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해는 밝고 바람은 선선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맺는 약속에 적절한 때는 없겠지만, 이 날 토요일 오후 광통교는 구석구석 '로맨틱'했다. 

지난 7일, 청계천 광통교에서 김조광수, 김승환 커플의 결혼식이 열렸다. 특히 평소 동성애 관련 행사 등에서 찾아볼 수 없던 언론사의 취재진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에게도 이 결혼식은 특별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광통교 난간에는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는 많은 현수막이 걸렸다. 

김조광수·김승환 씨 결혼식 홍보 포스터가 난간에 붙어있다.



한국 기혼자 협회 현수막. 재치있는 문구로 동성결혼을 응원했다.




결혼식 준비를 지켜보는 이들은 2~30대가 대부분이었지만 더러 중장년층도 눈에 띄었다. ‘식장’에 들어서자 서포터즈 P씨가 청첩장을 건넸다. 청첩장을 열자 여느 부부의 모습처럼 행복한 김조광수, 김승환씨의 얼굴이 보였다. 객석 양쪽 끝에는 축의금함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 날 모인 축의금은 모두 ‘신나는 센터' 건립에 사용될 예정이다. 뒤쪽 가로수길에서는 결혼식을 꾸며줄 핑크색 풍선을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잔치'분위기에 걸맞는 칵테일도 판매되는 중이었다. 광통교 위에는 하얀 면장식과 레드카펫이 깔렸다. 결혼식에 왔다는 사실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서포터즈 A씨(19)와 조은별(23)씨는 객석으로 하객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A씨는 결혼식 전 캠페인 활동에 참가한 계기로 오늘 서포터즈에도 동참했다. 조은별씨는 "원래 김조광수 감독의 팬"이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행사 준비하는데 두 달 정도 걸렸다고 들었어요. 오늘은 오후 1시부터 서포터를 하는 중이에요.” 

지나가던 시민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다고 했다. “어르신들은 어떤 행사냐고 많이 여쭤보시더라구요. 쓴소리 하는 분도 계시고요. 어느 할아버지께서는 '누가 신부고 누가 신랑이냐'고 물어보기도 하셨어요. 그러려니 하는 분들도 많고, 재밌겠다고 기대하는 분들도 있구요.” 이들은 “벌써 많이 찾아주셔서 식이 시작되면 자리가 모자랄 것 같다”며 기대를 표했다.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팻말 중 눈길을 끌었던 문구.

 

광통교 뒤쪽 가로수 그늘에서 결혼식을 기다리던 세 명의 시민을 만났다. 이들도 결혼식을 SNS에서 미리 접하고 방문했다. A씨(16)는 “4시 정도에 도착했어요. 생각보다 사람들이 호응을 많이 해 주는것 같아서 좋아요.” 라며 성소수자를 둘러싼 차별이 조금씩 사라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B씨(17)는 “결혼식답게 분위기가 예쁘다"며 웃었다.

 

결혼식을 방문한 다정한 커플들도 많았다. 함께 결혼식에 온 ㄱ씨(26),ㄴ씨(22)와 이야기를 나눴다. ㄱ씨는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결혼식 참석이 남다르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드러내야 발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오게 되었어요.” ㄴ씨 역시 “응원을 해주는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참여 계기를 밝혔다.

ㄱ씨는 결혼식 진행에 크게 거부감이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 다행스러워 했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어서 걱정이 조금 되긴 하지만요. 아직까지는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요.” ㄱ씨에게 이날 모인 많은 취재진에 대해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기대를 표했다. 

ㄴ씨는 지난 6월 1일 홍대에서 열린 퀴어퍼레이드를 언급했다. “그 기사에 달린 댓글 역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어요. 욕을 먹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사람들 귀에 소식이 들어가고 눈에 띄이게 되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해요.” 

 

6시가 다가오자 객석은 순식간에 채워졌다. 성공회대 풍물패가 연주를 통해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 떠들썩한 분위기는 주말 저녁 청계천을 오가던 많은 시민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영화배우, 감독, 정치인 등 유명인사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더 고조되기도 했다. 결혼식 사회는 영화감독 김태용, 이해영, 변영주 씨 세 사람이 맡았다. 사회자들은 결혼식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려 많은 사람들이 결혼식을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축사를 맡은 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굳이 결혼하겠다는 두 사람을 축하한다”며 "앞으로 두 부부가 어려움을 겪을때 도와줄 것과 더 많은 동성커플이 결혼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변영주 감독은 이 날의 결혼식을 '세기의 결혼식'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관객들이 다 함께 열을 카운트다운 한 후, 주인공인 김조광수, 김승환씨가 등장했다. 두 사람은 상아색 예복을 입고 '몰래한 사랑'을 부르며 뮤지컬의 한 장면처럼 등장했다. 독특한 내래이션과 안무에는 연습한 흔적이 보였다.  이후에는 이 결혼식의 대학생 지지단이 김조광수와 김승환 씨의 성혼 선언문을 낭독했다. 두 사람은 끊임없이 함박웃음을 짓고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다른 손은 서로 꼭 잡은 채였다.

결혼식이 진행되던 도중 한 남성이 난입해 동성결혼 반대 피켓을 펼치고, 이해영 감독에게 오물을 던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김조광수, 김승환 부부는 관객들을 진정시키며 결혼식을 무사히 진행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혼식 도중에는 초대된 가수들이 공연을 펼쳤다. 모두 일어서서 다 함께 춤을 춰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신나는 분위기였다. 피로연 공연이 한창 진행되던 8시 경, 무대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춤을 추는 이들이 있었다. 함께 어울리고 싶어질 정도로 즐거운 풍경에 웃음이 나왔다. 상문·주영씨 커플과 친구 혜영씨였다. 세 사람은 이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대구에서 올라왔다. “두 분의 결혼을 축복해주고 싶어서 올라왔어요. 여섯시 부터 쭉 보고 있어요.” 상문씨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결혼식 참석을 위해 대구에서 온 상문·주영·혜영 씨.

 

이 결혼식의 또 다른 캐치프레이즈는 '대한민국이 로맨틱해 집니다'였다. 결혼식 하나로 온 나라를 낭만적으로 물들이겠다는 부부의 각오였다. 상문씨에게 이 결혼식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둘이 연인인데, 사랑에 대한 환상같은 게 사실 없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이 결혼식을 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어요. 무언가를 많이 잊고 살았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상문 씨는 결혼이라는 한 번의 이벤트로 사회적 인식이 크게 개선될 거라고 기대하진 않지만, 이러한 작은 움직임들이 꼭 필요하다고 답했다. “너무 축하드리고, 행복하게 잘 사셨으면 좋겠어요.” 

“누구나 행복할 권리를 당당하게 표현 해 주신 것 같아서 감사해요.” 혜영씨 역시 공개 동성결혼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이번 계기로 힘들게 사랑하고 있는 분들께 좋은 길이 열리길 바랍니다. 정말 축복합니다.”

서포터즈 P씨는 "네 엄마, 아빠가 누구냐며 공격적으로 대하던 호모포비아분들도 있었지만, 그 분들도 이번 결혼식이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라고 웃으며 소감을 밝혔다. 이 결혼이 모두에게 당연해질때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7일 광통교에는 누구의 결혼식에나 있을 축사와 웃음, 즐거운 사람들이 있었다. 김조광수와 김승환 부부는 '최선을 다해 행복해지는' 길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어느 멋진 날의 축제같았던 결혼식은 언젠가 모두에게 당연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