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번호 24601."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자베르 경관은 장발장을 이름이 아닌 죄수번호로  부른다. 본인의 이름이 '장발장'이라는 장발장의 대꾸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베르 경관은 그를 버젓이 '24601'이라고 부른다. 놀랍게도 이 풍경은 한국의 교실과 전혀 다르지 않다. 자베르 경감 역할은 교사가, 장발장 역할은 학생이 그리고 죄수번호 대신 출석번호를 대입하면 영락없는 교실의 풍경이다. "오늘이 며칠이지? 4일이야? 4번 일어나서 읽어봐.", "청소는 4번, 5번 둘이서 하도록." 한국의 교실에서는 매일같이 레미제라블 역할놀이가 반복된다.

ⓒ 영화 <레미제라블>과 영화의 패러디물인 <레스쿨제라블>의 한장면.


죄수번호를 연상하게 만드는 출석번호의 사용이 앞으로 교실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지난 15일 민주당 홍종학 의원은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학생 개개인을 고유 식별 번호로 지칭'하여 학생의 인격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교사가 학생의 이름을 대신해서 출석번호 사용을 금지하자는 것이다. 홍 의원은 한국의 학교처럼 출석번호로 학생들을 호명하는 풍속과 유사한 사례를 찾기 힘들며, 교육현장에서 새로운 사고의 실마리가 되기를 희망한다며 이번 개정안 발의의 배경을 트위터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개정이 발의되고 이틀 뒤 17일 충북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충북교총)는 이번 개정안에 대해 불쾌한 심정을 논평을 통해 공개했다. 충북교총은 이번 개정안이 "교육현장을 모르는 무지"에서 나왔으며, "교원의 사기를 저하하고 학생을 멀리하게"만든다고 주장했다. 심지어는 "학생 이름을 모르면 학생을 외면하게 하여 교원의 교육활동만 위축시킬 뿐 교원과 학생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개정안을 폐기할 것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주장을 이토록 당당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충격이다. 학생의 이름을 모르면 외면할 것이라는 이 대찬 협박은 두렵기까지 하다. 일부 교원들의 생각이 이정도로 이기적이고 야속하다면,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어야할 당위는 보다 명백해졌다.

교사라는 직업은 편의를 보장받기 위해 존재하는 직업이 아니다.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존재하는 직업군이다. 이름이 아니라 학교가 부여한 번호로 학생을 호명하는 것은 전적으로 교사가 자신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함이다. 교사의 편의를 보장하기 위해 학생에게 '사소한' 폭력을 가할 수는 당연히 없는 노릇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개정안은 학생의 권리를 보장받고 존중을 받기 위한 '실마리'라는 홍 의원의 바람은 분명 바람직해보인다. 교사의 편의를 위해 학생들이 장발장처럼 이름을 잃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하루에도 수백 개의 영어단어를 달달 암기해야 하는 학생들에 비하면, 얼굴을 보고 이름을 기억하는 일은 행복한 일이 아닐까. 아마 필자도 '교육현장을 모르는 무지'한 인간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