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의 여지도 있고, 애매함의 소지도 있지만 어쨌든 현재 표준어의 정의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 정의는 일반 사람들에게서 너무도 멀리에 있다. 나는 현대 서울에 살고 있고 꽤나 교양도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너무도 익숙하게 쓰는 말이 표준어가 아니기 일쑤다. 아, 이런. 난 교양 따위 없는 잉여인간일 뿐이란 말인가! 그러나, 아무리 ‘바른말 고운말’의 아나운서들이 맞는 말을 가르쳐줘도 내가 쓰는 말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바라’와 ‘바래’의 문제이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TV예능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무한도전’을 통해 이 문제는 수면 위로 올랐다. 방영 초기, 무한도전 팀의 멤버인 정형돈과 하하가 어색한 사이인 것에서 착안된 ‘빨리 친해지길 바래’ 특집 등을 통해 ‘친해지길 바래’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 것이다. 워낙에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무한도전 멤버들이 이것을 말할 때 들려주는 특유의 어투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친해지길 바래’가 유명해진만큼, 그 말 자체가 소유한 어정쩡함의 크기는 더욱 늘어만 갔다. 사실 ‘바래’는 표준어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바래’라는 말은 ‘빛이나 색 등이 바래다’는 표현에 이용되는 것이고, ‘바라다’가 어원인 해당 어휘는 ‘친해지길 바라’로 사용하는 것이 표준어에 부합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시험 잘 보길 바라’, ‘또 보길 바라’와 같이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어색하기만 하다. 혹자는 심지어 ‘바라’라는 말이 너무 어색해서 무언가 외계어스러운 느낌을 준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바라’라는 표현이 어정쩡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다. 이 표현의 어색함을 극복하기 위했던 것인지, 사람들이 스스로 이 어휘에 대한 문어체와 구어체의 분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를테면 미니홈피의 방명록 등에 글을 쓸 때는 ‘바라’라는 표현을 쓰지만, 그것을 읽을 때는 ‘바래’라고 읽는다. 이러한 현상은 대중가요 속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최근 발표된 노래 두 곡에서도 이러한 분리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5인조 걸그룹 포미닛의 신곡 ‘HuH’에는 ‘자꾸 같은 걸 바래’, ‘같은 모습만 바래’와 같은 표현들이 반복적으로 가사에 등장한다. 7인조 신인 보이밴드 인피니트의 ‘다시 돌아와’는 어떤가. ‘날 받아주길 바래’라는 표현이 가사에 등장하고 있다. TV에서 방영되는 가요프로그램들을 보면 그 어색함에 치를 떨 수밖에 없는데, 바로 자막 처리된 두 곡의 가사는 분명히 ‘바라’라는 표준어를 표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수들은 당당하게 ‘바래’라는 음운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해 발표된 아이돌 락밴드 FT아일랜드의 노래 ‘바래’는 그 제목부터 실상 ‘비표준어’였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언어 사용의 모순이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일종의 불편함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2000년 발표된 유승준의 ‘찾길 바래’ 때만 해도 ‘바래’라는 표현을 워낙에 다들 당연하게 여겼었고, 그것이 표준어가 아니라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자막이라도 ‘바라’로 표기하는 우스운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무한도전을 거치며 이 표현의 비적합성(?)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바라’라는 표현을 매우 어색하게 생각하면서도, ‘바래’를 표준어로 바로잡기 위해 키보드의 백스페이스 키에 손을 갖다 댄다. 친구들의 미니홈피를 돌아다니면서 ‘시험이 빨리 끝나길 바라’, ‘좋은 사람 만나길 바라’와 같은 표현을 친구들이 쓰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손발은 물론 심장까지 오글거린다. 그러나 아직까지 현실에서 ‘또 보길 바라’ 라고 ‘바라’라는 발음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바라’와 ‘바래’에 관한 문답을 보면 문법 규정에 ‘바라’가 일치하는 것이므로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는 단호한 답변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언어의 문법이 언어의 실제 사용 이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언어 사용 습관을 정리한 것이 문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언어는 애초에 통시적인 것이고 언제나 변화하는 것이다. 문법 규칙에 맞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사용이 이미 어느 정도 굳어진 것이라면, 굳이 바꾸려고 하기 보다는 예외 조항을 둘 수도 있는 일이다. 유사한 예로, 과거 표준어가 ‘-읍니다’였지만, 사람들이 ‘-습니다’로 발음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여 표준어 규정이 변경된 사례도 있다.

지금의 표준어인 ‘바라’가 매우 어색하고, 그 말을 쓰지 않고 심지어 쓰기 싫지만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꽤나 교양 있는 사람이다. 교양 있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써야 한다고 언어 규칙으로 강제하기보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자연스러운 말을 변화하는 언어의 모습으로 보고 그대로 인정해주는 아량 넓은 표준어는 내 상상 속에서만 존재 가능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