. 고용의 질과 노동환경 개선과 같은 문제를 무시한 채 비정규직 고용 확대를 통해 대선 공약을 이행하겠다는 약속은 무책임하다.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내용상으로 시간제 일자리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시간제 노동은 어감만 안 좋은 게 아니라, 처해 있는 현실 자체가 이미 매우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기업의 편의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 일자리에 뛰어드는 상황에서, 자신이 원하는 시간대를 선택해 편의에 의해 근로를 하겠다는 주체적인 노동자는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이름만 새로 짓는다고 창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