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구조조정의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군대를 다녀오니 소속 학과가 사라져 있었다’, ‘휴학을 하고 돌아오니 전혀 다른 학과 소속이 되어 있었다’ 같은 이야기는 더 이상 일반 학생들과 동떨어진 도시 괴담이 아니다. 대학에 가면 원하는 학과에서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말은 이제 거짓말이 됐다.

학교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학생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학생들은 학과의 존립을 넘어 대학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학교 측의 일방적인 논리에 ‘따로 또 같이’ 대응했다. 물론 구조조정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함께 맞서자”고 말하는 과정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사립대학 구조조정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는 중앙대학교를 중심으로 대학 구조조정에 맞섰던 학생들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학교가 내세운 ‘학교발전 이데올로기’


중앙대에서 구조조정이 본격화된 것은 두산그룹의 재단인수가 있었던 2008년 이후다. 본격적인 시작은 2010년 18개 단과대와 77개 학과가 10개 단과대, 46개 학과로 통‧폐합된 것이다. 2010년의 대규모 구조조정은 이렇듯 거의 대부분의 학과를 대상으로 했지만, 문제의 핵심은 모집단위(학부제, 학과제)를 변경할 것인지의 여부였다.


학생들은 천막 농성과 촛불문화제 등을 통해 반발했지만, “농성의 유무와 관계없이 최종안은 예정대로 발표난다”(안국신 당시 서울캠퍼스 부총장, 중대신문과의 인터뷰)는 학교 측의 강경대응에 부딪혀 큰 효과를 거두진 못했다.



학교가 내세운 발전 이데올로기는 강력했다.


반대운동을 주도했던 학생들은 2010년의 반대운동이 성공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를 학교가 내세운 ‘학교발전 이데올로기’로 꼽았다. “구조조정을 통해 학교의 경쟁력이 높아진다면 너희들의 취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교의 논리에 학생들이 호응했다는 것이다.


반면 학생들은 학교의 ‘발전 이데올로기’에 대응하는 논리로 ‘기초학문 사수’, ‘인문학 보존’ 등을 내세웠다. 가치에 중심을 둔 학생들의 논리는 현실을 내세운 학교 측의 논리에 막혔고, 특히 기초학문이 아닌 공과계열‧상경계열 등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겐 와 닿지 않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당시 중앙대 청소년학과에 재학 중이던 유현수 씨는 “무관심한 학생도 많았을 뿐더러, 학교 커뮤니티에선 오히려 ‘비인기학과를 없애는 건 학교에 좋은 일인데 왜 반대하느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했다.



“내 학과도 아닌데 왜 반대해야 하죠?”


이후 2011년 중앙대 측은 사범대 가정교육과의 폐과를 포함하는 새로운 구조조정안을 내놓았다. 학과 폐지의 근거는 취업률과 임용률이 낮다는 것. 자신이 속한 학과가 없어지게 되는 상황이 닥치자 가정교육과 학생들은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정교육과는 2012년부터 신입생 모집을 중단했다.


모집단위에서 학과 폐지로 구조조정의 수위가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측의 구조조정안이 그대로 강행된 것은 구조조정이 가정교육과‘만’의 문제로 비춰졌기 때문이었다. 올해 1월 열린 ‘전국대학구조조정공동대책위원회 구조조정 워크숍’에서 중앙대 학생 패널은 “학생들에게 특정 학과가 아닌, 모든 사람들이 구조조정에 반대해야 하는 보편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했으나 학교 측의 발전 논리에 부딪히고 말았다”고 말했다. 또한 반대운동을 하는 학생들 역시 학과의 폐지를 막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급급했다는 것이 학생들의 분석이다.



효과적 대응을 위한 공대위의 출범


중앙대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지난해 인문사회계열의 전공 4개(△아동복지 △가족복지 △청소년 △비교민속학)의 신입생 모집을 중단할 것임을 학보사를 통해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다.


세 번째 걸림돌은 다름 아닌, 학생들 사이에 퍼진 ‘해도 안 된다’는 패배감이었다. 반대의 주체인 학생들뿐 아니라 직접적으로 반대운동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그 과정을 지켜본 학생들도, 노력의 결실이 없자 허탈감에 빠졌던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타개하고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학생들은 학과와 학교를 넘어 연대를 시작했다. ‘대학구조조정 공동대책위원회’(구조조정공대위) 등은 그 연대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겠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가 대학의 구조조정을 유인하는 정책을 펴면서, 구조조정이 거의 모든 대학의 공통적인 문제로 인지된 것도 학생들의 연대에 영향을 줬다.


현재에도 구조조정공대위가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신 대학의 공공성과 관련된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공공성강화 대학구조조정 공동대책위원회’(공공성공대위)가 올해 5월 출범했다. 구조조정공대위와 달리 공공성공대위는 전국교수노조와 참여연대 등 학생이 아닌 다양한 단체들이 힘을 보탰다. 공공성공대위에서 활동하는 정태영 씨는 공공성공대위의 출범배경에 대해 “수년간의 경험을 통해 ‘뭉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구조조정 문제뿐만 아니라 재단비리 등 대학의 공공성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죽은 대학의 사회] 시리즈

① 대학 구조 개혁, 학과 통폐합 가속화

②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죽어가는' 대학들

③ 경영학 쏠림 현상, 취업양성소로 탈바꿈한 대학들

④ 뭉쳐야 산다, 대학 구조조정에 맞서는 사람들

⑤ 대학구조조정, 앞으로 남은 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