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크고 속눈썹이 긴 남자가 챙이 동그란 상아색 모자를 들어 보이며 안녕하세요라고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한국 나이로 서른, 시리아 나이로 스물아홉 살인 압둘 와합씨는 한국으로 유학 온 첫 번째이자 유일한 시리아인이다. 한 독립영화 상영회에서 '시리아 내전'에 대한 짧은 연설을 했던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흔쾌히 승낙해주었다. 내전을 겪고 있는 나라의 국민이자 유학생으로서 특별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압둘 와합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최초의 시리아인 유학생으로서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1, 내전과 관련해 그가 만든 단체를 소개하는 이야기는 #2에 실었다.

 

 


#1.
시리아인 in 한국

 

- 한국어를 무척 잘 한다. 한국에 온지 얼마나 된 건가.

한국어? 아니다. 아직 한참 멀었다. 한국어 너무 어렵다. 이곳에 온지는 37개월째다.


- 한국에 오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하지 않나. 고향 다마스커스에서 대학을 다닐 때, 같은 동네에 한국인 유학생 누나와 형들이 살았다. 아랍어를 잘 못하고 생활상의 도움도 필요하니까 도와줬었다. 계속 만나면서 많이 친해졌고, 그분들이 한국에 돌아갔을 때 무척 외로웠다. 그들을 보고 싶었다. 친구 따라 한국 온 셈이다.


- 그래도 이곳에 공부를 하러 온 것 아닌가. 무슨 공부를 하는지 궁금하다.

다마스커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가장 좋은 길은 본인이 만든 길이다라는 말을 떠올리면서, 새로운 길을 가보기로 결심했다. 변호사 일을 몇 개월 하고 나서 바로 한국에 왔던 또 다른 이유다. 한국에서 일하는 시리아인은 많지만 공부하는 사람은 지금도 나뿐이다. 동국대에서 법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고 한 학기 남았다. 박사과정도 수료할 생각이다.


- 한국에 오는 과정은 힘들지 않았나.

당연히 정말 힘들었다. 시리아와 한국은 지금까지 외교 관계가 수립되지 않았다. 그러니 대사관이 없어서, 한국 비자를 레바논까지 가서 받았다. 한 달 반 동안 요청하고, 의논하고, 이야기하느라 여러 번 왔다 갔다 했다. 무척 피곤한 일이었다.


- 한국에 와서 겪은 어려움에 대해서도 말해 달라.

물론 언어 문제가 제일 컸다. 한국 땅 밟고 나서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홍익대학교에서 10개월 한국어 과정을 수료했음에도 법대에 가니 일상적인 한국어와는 다른 전문용어들이 있어서 무척 힘들었다. 지식 배우는 것 이전에 언어 문제가 더 시급했다. 장학금 제도가 생각보다 많이 없어서, 장학금을 주는 학교를 찾는 것도 어려웠다. 고생 많이 했다.


- 문화적인 차이도 많이 느꼈을 것 같다.

입맛이 너무 다르다. 나는 무슬림이라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는데, 그러다 보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더라. 처음 6개월 동안 몸무게가 10kg이나 빠졌었다. KFC, 맥도날드, 롯데리아를 전전했다. 다른 사람이랑 밥 먹을 일이 있으면 식사를 주문하고 먹지는 못해서 밥값이 두 배씩 들기도 했다. 지금은 익숙해져서 돼지고기 빼고는 잘 먹는다. 또 금요일 점심마다 이태원 이슬람 사원에 간다. 시리아 사람은 아니지만 아랍인들이 많아서 함께 기도하고, 기도 끝나면 근처에 아랍식당에 가서 함께 밥을 먹는다.


- 직접적으로 묻겠다. 한국 어떤가.

너무 좋다. 정말이다. 한국을 좋아하니까 한국에 온 것 아니겠는가. 나와 여러 면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은 마음이 좀 빨리빨리이긴 하지만 대부분 착하다. 예전 친구들도 다시 만났고 새로운 분들에게서 공부나 생활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먹지 못하는 음식을 잘못 주문했을 때 값 안 내도 되니 다른 곳에 가보라며 알려주시던 아주머니도 있었고, 가려는 장소를 못 찾아 헤매고 있을 때 1시간 넘게 같이 걸으며 찾아주셨던 분도 있다. 그분과는 지금도 연락한다. 부산에는 내가 한국 엄마라고 부르는 분도 계신다. 친구의 어머니이신데, “아들아, 잘 지내고 있어? 아들아, 날씨 추우니 따뜻하게 입고 다녀요라는 문자를 가끔 남겨주신다. 너무나 좋은 분들이다.


- 무엇 때문에 바쁜가?

아무래도 내가 신기한 사람이니 여기저기서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 블로그에 유학 생활을 쭉 기록하고 있었는데, 그걸 보고 시리아의 신문사에서 매달 한 번씩의 칼럼 기고를 부탁해왔다. 고향 사람들에게 들으니 한국 유학 생활을 적은 내 칼럼이 인기가 많다더라. 알자지라 TV에서도 취재를 왔었고, 한 달 전에는 시리아 관련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다. 작년 4TV조선에서 유학생으로서의 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기도 했다.

 

#2. 내전을 겪는 국민, 그리고 ‘Help Syria’


 


- 현재 시리아는 어떤 상황인가.

너무 답답하고 기분이 안 좋아서 우리나라 얘기는 입 밖으로 잘 안 나온다. 현재 입국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면서 모은 돈을 시리아에 전달하기 위해 들어가려고 했었다. 스태프나 의사들도 같이 가주겠다고 했는데 비행기를 못 탔다. 가족들과 연락도 잘 되지 않는다. 나는 매일 연락하지만 응답이 없어서 다시 시도하다가 그치고 만다. 한국 처음 왔던 해에 고향에 한 번 갔다 온 게 전부다. 친구들, 동생들, 가족들 모두 보고 싶은데 어쩔 수가 없다. 언제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계속 기다리고 있다. 조금이라도 안전해지면 바로 갈 것이다.

 

-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말하기가 더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 얘기가 정말 어렵다.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쉽게 얘기하면, 좋게 살고 싶으니까 시위가 일어났다. 정부는 나쁘게 대답했다. 말로 하지 않고 무기로 대답했다. 10~11개월 동안 계속 시위하다가,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사람들은 다 화내고, 싸우고 있었다. 반군과 정부가 싸우고 있으니 중간에 다른 국민들도 싸우지 않지만 고생했다. 신원이 확인된 바로는 17만 명이 죽었다고 며칠 전에 발표 났다. 그러나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10만 명이 넘고, 다친 사람들은 100만 명, 아이들은 12천 명이나 죽었다. 현재 시리아에 안전한 곳은 없다. 음식도 없고, 의약품도 없다.

 

- 국제사회에서는 지원을 받고 있는 편인가?

UN이나 UNICEF 등 국제기구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시리아 안에만 600만 명이 넘는 난민들이 있다. 그런데 시리아 안에는 무서워서 못 들어가는 건지, 도와주고 싶지 않아서인지 서포트(support)를 해주지 않는다. 국제 사회에서는 다른 나라 사람들, 특히 요르단 사람들만 도와준다. 시리아의 어떤 지역에는 한 달 동안 음식 배급이 하나도 되지 않기도 한다. 아주 위험한 상황이다.

 

- 현재 시리아 사태와 관련해 하고 있는 활동이 있다고 들었다.

뭐라도 하고 싶었다. 특히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시리아 안으로 직접 도움을 보내겠다는 결심을 하고 Help Syria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 몇몇에게 연락해서 함께 하겠느냐고 물어봤다. 학교 교수님, 변호사, 회사원, 선생님, 기자, 사업가 등등 여러 사람들이 모였다. 현재 함께 활동하는 20명의 멤버 중에 아랍인은 2, 나와 요르단 학생이다. 나머지는 모두 한국인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도와주겠다고 나서서 무척 기뻤다. 예상치 못했던 분들이다.
 

- Help Syria는 구체적으로 어떤 단체인가?

나 같은 사람이 시리아 문제에 대한 기금 마련에 몰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돈은 물론 중요하지만, 문제를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국 사람들은 시리아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뉴스에 아주 짧게, 짧게 나오니까. 이런 문제가 있다고 알리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단체다. 지난 616일 광화문에서 Help Syria 기자회견을 하고, 워크숍을 시작했다. 매주 대학로, 인천, 부산 해운대, 이슬람 서원 앞 등에서 캠페인 같은 행사를 진행한다. 지난 103일 개천절에는 이슬람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면서 경매를 하고, 스피치도 듣는 행사도 계획했다. 꾸준히 활동하고 있으니 희망이 있다. 새롭게 관심 갖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다. 일단 알고 있으니, 조금 더 관심이 생기면 앞으로 우리를 도와줄 수 있을 테니까.

 

- 한국 사람들이 시리아 사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을 것 같다.

한국 사람들에게서 기분 나빴던 적은 거의 없지만, 한국 밖의 문제에 대해선 관심 없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좀 심란했다. 국제사회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우리는 나라를 선택해서 태어났나? 아니다. 우리는 그냥 같은 인간이다. 얼굴만 다르고 문화도 차이는 있지만 근원은 거의 비슷하다. 다른 나라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위해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다.


한국 친구들이 "마흔 살 아니냐"며 자신을 놀린다던 압둘 와합씨는, 기자가 "스물일곱으로 보인다"고 말하자 처음이에요, 이런 얘기”라며 웃었다. 그는 한국에 애정을 지닌 청년이자, 각종 사회단체 행사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이슬람을 주제로 특강도 하고 있는 청년 활동가다. 시리아 이야기를 꺼내며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고 또박또박 말하는 그는 국제변호사라는 꿈을 차근차근 실현해가고 있었다. 시리아와 한국의 외교관계에 다리(bridge) 역할을 하고 싶다는 압둘 와합 씨, 앞으로 그의 행보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