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4일, 서울에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오후 일곱 시 무렵, 세월호 참사 100일을 추모하기 위한 문화제가 열릴 시간이 되자 신기하게도 비는 잠시 멈추어 주었다. 공기는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하늘 밑, 시청광장으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젊은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부, 학교 보충수업을 끝내고 온 듯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들, 할머니와 할아버지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광장을 채우기 시작했다. 노란 바람개비와 종이배를 들고 그것으로 장난을 치고 있는 아기들의 모습은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이따금씩 돋보이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누구 하나 어수선한 사람들은 없었다. 어느덧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비에 젖은 땅에 옷이 젖는 것에 대해선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 자리에 앉아서 움직이지 않은 채였다. 차례대로 음악 공연, 시 낭송 등이 이어졌다. 많은 시인들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시를 낭송하였고, 그들의 목소리가 고조되자 분위기도 덩달아 고조되었다. 많은 시민들이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냈다.

다양한 공연들이 이어지는 와중, 안산 분향소에서부터 행진을 시작해서 하룻동안 걸어 온 유가족들과 안산 시민 2천여명이 서울역에 다다랐다는 안내가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서울역에서 또 2천여명의 시민들이 합류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들이 곧 광장으로 올 것이니, 모두 함께 광장에 앉을 수 있도록 자리 간격을 조금씩 조절해달라는 부탁이 이어졌다. 아무도 그것에 대해 불편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모두 말은 없어도 그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몇 걸음씩 뒤로 물러나 자리를 이동해주었다.

공연의 중간 중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사진이 슬라이드로 지나가자 광장에는 울음을 삼키고 흐느끼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고요한 슬픔이었다. 여덟 시가 되어가자 해가 지기 시작했다. 어슴푸레함을 넘어서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 밑에서 사람들은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깬 것은 안산에서부터 걸어 온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광장에 다다랐다는 말이었다. 그들이 천천히 입장하기 시작하자 박수소리만이 조용히 울려퍼졌다. 별다른 말은 없었다. 딱히 응원의 말이나 격려의 말이 없어도 조금이나마 함께 그들의 무게를 나누고 싶어하는 공감과 슬픔의 마음이 느껴졌다.

 

여덟시 반 무렵 유가족들과 합류한 시민들의 입장이 끝났고, 무대에는 가수 김장훈 씨가 올라왔다, 그는 자신 역시 세월호와 유족들을 절대 잊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며, 100일이 지나면 101일이니, 그것을 1일로 생각하며 다시 기억하기 시작할 것이라 자신의 느낌을 밝혔다. “박수 치는 것은 죄가 아니에요. 박수 부탁드립니다.” 하고 그는 노래를 시작하기에 앞서 박수를 부탁하는 동시에 사람들을 위로했다. 그리고 자신의 노래가 끝난 후에는 사고로 희생된 보미 양의 목소리를 더해 ‘거위의 꿈’ 듀엣을 선보였다. “보미 양이 이렇게나 큰 무대에서 노래를 했어요.” 그는 눈물을 삼키며 노래를 마치고 말을 이어나갔다. 가수가 되고 싶었다는 보미 양의 꿈이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지금에야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그는 아쉽고 슬픈 마음을 전했다. 그 감동적인 무대에 사람들도 박수와 눈물을 보였다.

이어서 김장훈 씨는 유가족들에 대한 명예훼손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미 많이 지쳐 계신 분들이에요. 우는 것만으로도 지치신 분들이에요. 그런데 오죽하면 이렇게 다들 나오셨겠어요.” 말을 하는 내내 그는 울음을 참느라고 조금 힘들어 보였다. 그들의 목소리가 담긴, 나아가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기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가 무대에서 내려가고 나서, 몇몇 시 낭송과 낭송극, 가수 이승환 씨의 무대도 이어졌다. 모두 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눔으로써 슬픔을 공유하고, 동시에 그것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결연함이 느껴지는 무대였다.

마지막으로 유가족들의 발언이 있었다. 유가족 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병권 씨는 "사고의 원인과 그 과정에서 숨겨진 것들을 정확히 밝혀내야 하며, 진상규명을 통해 책임자를 처벌하고 마지막으로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슬픔으로 인해 많이 지쳐있었음이 분명한데도 또렷한 목소리로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단순히 슬퍼하는 것을 넘어서, 다시는 그런 슬픔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그의 의지였을까. 마지막으로 그는 구호를 외치겠으니 시민들에게 뒷부분의 ‘깨어나라’를 함께 해 달라고 부탁했다. “국회의원이여, 깨어나라! 청와대여, 깨어나라! 국민이여, 깨어나라!” 이것이 그가 외친 구호 전부였다.

문화제가 다 끝난 시간은 열시 반 무렵이었다. 시민들과 유가족들은 청와대가 바라보이는 광화문 쪽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비는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다들 우산과 우비 등을 챙기고 앉았던 자리를 추스렸다. 모두는 그렇게 함께 다시 기억을 아로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