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 날씨는 풀렸지만 쌍용차 평택공장의 날씨는 여전히 싸늘하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김정욱, 이창근이 쌍용차 해고 문제 해결을 위해 굴뚝 위로 올라간 것이 작년 12월 13일, 오늘(3월 22일)로 만 백일이 되었다. 그리고 11일, 상황 타개를 위해 김정욱이 내려왔다. 이제 굴뚝 위는 이창근 굴뚝인, 한 사람만이 지키고 있다.


지난 1월 14일. 쌍용차 마힌드라 회장이 평택공장을 찾아 해고자들의 복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을 때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다. 어쩌면 7년간의 긴 싸움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후 6차례의 실무교섭에서 소득은 없었다. 여전히 제자리다.


고공농성은 분명 올라간 이에게 모든 부담을 지우는 투쟁 방식으로 보인다. 소수의 인원이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스스로를 위험한 공간으로 밀어넣는다. 목표는 국면 전환이지만 까딱하면 무관심의 역풍을 맞는다. 굴뚝 위로 올라갈 때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굴뚝 아래 상황은 어떨까. 소수가 무거운 책임을 안고 고공농성을 하는 동안 아래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이 물음은 굴뚝 아래 쌍용차 평택공장 앞 농성장으로 이끌었다.


3월 15일 아침. 굴뚝과의 첫 만남


평택역에서 쌍용차 평택공장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3월 15일 아침 10시 6분에 평택역에 도착해 대략 20분 정도 7-1 버스를 타고 갔더니 ‘쌍용차 평택공장’ 정거장이 나왔다. 정거장에서 내리자마자 익숙한 굴뚝이 보였다. 굴뚝은 생각보다 높았다. 꽤 먼 곳에서도 한눈에 알아볼 만한 크기였고 높이였다. 근처에 이렇다할 건물이 없는 평택공장에서, 굴뚝은 하나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공장 출입구 쪽으로 걸어가니 야구잠바를 입은 쌍용차 직원 두 명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입장을 위해서는 예약해야 하며 안에 지인이 없다면 예약할 수 없다고 말했다.


쌍용차 신차인 티볼리 광고와 농성 중인 굴뚝이 나란히 있는 모습


차가운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금속노조 사무실 앞에는 이동하는 치과 진료버스가 있었다.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가니,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 의사회(이하 건치회) 정성훈 전 회장과 여러 노조원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래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 의사회


건치회는 매월 셋째 주 일요일마다 평택공장을 찾고 있다. 매달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의 치아 상태를 확인하고 치료하는 과정을 하고 있다. 2012년도부터니까 햇수로 벌써 4년 차다. 오늘은 광주 전남지부 회원들이 온 날이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냐고 묻자, 정성훈 전 회장은 “출근길에 라디오에서 쌍용차 22번째 희생자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다가 마음 맞는 의사들과 의료활동을 함께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 의사회에서 치아 검진을 보고 있는 모습


그는 매달 치료를 진행하고 있어 노조원들의 치아상태는 꽤 건강한 편이지만 더 자주 오지 못하는 점과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할 때는 직접 치료하지 못하고 외부 치과에 연결해주는 것밖에 할 수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3.14 희망행동, 자물쇠가 2만 6천개가 될 때까지


입구에서 농성장 쪽까지는 걸어서 대략 8분 정도 걸린다. 8분의 거리에는 중간 중간 김정욱, 이창근을 응원하는 문구들이 붙어있었다. "살아서 만나요,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김정욱, 이창근 두 동지의 투쟁을 응원합니다!", "해고자 복직 협상 타결, 희망의 꽃을 보내다"와 같은 현수막이었다. 현수막들은 전날인 3월 14일 있었던 ‘3·14 희망행동’ 문화제에서 붙여진 것들이었다.


3·14 희망행동은 굴뚝 위에 있는 이창근 굴뚝인을 응원하기 위한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다. 응원의 편지 전달과 자물쇠 거는 행사를 진행했었다. 농성장 곳곳에 자물쇠들이 걸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응원하는 문구


굴뚝 앞 농성장에 도착하니 금속노조원 두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외의 방문객은 없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운 수석부지부장은 “자물쇠의 의미가 처음과 끝을 함께하겠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희망행동 문화제에 모인 사람들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것을 다짐하는 의미”라고 말했다. 


철조망에 자물쇠를 거는 것은 26명의 쌍용차 희생자를 기리는 마음에서 2만 6천개가 될 때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이어서 김정운 수석부지부장은 “끝을 모르고 시간은 계속 가는데 이런 관심들이 힘이 된다”며 “진전된 모습이 보이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자물쇠들은 사측에 의해 30여 개가 절단되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 16일 쌍용차 관계자가 자물쇠를 절단하는 것을 노조원이 목격하고 제지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쌍용차 관계자가 언론을 통해 "시설물 보호 차원에서 절단하게 된 것"이라 밝혔지만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 자물쇠를 '보호 차원'에서 절단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설명이다.


어쩌면 지금은 절단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자물쇠


시간은 어느덧 12시.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이 가까워졌다. 이창근 굴뚝인은 식사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물음에 김정운 수석부지부장은 “하루 3번, 쌍용차 경비원을 대동하고 밥을 올리러 간다”며 “그때만 쌍용차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아침 8시 반, 점심 12시 반, 저녁 6시 반. 이들은 하루에 세 번, 밥을 통해 온기를 나누는 것이 허락될 뿐이다.


언제쯤 얼굴을 마주하고 식사를 할 수 있을까. 회사측의 손을 통해서가 아닌, 이들이 직접 자물쇠를 하나하나 풀 날이 올 수 있을까. 7년을 끌어온 문제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며 낙관할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래에서도 응원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어서 문제가 빠르게 해결돼 위에 있는 이창근 굴뚝인과 아래에 있는 노조원들이 같이 밥을 나눌 수 있길 바란다. 그 식사를 지켜볼 수 있길 바란다.