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만남과 이별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습니다. 태어나면서 처음 겪은 세상과의 만남 역시 모태와의 이별의 순간도 함께였으니, 만남과 이별은 사람에게 숙명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만남보다는 이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것과의 만남은 언제나 설레는 것일테지만, 만남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이별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겐 각자의 이별이 있고, 각각의 이별은 모두 눈송이처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고함20의 새로운 연재인 <이 별에서 이별까지>에서는 20대라면 겪었을 법한, 겪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겪을 이별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별에서 사는 당신의 이별은 어떻습니까?

내 나이 바야흐로 향년 24세, 그대와 이별 한지 어느덧 5년이 지났소. 그대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는 건 이번이 처음이구려. 사실 그대 곁에 있으며 맘속으로 그려본 서울은 나에게 설렘으로 다가왔던 건 사실이오. 하지만 처음 서울에게 갔을 땐 그대 품에 20년간 익숙해져버린 소인을 서울은 또 한명의 삼천포로 날 만들었소.

처음 간 홍대클럽에서 쭈뼛쭈뼛 서서 헤매다 문지기한테 퇴짜도 맞아보고 서울깍쟁이 할멈에게 방 구하다 사기 당해 보증금 100만원을 날려먹기도 했소. 또한 소인이 사투리를 쓰면 사람들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웃기다고 다시 해보라는 소리를 들은 후로 소인은 한동안 의도치 않게 벙어리로 지내기도 했소. 그때 소인 인생에서 처음으로 무형의 누군가, 바로 당신을 그리워하고 이별하는 젊음의 생채기를 가졌던 것 같소.

ⓒ응답하라1994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애석하게도 처음 만난 연인들이 서로 알아가며 다투는 시간을 가지듯 서울에서의 하루하루가 행복했소. 촌스럽고 순진했던 그대와는 달리 서울은 짙은 아이라인의 찬란함으로 나의 밤을 황홀케 해주었소. 그러고 나서 소인은 그대와 보낸 20년의 세월을 마치 성에가 사라지듯 잊기 시작한 것 같소.

하지만 문득 서울의 거친 밤공기에 취해 거리를 걷다보면 그대의 촌스럽고 어설픈 숨결이 그리워지던 때가 있었소. 꽉 짜인 서울말의 속박에서 벗어나 찰진 욕으로 버무려진 사투리가 그리워지기도 했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검은 하늘이 아닌 은빛 하늘로 수놓아진 그대가 그리워지기도 했소. 그댈 떠나보낸 건 소인이나 때론 로드뷰로 그대의 흔적을 속속들이 이곳에서 들여다보는 스스로가 찌질해 보이기도 했소. 어쨌거나 분명한 사실은 지금 소인은 그대와 이별했지만 그대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 같소.
 

ⓒ로드뷰로 본 경주 첨성대길


그래서 올해가 끝나기 전 그대를 만나러 가려하오. 서울에서의 바쁜 삶에 치여 그대를 자주 만나러 가지는 못하지만 서울을 떠나 버스에 몸을 싣고 그대 품안으로 들어가는 그 느낌은 아아, 달콤한 불륜이 있다면 이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오. 언제나처럼 그댈 떠나보낸 나를 아무 말 없이 받아주는 그대에게, 이별 앞에서 한층 더 성숙함을 보여주는 그대에게 고맙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하고 싶소. 부디 잘게시게. 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