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권서현(22) 씨는 한 달에 한두 번 대형서점을 찾는다. 가끔 책을 구매할 때면 항상 맨 밑에 놓인 책을 집어 든다. “위에 놓인 책은 사람들이 많이 만져서 더럽거나 책장이 구겨진 경우가 많아서 자연스레 가장 아래에 있는 책을 사게 돼요.”

대형서점들이 일부 ‘민폐 고객’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주로 책을 살펴본다는 이유로 책을 훼손하고는 구매하지 않는 고객이나 통로를 점거하고 장시간 독서하는 고객이다. 대형서점이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곳’ 이상의 역할을 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현재 교보문고 등의 대형서점은 서점 내에 독서공간을 만들어 책 읽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고객을 조금 더 오래 붙잡아 두려는 마케팅의 일종이다.

대형서점에서 책을 읽고 있는 고객들 ⓒ아시아경제


종로구에 위치한 교보문고 광화문점. 정치‧사회 분야의 신간도서를 진열해 놓은 코너에 손때가 묻은 책이 눈에 띈다. 책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일부 책의 띠지가 찢어진 경우도 있었고, 간혹 표지나 책날개가 접혔던 흔적이 역력한 책도 있었다. 이 때문인지 권 씨처럼 아래에 놓인 책을 꼼꼼히 살펴보고 구매하는 고객들이 적지 않았다.

손때가 묻거나 책이 접히는 사례는 약과다. 음료를 들고 책을 살펴보다가 음료를 흘리는 경우나 책을 읽다 밑줄을 긋는 경우도 있다. 구매 전에 완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화책이나 잡지 등에 씌워져 있는 비닐 커버를 마음대로 뜯어 읽고 가는 고객도 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 직원 A씨는 “실수로 훼손한 책을 구매하는 고객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고객이 더 많다”며 “책을 꼼꼼히 살펴보고 구매하는 것을 지적할 수는 없지만 살펴볼 때에 조금 더 주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점을 독서실처럼 이용하는 행태도 문제다.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 전문서적 코너 통로나 조금이라도 여유 공간이 있는 곳에서는 장시간 책을 읽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서점 내에 고객들이 독서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기는 하지만, 책을 읽으려는 고객이 많다 보니 자리가 항상 모자란다. 같은 이유로 일부 고객은 상대적으로 휴식 공간이 많은 어린이 도서 코너를 점령하기도 한다.

‘장시간 독서족’ 가운데는 책의 일부분을 촬영하는 고객도 있다. 주로 값은 비싸지만 필요한 부분은 한정된 여행도서나 전공도서가 대상이다. 도서 가운데 필요한 부분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식이다. 여행도서나 전공도서가 아니더라도 책을 읽다가 인상 깊은 구절을 촬영하는 경우도 있다.

서점 측은 저작권 문제를 고려해 책 촬영에 대해서는 주의를 준다. 이날 기자가 서점을 둘러본 2시간 동안만 6명의 고객이 직원으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하지만 책을 촬영하는 모든 고객을 다 감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직원의 발길이 잦지 않은 곳에서 책을 촬영하는 고객도 많기 때문이다. 교보문고 광화문점 직원 B 씨는 “촬영 중인 고객이 보일 때마다 촬영을 삼가달라고 말씀드리지만 그때뿐”이라며 “직원이 돌아가고 나면 다시 촬영을 하는 고객들도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