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제의 원리로 쓰이는 문법 지적질


몇 달 전 맞춤법을 모르는 이성에 관한 설문조사가 화제가 되었다. 알바몬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인데, 응답자 중 89.3%가 이성이 맞춤법을 실수했을 때 호감도가 떨어진다고 답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호감도라고 하는 것이 계량화하기 힘든 수치이지만 감정적으로 맞춤법을 틀린 사람에 대해 불편한 감정이 든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설문조사에서처럼 맞춤법은 당연히 지켜져야 할 기본적인 예의, 상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맞춤법을 틀린 사람은 예의를 어긴, 상식적이지 않은 말을 내뱉은 사람으로 간주된다. 인터넷 공론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축구 이야기를 하다가도,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도 맞춤법을 틀리면 문득 배제되곤 한다.


문법 나치를 비판하는 로고 ⓒ엔하위키미러


보통 맞춤법 검열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에게 가해지기 마련이다. 논의되어 오고 있던 것으로가 아닌, 맞춤법이라고 하는 당연한 규칙으로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실제로 다양한 논의를 하는 데 있어 해당 분야의 지식이 맞춤법과 비례하는지 확실하지 않다. 또한 맞춤법이 논의의 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이어야 하는 것인지도 동의하기 어렵다.


외국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했던 대학생 손호진 씨는 현지 사람에게서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우리나라에는 왜 왔나”라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말이라고 하는 것은 쉽게 배제의 원리에 이용되곤 한다. 마찬가지로 맞춤법 엄숙주의 또한 다문화사회에서 외국인을 배제하는 데 이용될 우려가 있다.


문법도 변화한다


아르바이트생들이 과도한 높임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언론의 맞춤법 지적도 타당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양명희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일전에 카페 아르바이트생이 ‘커피 나오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지적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라며 “기술문법에서는 ‘-시-’의 용법이 주체만이 아니라 상대를 높이는 데에도 실현되고 있는 것이지 알바생들이 오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구대 국어국문학과 이정복 교수도 ‘국어 경어법과 사회언어학’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현대 국어에서 ‘-시-’가 주어가 아닌 청자와 관련되어 쓰이는 현상이 상당히 확산되고 있는 느낌”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어 “언젠가는 ‘-시-’가 청자 높임으로의 기능 변화를 겪어 청자를 높이기 위해서는 주어가 무엇이든 관계없이 이 형식이 쓰일 수 있으리라 추측해 본다”라고 쓴 바 있다.


규범문법과 학교문법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고 국어 규범을 내면화하게 되면 현실과 유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양명희 교수는 “법도 현실과 계속 긴장관계를 가지며 변화하듯이, 국어 규범 또한 현실을 배제하고 보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맞춤법에 너무 얽매이다 보면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 형식, 질서에 대한 과한 집착은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방해할 가능성을 함께 떠안게 된다. 기사나 논문과 같은 규범적인 글쓰기는 일방적인 전달이므로 맞춤법이 필수적으로 지켜져야 하겠지만, 일상적인 대화나 인터넷상에서는 맞춤법의 날을 조금 누그러뜨려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