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청정 비빔밥은 청년들이 직접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만드는 네트워크 사업이다. 함께 어울려 나눠먹는 ‘비빔밥’처럼, 서로 다른 서울의 청년들이 모여 잘 비벼진 맛난 청년 정책을 만들고 싶다는 짱짱한 포부를 밝힌 이 프로젝트는 약 6개월간 다양한 분야에서의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아이디어들을 마련한다. 그 결과물은 오는 11월 ‘청년종합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되고 내년 중에 서울시에서 정식 정책으로 현실화할 예정이다. 이 매력적인 프로젝트를 꾸려가는 이들을 고함20에서 만나보았다.



현재 청정비빔밥에는 약 200여명의 청년들이 정책위원이라는 이름으로 13개의 정책 테이블을 꾸려 활동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청정비빔밥의 알파요 오메가는 곧 이들 청년정책위원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이들은 어떤 비범한 문제의식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을까. 주거테이블의 조은비씨(21), 노동테이블의 정진일씨(24), 보건테이블의 윤정주씨(30)를 만나 한국사회 청년문제의 소극적 대상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 해결사로 기꺼이 나서게 된 과정을 들어보았다.

조은비 청년정책위원 ⓒ고함20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도 모이면 할 수 있어요.” - 주거 테이블의 조은비 청년정책위원

서울에서 혼자 산 지 3년째라는 대학생 조은비씨에게 있어서 주거 문제는 곧 삶의 문제였다. "청년비빔밥에 참여했을 당시에 저는 고시텔에서 살고 있었어요. 그때 제가 휴학생이었기 때문에 학교 기숙사에 들어갈 수 없었고 학사에서도 살 수 없었거든요. 그래서 결국 고시텔을 택한 건데, 정말 지내기 힘들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대학생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청년비빔밥을 발견하게 되었고, 제가 지금 이 주거 문제의 당사자고 저한테 정말 급한 문제니까 해결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됐어요."

현재 주거 테이블은 의제에 따라 주거 환경 개선 테이블, 주거 협동조합 테이블, 주거비 인하 테이블로 또다시 나뉘어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은비 씨는 그중 주거비 인하 테이블에서 활동하며 주택바우처제도와 주거컨설턴트제도에 대해 논의중이라고. "주택바우처제도는 2010년부터 시작해서 올해 전면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정책인데, 자기가 원하는 지역에 원하는 집을 얻을 때 정부에서 월 임대료를 지원해주는 거예요. 공공임대주택이나 행복주택같은 다른 주거정책의 경우에는 단지 그런 정책의 혜택을 받는다는 것 자체로 사회적 낙인이 찍혀요. 그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중산층으로 발돋움하지 못하고, 해당 주거지역도 슬럼화가 되는거죠. 일단 주거 문제가 해소된다고 해도 소셜믹스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거예요. 저희 테이블은 그 대안으로 주택바우처제도에 주목하고 있는거죠. 다음으로 주거컨설턴트제도는 저희가 새롭게 제시하는 정책안인데, 비싼 중개료를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청년들에게 주거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아서 살 집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거죠. 그런데 아직 고민해야 할 부분들이 적지 않아요. 기존 공인중개사와 주거컨설턴트 간 차별화 문제도 있고, 또 공인중개사들이 보다 자발적으로 주거컨설팅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유인책 마련 문제도 있고요. 앞으로는 그런 문제들을 차근차근 해결해보려고 해요."

난생 처음으로 정책 관련 문제를 다루다보니 쉽지만은 않은 듯 했다. "정책 아이디어는 정말 좋은데, 그걸 구체화하는 과정이 힘들어요. 예를 들어 정책 대상을 누구로 선정할 것인지, 무엇을 기준으로 그 사람들에게 복지를 제공할 것인지, 이런 기준을 만드는 게 애매할 때가 있어요. 물론 저희 쪽에서 요청하면 서울시 주무관 등의 조언이나 자문을 받을 수 있기는 해서 주거테이블 코디네이터에게 얘긴 해둔 상태예요. 그래도 그와 별개로 저희도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도 은비 씨는 청정비빔밥 활동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고 했다. "저 혼자만 두고 보면, 아무런 빽도 없고 직접 정책을 만들 힘도 없는 청년 한 명에 불과하잖아요. 주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고, 답도 안 나오고. 그런데 저와 비슷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여러 명 모이니까, 달라지더라고요.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고. 혼자선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모이면 할 수 있다는, 그런 점이 참 좋아요."

은비 씨는 자신뿐만 아니라 주거 문제로 힘들어하는 청년들이 이 팍팍한 세상에 마냥 휩쓸려가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요즘 청년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생각해요.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사회구조에 쓸려갈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나갈 것인지. 저는 그중 후자를 택한 거고요. 청정비빔밥 활동에서도 그렇고, 뜻이 맞는 사람은 분명히 있어요. 혼자서 고민하는 것과 같이 고민하는 건 달라요. 힘을 합쳤으면 좋겠어요."

 

정진일 청년정책위원 ⓒ고함20

 

“청정비빔밥의 청년 문제 해결의 장(場)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 노동 테이블의 정진일 청년정책위원

정진일씨(24)의 관심사는 특별하다. 20대 남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는 노동테이블 내에서  2,30대 경력단절여성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고 있다. "'경력단절여성등의경제활동촉진법'이라는 법률이 있어요. 경력단절여성들에게 직업훈련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그를 통해 재취업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게 주요 내용이죠. 그런데 그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제과제빵, 바리스타, 소믈리에같은 식음료 서비스 관련 기술을 가르치는 내용이 대부분이에요. 2,30대 경력단절여성들은 일반 회사를 다니다가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거나 특정 직무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회사에서 밀려나는 바람에 경력단절문제를 겪게 된 경우가 많은데, 그런 직업프로그램 내용은 이전의 커리어와 맞지 않는 거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력단절여성들이 기존의 커리어를 되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직업프로그램의 내용을 다양화해야 해요.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회사와 연계하는 등의 방식으로 취업 인프라를 넓혀야 할 필요도 있고요."

진일씨가 원래부터 이런 노동 관련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었다. 청정비빔밥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평소 자주 둘러봤던 서울시청 홈페이지의 홍보 게시글이었다. "청정비빔밥 취지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참 좋은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부터 민관 협력에 관심이 있었거든요. 정부 사업에 행정관료만 참여하는 게 아니라 민간의 의견을 듣고 수렴하는 것,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노동 테이블은 현재 청정비빔밥의 13개 테이블 중 가장 인원이 많은 곳 중 하나다. 그만큼 적지 않은 청년들이 노동 문제의 심각성에 주목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많은 청년정책위원들이 자신의 문제의식을 노동 테이블 모임에서 제대로 어필할 수 있을까. "구성원 간 소통 자체는 잘 이루어지고 있어요. 본인의 관심사가 아니더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관련 자료도 찾아주고요. 그런데 테이블 인원이 20명 정도 되는데다가 대학생뿐만 아니라 직장인 분들도 많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일정에 맞춰서 모임 시간대를 정하기 힘들긴 해요. 그래서 한번 모임을 가지면 20명 중에 서 한 10명 정도만 참여하세요. 그때그때마다 참석하는 분들도 다 다르고요. 또 구성원들이 많다보니까 아이디어가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 청정비빔밥 프로젝트 기한이 올해 12월까지기 때문에 모든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정책안으로 발전시키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조율 과정을 거쳐서 지금은 4개의 아이디어를 놓고 각 아이디어 별로 테이블 내에서 다시 인원을 나눠서 진행하고 있어요. 방금 제가 말씀드린 경력단절여성문제의 경우에는 저를 포함해서 서너 명이 진행하고 있고요."
 
그래도 진일 씨가 청정비빔밥에 거는 기대는 매우 크다. "전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시민을 통치하는 게 아니라 서로 힘을 합쳐서 서울시를 꾸려나간다는 점에서 청정비빔밥이 ‘협치’의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해요. 지속적으로 이런 프로젝트가 유지되기를 정말 바라요. 그래서 올해 청정비빔밥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아주 구체적이고 당장 시행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질 필요는 없고, 서울시 측에서 저희 아이디어가 정말 좋고, 조금 더 다듬어서 가까운 시일 내에 실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정도의 결과물을 냈으면 좋겠어요."

또한 진일 씨는 청정비빔밥이 청년문제의 근본적 원인인 사회 구조를 다 함께 협력해서 바꿀 수 있는 장(場)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러한 장에서 누구보다 문제 당사자들인 청년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란다고 했다. "막연하게 청년문제가 시급하다,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우리가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청정비빔밥이 그런 장의 시초가 될 수 있다고 봐요. 또 문제의 당사자들인 청년들이 더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섰으면 좋겠어요. 노동 테이블의 경우에는 직장인 분들이 많은데, 그 분들은 이미 개인적으로는 취업 문제가 해결됐는데도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관심을 보이세요. 업무능력과 관련 없는 사항을 묻는 이력서 양식을 바꿔야 한다든지, 중소기업 청년 인턴제의 문제를 지적한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정작 취업당사자들인 주변 학생들을 보면 자신의 취업만 생각하고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 같아요. 자신만 생각할 게 아니라 취업 문제 전체를 돌아보고 문제 해결에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윤정주 청년정책위원 ⓒ고함20

 

"청년들이 열정뿐만 아니라 냉철함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보건테이블의 윤정주 청년정책위원

1인창조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윤정주 씨(30)는 과거 근무했던 광고대행사에서 병원 홍보마케팅 일을 하면서 보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청년 문제하면 취업 문제를 주로 떠올리는데, 건강 문제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보건 정책이 노인층에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수립되는데, 사실 젊었을 때부터 꾸준히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예방 정책도 필요하거든요. 또 많은 청년들이 건강 문제를 등한시하고 있는데, 그들을 위한 보건 정책을 마련함으로써 청년들이 자신의 건강이 관심을 가지게 하는 효과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현재 정주 씨는 보건테이블에서 청년들의 건강 실태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수집하고 있다. "청년들의 건강 문제 중에서도 특히 성병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성문화가 많이 바뀌면서 성병을 예방해야 할 필요성도 커졌거든요. 그래서 보건복지부나 지역사회의 통계자료도 찾아보고, 자체적으로도 설문조사를 실시해서 샘플링작업을 하고 있어요."

정주 씨는 청년들을 위한 보건 정책안 마련을 계기로 정부에서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청년 문제에 접근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많은 청년들이 당장 먹고 살기도 바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년 문제 대안이 취업이나 주거 분야에만 치우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길게 보면 그들의 건강이나 놀 거리도 중요한 문제들이거든요. 그런 지점들을 놓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정책적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선 정부와 청년들 간 소통이 중요하겠죠. 그런 점에서 청정비빔밥은 의미 있는 사업이고요."

한편 정주 씨는 청년들을 향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지금까지 청정비빔밥 활동을 하면서 만난 청년들을 보면, 좋은 정책을 만들고자 하는 의욕이 정말 커요. 그런데 그에 비해 꾸준히 활동에 참여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원래 청정비빔밥 청년정책위원들이 200명 정도 되는데, 그중에서 실제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100명 정도예요. 청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열정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냉철한 자세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장기적인 안목에서 전략을 세우고 어떻게 해야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 꾸준히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또 그래야만 청정비빔밥 프로젝트도 일시적인 부흥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